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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선동열 감독 유임, 벌칙게임 되지 않으려면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던 날 야구계의 이슈는 예상대로 감독 선임 문제로 넘어갔다. KIA가 선동열 감독과 계약금 3억 연봉 3억 8천만원에 재계약했다는 소식이 경기 중에 터져 나왔다. 이전과 같은 연봉, 하지만 계약금은 2억 삭감됐다는 점에서 결코 성과를 인정받은 유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발표가 나기 전 이니셜 기사나 소위 말하는 카더라 통신을 통해 이번 인사와 관련된 내용이 은근슬쩍 흘려졌다. 드래프트에서 즉전감 대졸 투수 선호 현상이 계속되는 등 재계약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팀 운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야구계의 풍토를 고려하면 감독 유임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감독의 임기를 파리 목숨 같다고 표현한다. 본인이 잘하더라도 프런트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모기업 사정에 의해 뜻하지 않은 외풍을 맞기도 한다. 선동열 감독 역시 삼성에서 경질될 당시 성적 외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하물며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위 표는 투수의 다승처럼 감독의 능력과 연관성이 적은 팀의 성적이다. 단, 감독은 책임지는 자리이기에 재계약 시 절대적인 기준이 되곤 한다. 



역대 프로야구 33년 역사 중 감독이 한 팀에서 연속으로 4시즌 이상(2군 제외)을 보낸 경우는 20번 있었다. 이 중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본 감독은 총 8명으로 김응용 감독만이 팀을 옮겨 총 10개의 반지를 꼈다. 김재박 감독은 첫 2년 계약 시에는 한국시리즈 진출로 재계약을 따낸 후 4회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준우승을 통해 재신임받은 예는 총 여섯 차례다. 김영덕 감독이 첫 번째 임기에 2번, 연임 후 2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김경문 감독도 두산에서 8년 동안 총 6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3번의 준우승으로 우승 없이도 굳건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 외 OB와 쌍방울 시절 김성근 감독과 한화 강병철 감독, KIA 김성한 감독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으나 성과를 인정받아 재계약에 성공했다.


임기 내 4강에 들지 못하고 재계약한 예는 넥센 시절 김시진 감독 한 명뿐이다. 하지만 당시 선수를 팔아 구단 살림을 마련했던 넥센과 지금의 KIA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매우 이례적인 이번 조치에 대해 팬들의 가시 돋친 반응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시각을 달리해서 선 감독에게도 마냥 다행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 동안 구단의 지원이 많았다고 하지만, 이탈한 자원의 무게감이 더 크다. 3년 평균 80이닝 이상 3점대 중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불펜의 핵인 손영민이 불미스러운 일로 임의탈퇴 신분이 됐고, 윤석민과 이용규는 FA로 팀을 떠났다. 그리고 내년에는 투타 팀의 간판인 양현종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안치홍은 경찰청 입대가 예정되어 있다. 앞으로 선택지가 남아있는 감독 후보라면 계약을 꺼릴 만큼 성적을 내기가 매우 어려운 팀이다. 이미 주가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감독에게 있어서 커리어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사지에 가까운 자리다. 현 감독 체제에 질려버린 팬들이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남아버린 감독에게 있어서 모두 벌칙 게임으로 느껴진다.




대략적인 양 팀의 선수 구성. KIA는 곽정철 한기주의 복귀 가능성이 열려있으나 최영필, 김태영, 서재응 등 고참은 한 살씩 나이가 든다. 루키들의 활약은 계산에 넣기 위험하다.



주변에서 보는 형국은 대부분 이럴진대 유임을 결정한 구단 윗선의 의도는 무얼까?. 순수하게 선 감독을 여전히 지지하고, 지금 KIA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어서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동안 부진을 책임지라는 의미에서 여론의 뭇매를 견디며 리빌딩 기간을 버텨달라는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앞으로 2년 누가 감독이 되어도 성적을 내기 어려워 여론의 샌드백이 될 확률이 높다.


한편 김성근 감독이라면 위기에 빠진 KIA를 구해낼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2년 전 한화에 부임한 김응용 감독처럼 현재의 KIA와 우승 청부사의 만남은 이상적인 궁합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추세로 보면 KIA는 하락세에 있고, 전체적인 팀의 재능이 크게 떨어졌다. 감독 탓이라는 말은 3년 전 선동열-이순철 체제에 꿈꿨던 공상처럼 낭만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김성근을 염원했던 LG는 초년생 감독을 맞아 가을 야구에 진출했고, 시즌 초 다시 사령탑을 바꾸고 기적을 이뤘다. LG 감독님들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감독이 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진 않는다는 의견을 말하고 싶다. 야구계 전반적으로 보자면 김성근 감독이 상승세의 팀에서 야구 판도를 바꾸는 구도가 더 그럴싸한 그림이다.




지키는 야구로 대변되는 선 감독의 야구 철학은 타고투저와 KIA의 선수 구성 하에서 전혀 통용되지 못했다. (사진 출처 - KIA 타이거즈)



KIA와 선동열 감독의 불편한 동거. 그러면 앞으로 2년 지향점은 어떻게 될까? 근래 넥센과 한화의 행보를 통해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약 3년 이상 하위권을 동행했던 두 팀이 올해 차이가 벌어진 데에는 먼저 리빌딩 기간을 대하는 구단과 프런트의 차이가 존재한다. 넥센이 자체 전력을 냉정히 보고 당장 성적을 내기보다 미래 자원을 모으는 방향으로 운영했다면 한화는 김태균을 영입했다고 현장에 우승을 주문하는 무지함을 보였다. 77년생 전력감 송신영을 팔아 86년생 젊은 빅뱃 박병호를 구했던 팀과 FA로 송신영을 영입했던 팀의 방향성은 극명히 대비된다.


물론, KIA가 이번 오프시즌 FA 선수를 영입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리빌딩 못지 않게 경기장에 찾아온 팬들을 만족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남은 임기 2년을 보는 소모성 영입이 아닌 장기적인 계획하에 팀에 발전을 가져오는 선수여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안치홍 입대나 양현종 해외 진출 허락도 그런 관점에서는 만류하지 않는 게 낫다.



두 번째로 지난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선동열 감독도 분명 여러 장점이 있는 감독이겠으나 타고투저의 리그에서 투수력에 몰두하는 모습은 시대와 동떨어진 인상을 받는다. 믿을 것은 투수라는 지론은 올해 리그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부임 초기 좌투수에 매달리거나 유일하게 불펜 투수를 썼던 점도 장점보다 단점이 더 지적됐다.

드래프트에서 유독 대졸 투수에 몰두하는 경향은 감독의 선호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 현장과 스카우트의 교감, 계산이 서는 대학 선수의 가치는 존중해야 하지만, 정도를 넘어선다면 선수단의 잠재력은 떨어지고 만다.


수비의 중요성도 더 생각해야 한다. 조쉬 벨을 방출했던 LG는 미들인필더 유형인 손주인-박경수-황목치승을 활용해 수비부터 공백을 지워나갔다. KIA가 나지완이나 이종환을 좌익수에 두거나 박기남, 김민우를 각각 2루, 유격수로 활용하는 기용은 LG로 따지면 정성훈을 다시 3루로 돌리는 선택과 진배없다. KIA의 수비력이 엉망이 된 이유는 선수층이나 기량 문제가 첫째이나 공격력 위주의 라인업 구성도 큰 원인이 됐다. 이는 곧 투수진 붕괴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패를 경험한 혹은 궁합이 맞지 않던 감독의 연임은 나중의 결과를 떠나서 과정이 좋지 않기에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수나 감독이나 성향은 쉬이 바뀌지 않기에 갑작스러운 변화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늪에 빠진 듯한 KIA의 부진이 감독 탓만이 아니라는 현실 직시 또한 팀에 꼭 필요한 일이다. 가령 어떤 감독이 누구를 키웠다는 말들은 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허풍스러운 무용담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선 감독 유임 하에서 성공적인 리빌딩의 성패는 스카우트, 트레이너, 전력 분석에 마케팅 팀까지 개인이 아닌 구성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선도 차선도 되지 못한 감독 선임의 들끓는 팬심이 프런트 전문화라는 야구계의 현안으로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