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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야구

이종범 전격 은퇴, 타이거즈 영웅과 이별을 고하다


사진 출처 - 타이거즈 홈피


KIA 타이거즈의 이종범이 은퇴했다고 3월 31일 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발표됐다. 지난해 선동열 감독이 부임하고, 팀 내 최고령 선수인 이종범과의 동행이 가능할까 여부가 조심스럽게 우려되기도 했다. 삼성 시절, 선동열 감독은 선수단과 팬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이 있던 양준혁에 대해서도 세대교체의 철퇴를 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당시 선동열 감독은 이종범과 2012년을 함께 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개막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은 16년간 '영웅'을 지켜봐 왔던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 매체의 보도를 따르면 KIA 코치진은 이종범에게 개막전 엔트리 포함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범은 국내 프로리그에서 한 번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한 적이 없다. 프런트로부터 연봉 보존과 플레잉 코치 제안을 받았다면 이는 곧 선수로서 기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나 다를 바 없다. 은퇴 제의구단 제의를 거절하고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도 있겠지만, 기용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기약 없는 2군 생활로 팀 내 갈등요소가 되는 것보다 은퇴를 결정하는 게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동계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한 이종범에게 왜 갑작스럽게 전력 외 판단이 내려진 걸까? 이종범의 시범경기 성적은 7경기 출장 13타석 .333의 타율 .385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타격보다는 기록되지 않은 미스 플레이를 보여준 수비를 문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면 운동 능력과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칭스탭은 이종범의 경험보다 신진 외야수들의 빠른 발을 매력적으로 느낀 듯하다.

더 중요한 것은 KIA 야수진의 진형 변화다. 작년까지 나지완은 지명타자로 더 많이 출장했다. 2009년부터 외야수 출장은 96->43->13 경기로 줄어들었다. 부상과 늘어난 체중 등이 원인이다. 선 감독이 부임한 후 선수단에 체지방률 수치가 23%를 넘으면 연봉 5% 벌금을 내라는 엄포로 나지완은 눈에 띄게 날씬해졌다. 더 많은 수비기회가 올 것은 당연하다. 김상현도 이범호 영입 후 3루에서 외야로 포지션을 전향했다. 시범경기 중에는 1루 수비에 부담을 느껴 앞으로도 외야수로 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지명타자 자리에는 햄스트링 부상을 겪고 있는 내야의 이범호가 출장할 가능성이 있다.

준족의 이용규, 김원섭, 신종길을 비롯해 거포 타입인 김상현, 나지완의 옵션이 늘어나면서 외야에 깊이가 생겼다. 이종범이 은퇴하지 않았더라도 2010, 2011년처럼 200타석 이상의 기회는 부여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타격보다 수비·주루가 중시되는 선수가 필요한데 신인 윤완주가 내 외야를 소화할 수 있기에 이종범에 대한 팀의 필요도가 낮아진 듯하다. 물론 이종범의 경험은 시즌 내내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한국 나이로 43세, 천재도 늙는다. 냉정히 보자면 이종범의 은퇴가 팀 전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구단 입장에서 젊은 선수를 쓰고 싶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 시즌 30개의 홈런과 64개의 도루를 기록한 프로야구사 역대 최고의 다이나믹 플레이어가 운동능력으로 후배에게 자리를 내준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현재의 안타까움과 무관하게 그가 보여준 플레이 하나하나가 여전히 팬들의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다. 데뷔 첫해 주전 유격수로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 다음 해에는 .393의 타율로 페넌트레이스 MVP가 됐다. 95년에는 방위로 복무하며 홈 경기만을 출장해 한 템포 쉬었고, 96년, 97년 다시 한번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1번 타자로 출장해 안타 치고, 도루하고, 득점하고, 또는 홈런으로 팀을 이끈다. 그뿐만 아니라 안정성에는 김재박, 박진만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있지만, 당대 가장 수비 범위가 넓은 유격수였다. 이종범이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는 수치상으로도 증명되는데 오직 타격만으로 평가되는 WRC 기록을 보자. (이승엽, 이대호 등을 비교한 참고 )




위 표는 이종범의 전성기였던 1994년, 1996년, 1997년도 타자들의 WRC 값이다. 이는 포지션, 수비, 주루를 모두 제외한 온전히 타격만을 가지고 측정한 값이며 리그 타고투저가 반영되었고 구장효과는 제외되었다. 또 WOBA의 주요 측정 자료인 실책으로 인한 출루는 배제되었다. 실책으로 인한 출루는 빠른 발을 가진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나타난다. 이종범에게는 OPS만큼이나 철저하게 불리한 스탯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종범의 WRC는 모두 TOP 10에 올라있다. 누적 스탯인 WRC와 달리 비율 스탯인 WRC+에서는 1994년 양준혁, 김기태에 이어 3위에 위치해 있다. 앞서 설명했듯 WRC는 선수의 수비위치, 수비력, 주루능력을 배제한 스탯이므로 완전치 않다. 수비 능력이나 주루 능력을 수치와 하기 어렵더라도 도루와 포지션 가중치를 고려한 WAR을 살펴보면 1,2,3위에 모두 이종범이 위치한다. 특히 1994년의 이종범은 혼자 10승 이상을 기여한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엄청난 포스를 자랑했다. 야수에 한정해서는 단일 시즌 최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본 진출 후 좌절, 최근의 좁아진 입지 등으로 간혹 이종범이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 이미지가 흐려질 때가 있다. 또 KBO 기록실에 나오는 OPS만으로 선수로서 가치가 과소평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KIA 타이거즈의 V10 속에 적어도 3~4번의 우승은 이종범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KIA가 역대 최다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이종범의 은퇴식 역시 팬들의 기억 속에 자랑으로 남을 만큼 뜻 깊게 만들어 주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