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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한화 김성근 감독 선임, 독수리 날개 펼까?

이제 우리도 이기는 야구가 보고 싶다. 팬들의 바람은 단순 명료하다. ( 그림 출처 - HellCAT님 블로그)


그토록 열망했던 일이 이루어졌다. 25일 저녁 한화 이글스는 김성근 감독과 계약금 5억, 연봉 5억원에 3년간 계약을 맺었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김응용 감독과 계약기간이 끝난 후 한화의 후임 감독에는 많은 인물이 오르내렸다. 그중에는 이정훈 2군 퓨처스 감독, 한용덕 단장특별보좌역 등 내부 승진이 유력하다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6년간 최하위권에 머물렀던 한화 팬들은 개혁을 원했고, 야구계에 명망 높은 김성근 감독만이 구세주가 되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한화 본사 앞의 1인 시위, 유튜브 동영상 제작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들의 의사를 전달했다. '절실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마침내 김승연 회장의 지시가 떨어졌고, 2~3일 만에 합의가 이뤄졌다. 내심 영입을 바랐던 몇몇 KIA, 롯데 팬을 제외하고, 대다수 야구 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소식이라 여겨진다.



그럼 김성근 감독이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성과를 쌓았길래 모두의 환영을 받는 걸까? 과연 앞으로 3년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가질 수 있을지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정리해 보았다.





지금은 '야신'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도 초보 감독의 시절은 있었다. 1984년부터 김영덕 감독의 후임으로 프로팀 감독으로 첫발을 내디딜 당시 팀 성적은 썩 좋다고 할 수 없다. 1986년과 1987년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모두 플레이오프 단계에서 탈락했다. 전•후기를 합한 정규시즌 3~5위의 성적은 6~7개 구단 체제였기에 순위로 보면 중간 아래다. 이후 팀의 기반이 잘 닦였다고 보기 어려워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현장에서는 김성근 감독의 능력을 인정했다. OB와 재계약에 실패한 후 곧바로 태평양 감독직을 맡았고, 삼미-청보에서 이어진 만년 꼴찌 팀을 곧바로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다. 안타깝게도 다음 시즌 5할 승률에 실패해 해임 됐으나, 다음 해 바로 삼성의 사령탑에 오를 수 있었다. 참고로 삼성은 OB 투수 코치 시절에도 감독 제안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허나 삼성에 부임한 이는 이적의사를 밝힌 김영덕 감독이었고, 이 일을 계기로 OB와 삼성은 수차례 난투극을 펼칠 만큼 앙숙관계가 된다. 1984년 후기 리그 말미에는 삼성이 OB가 아닌 롯데를 한국시리즈 상대로 만나기 위해 고의로 져주려는 태도를 취해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야신'이라 호칭한 김응용 감독과 한때 앙숙관계였던 김영덕 감독 중 누가 먼저 떠올랐을? (사진 출처 - MBC SPORT+ 영상 캡쳐)



이런 인연 때문인지 삼성에서 김성근 감독은 커리어에서 가장 실패한 시즌을 보내게 된다. 5할 승률 이상을 거뒀음에도 삼성이기에 비교적 부진한 시즌이 됐다. 90년대 삼성 암흑기의 흔한 감독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84년부터 9년 연속 1군 감독 연임도 여기서 공백을 갖게 된다. 해태에서 투수 인스트럭터와 2군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계속했던 김성근 감독은 1996년 3년 만에 다시 쌍방울의 감독이 된다.


태평양에 이어 다시 최하위 팀을 맡게 된 김성근 감독은 역시나 특유의 독한 지도력을 선보이면서 기적을 만들어 낸다. 구단의 어려운 재정 상황 속에 2년 연속 가을 야구에 진출하는 기염을 통했다. LG에서는 첫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잘 추스른 후 다음 시즌 생애 첫 한국시리즈에 감독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김성근 감독은 우승 경력이 없었고, '야구의 신'이라는 호칭을 붙여준 김응용 감독에 의해 2인자라는 인식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야신'으로 인정받게 된 시기는 바로 SK 왕조를 구축한 후부터다. 한 치의 여유도 두지 않는 전력질주 야구는 많은 안티와 함께 강함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한가지 김성근 감독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수비와 주루플레이에서 성과다. 위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했던 시기 전후로 2~3년간(부임 기간에 따라) 투수진의 리그대비 투수들의 비 BABIP의 변화를 나타낸 표다. BABIP는 간략히 설명하면 인플레이 시 안타가 될 확률로 수비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팀은 삼성 시절을 제외하고 모두 전후 대비 상승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우연으로만 보기 어려워 김성근 감독의 수비 조련 능력이 반영됐다고 조심스럽게 해석해 본다. 지난 3년간 96.96을 기록했던 한화에 적용하면 약 100으로 올라 리그 평균에 가까운 수치로 변한다. 국내 전력 분석에 있어서 최고 능력자라고 하는 김정준 해설위원이 아버지를 돕는다면 과제가 더 수월해질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상기할 점은 아무리 김성근 감독이라고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LG에서 정규시즌은 엄밀히 말해 2000년 5할 이상의 승률에 득실 마진 56점을 기록했던 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LG는 90년대 초중반 6할 내외의 승률을 기록할 정도로 강팀의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SK에서도 2005년 .583의 승률과 104점의 득실마진을 기록할 만큼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기존 정근우, 최정에 김광현 등 슈퍼루키의 입단은 선수만이 아니라 김성근 감독에게도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고로 앞으로 3년 한화에 적절한 기대치는 SK와 같은 왕조나 우승이라기보다 태평양과 쌍방울로 이어지는 언더독 팀으로서의 가을 야구 진출이다. 득실마진으로 보자면 오히려 쌍방울, 태평양보다 더 허점이 많은 팀이다. 물론, 유창식과 이태양의 성장, 이용규의 수비 복귀, FA 영입 등을 고려하면 수치보다는 낙관적인 예상을 할 수 있다.


한편, 한화의 감독 자리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여러 레전드 감독들이 거쳐갔다. 먼저 빙그레 시절 김영덕 감독은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를 구축했다. 김인식 감독은 2006년 한국시리즈를 비롯해 이글스에서 3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혹사 논란으로 장기적인 한화 부진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김응용 감독은 그간 일궈온 명성에 흠집이 날 정도로 성적 달성과 리빌딩 진행 모두 성공적이지 못했다.



한화 팬들의 기대대로 김성근 감독이 지난 세 명의 감독 이상 혹은 김영덕 감독과 같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감독만의 능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아무리 감독이 명장이라도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스카우트, 트레이너 등 야구단 내 현장과 프런트 각 분야에 위치한 인원들이 역할을 다해야 하고, 구단의 꾸준한 지원이 필수다. 전권을 주겠다는 프런트의 말이 책임을 소홀히 하겠다는 떠넘기기 식 운영이 된다면 한화 팬들이 바란 변화는 더 늦어질지도 모른다. 팀은 이제 할 일이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