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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한화 김성근 야구의 비극적 결말에서 얻을 교훈은?

23일 한화의 김성근 감독 체제가 종결됐다. 한화 구단은 자진 사퇴에 가깝다는 보도 자료를 냈지만, 김성근 감독 본인이 인터뷰를 통해 감독직을 이어나갈 의지가 있었음을 밝혔으므로 경질에 가깝다고 보는 게 일리가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른 퇴임 과정은 이렇다. 새로 부임한 박종훈 단장과 김성근 단장은 시즌 전부터 각자의 영역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며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2군 선수단은 감독이 가능한 제어하지 않는 쪽으로 합의한 상황에서 일요일 벤치클리어링에 대한 정현석 등의 징계로 1군 몇몇 선수들과 함께 2군의 김주현, 박준혁을 불러 특타를 지시. 이에 대해서 박종훈 감독이 운영팀장을 통해 2군 선수 차출 어렵고, 훈련량을 줄여달라는 말로 대응했다고 한다. 이에 김성근 감독은 다음 날까지 훈련을 취소했고, 이런 식이면 감독을 할 수 없다며 그룹 인사와 통화했다고 한다. 한화는 이를 자진 사퇴로 받아들였고, 언론 보도와 함께 경질 혹은 사퇴 결과까지 오게 된다.


실제로 시즌을 치르는 동안 어떠한 일들이 오갔는지 정확히 모르나 대체적인 외부의 시선은 터질 일이 터졌다며 차라리 작년 시즌 후 경질이 나았다는 반응이 많다. 애초에 박종훈 단장의 선임은 2년간 야구단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음에도 목표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선 김성근 감독에 대한 권한 축소의 성격이 짙었다. 감독과 단장의 역할 분배는 야구단 경영의 이상적인 방향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긴 시간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 야구단 전체를 제어했던 김성근 감독이 받아들이기에는 무리한 방식이다. 감독 경질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한화가 명성 있는 노감독에 대한 의리 혹은 예우를 갖추고자 차선책을 꺼내 들었지만, 잡음이 많으면서 비슷한 결말을 맞이한 셈이다.



어느 때보다 큰 환영을 받고 부임한 김성근 감독. 너무 큰 기대와 과도한 목표 설정은 현실의 벽앞에 비극으로 되돌아 왔다.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그렇다면 태평양, 쌍방울, SK 등의 팀에서 성공의 스토리를 써온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왜 한화에서 결실을 거두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달라진 시대의 흐름 앞에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김성근 감독 역시 프로야구를 선도하는 지도자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코치로 뛸 만큼 야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높은 안목은 현재 각광받는 젊은 후배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144경기를 뛰는 긴 레이스에서 뒤를 보지 않는 '하루살이' 야구는 어울리지 않는 덕목이 됐다. 김성근 감독이 효율적이면서도 양이 많은 훈련량을 강조했다면, 현재는 충분한 휴식을 통해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몸 상태로 경기력을 높이는 메이저리그의 훈련 방식이 성과를 거두는 일이 많다. 대표적으로 넥센이 이런 문화를 주도했고, 올해는 특히 이런 문화가 전 구단에 퍼지고 있다. 많은 투수 유망주들이 체력 안배를 위해서 정상적인 로테이션임에도 엔트리에 빠져서 휴식을 주는 예를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야구도 과도한 훈련보다 적절한 휴식이 선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10개 구단 모든 감독이 이러한 변화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김성근 감독의 시대보다는 선수 혹사에 대한 상식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화가 훈련량이 많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 있고, 다른 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원 투수들이 잦은 등판을 가졌다. 그 결과 작년 리그 상위의 불펜진은 김성근 감독 스스로 "불펜에 유망주 김범수밖에 없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이상군 대행이 최근 인터뷰에서 특타를 줄이고 필승조를 확실히 하겠다는 인터뷰도 이런 팀의 문제점을 대부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고투저도 김성근 감독에게 불리한 환경이다. 두산에 수석 코치로 있던 지바 롯데 감독은 한국 시절 다큐에서 후반에 한 점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두산에 심어주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신의 철학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좌절했고, 팀이 그와 관계없이 상승세를 타는 모습에 망연자실해야 했다. 이토 감독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두산의 선수 구성과 잘 맞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김성근 감독도 1점을 지키는 야구를 선호하고, 2015년 139개의 압도적인 희생 번트 숫자는 극단적 타고투저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2015년 한화의 번트는 줄어들었고, 2017년 타고투저가 다소 완화되자 김성근 감독의 작전들이 이전보다 상황에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진 것도 이러한 영향이 있다.



오간도, 비야누에바, 최재훈 등 올해 김성근 감독은 박종훈 단장이 영입한 선수를 칭찬하며 중용했다. 서로 양보하고 존중했다면 두 사람은 기적을 만드는 최고의 콤비가 될 수도 있었다.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또 한가지 김성근 감독을 옥죄는 키워드는 선수 영입에 대한 부분이다. 한화에서 김성근 감독은 자신이 부임했던 어떤 팀보다 많은 지원을 받았고, 그에 비례해서 성적에 대한 부담은 커졌다. 그러나 영입한 선수의 면면을 보면 FA와 트레이드 모두 성공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최근 FA 중 가장 성공적인 영입이라고 한다면 정근우와 이용규를 들 수 있지만, 이들은 김응룡 감독 시기 영입된 선수다. 김성근 감독은 외부 FA로 2015년 송은범, 배영수, 권혁, 2016년 정우람과 심수창을 영입했다. 정우람과 권혁은 성공한 FA로 분류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 가격대가 세고, 불펜 투수로 한계가 있었다. 


어쩌면 김성근 감독이 원한 선수를 모두 잡지 못했기에 선택의 문제라고 보면 문제는 보상 선수에 있다. 송은범의 보상 선수로 지명된 임기영은 올해 가장 주목받는 선발 투수 중에 한 명으로 성장했다. 정우람의 보상 선수로 지명된 조영우 또한 리그 탑 유망주로 성장하며 상무 제대 후 한화 팬의 마음을 또 한 번 씁쓸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심수창의 보상 선수 박한길도 지금 활용에 비하면 아쉬운 유망주다. 


김성근 감독이 할 수 있는 변명은 부임 초기 상무에 입대한 임기영을 보호 선수에서 풀은 선택은 선수에 대한 파악이 잘 안 되어서일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임준섭과 이종환, 박성호를 유창식, 노수광, 오준혁, 김광수와 맞바꾼 트레이드도 마찬가지. 김성근 감독이 2군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노수광의 가치에 대해서 알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단장과의 협조는 필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이 정말 신이 아니기에 모든 선수를 파악하기 어렵고, 성적을 내야 하기에 장기적인 시각의 선수단 운영은 쉽지 않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의 권위와 영역을 위협하는 박종훈 단장과 크게 갈등을 빚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임 초기부터 임기영을 지키고, 최재훈 같은 적재적소의 선수를 지원해줄 단장과 함께 했다면 한화에서 전혀 다른 결말을 만들어냈을지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한화의 나아가야 할 길도 지금까지 부족했던 점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응룡 감독 부임부터 한화는 일관되게 WIN NOW 지향의 선수단 운영을 했고, 김성근 감독의 혹사도 성적을 위해서 양해받았다. 이제 선수단에는 쉼표가 필요하고, 올해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팀의 재능을 키워나가겠다는 자세가 당분간 유지될 필요가 있다. 전임 감독들이 이기는 경기에 집중했다면 후임은 지는 방식과 휴식의 미학을 이해하는 지도자가 이상적이다. 무조건적인 리빌딩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나간 후에도 한화가 강호로 불릴 전력을 구축하는데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구단과 팬들의 이해가 없으면 가혹한 임무가 될 수 있다.


박종훈 단장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김성근 감독과 조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웠다면 새로 부임할 감독과는 동상이몽을 해서는 안 된다. 한화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삼성의 구자욱처럼 김태균을 이을 중심타자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고, 이용규와 정근우 FA에 대해서도 생각할 부분이 있다. 3루 포지션은 송광민의 나이를 고려하면 머지않은 시기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고, 외야는 공수 밸런스를 갖춘 선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불펜진의 나이가 많고, 선발진에 중심이 될 영건이 눈에 띄지 않는다.


선수 출신으로 두산과 NC 육성파트에서 공을 인정받은 박종훈 단장의 부임은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들은 한화 프런트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리고 박종훈 단장이 진행한 일련의 선수단 움직임은 외국인 선수를 너무 비싸게 영입하긴 했으나 현재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듣고 있다. 앞으로 많은 과제를 무리 없이 진행하려면 앞으로 부임할 감독과 코치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김성근 감독 해임 과정은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이지만, 현장과 프런트가 서로를 존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한국 야구가 계속 발전하는 과정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