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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고작 2승? 올해도 류현진이 최고다

우리는 흔히 수준급 선발 투수에게 10승급 투수라고 지칭한다. 또 다승 타이틀은 선수들이 가장 신경 쓰는 스탯 중 하나다. 그래서 방송 카메라는 선발승이 날아가는 순간 스토커처럼 투수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절망적인 순간을 담아내곤 한다. 그럼 현 야구계가 집착하는 선발승이 투수에게 의미 있는 지표일까?



 


단적인 예를 보자 위 표는 2011년 8개 구단을 대표하는 주요 선발 투수들의 기록을 승수 순으로 나열한 것이다. 과연 승수와 투수의 활약에 따른 상관관계가 느껴지는가? 주키치는 무려 187.2이닝 3.60의 방어율을 기록했음에도 윤성환, 송승준보다 승수가 적다. 양현종은 양훈보다 40이닝 가까이 덜 던지고 더 많은 자책점을 내줬음에도 1승을 더 올렸다. 작년 윤석민처럼 승수와 기량이 따라가는 예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승수와 실력은 따라가지 않는다.


사실 불운한 선발 투수라는 말에 정답이 있다. 운이 실력을 압도하는 스탯으로 어떻게 평가가 가능할까? 우리는 무의식 중에 다승 타이틀이 투수에게 의미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투수 평가에 좀 더 유용한 지표는 무엇이 있을까? 평균자책점(earned run average)이 가장대중적이다. 흔히 방어율로 불리며 9이닝당 내준 자책점의 평균을 구하는 방식으로 계산이 무척 간단하다. 또 실점을 막아야 한다는 투수 본연의 목적과 맞닿아 있어 직관적인 이해가 쉽다. 


그러나 여기에도 아쉬움이 있다. 실점을 막는 것은 온전히 투수의 능력으로 보기 어렵다. 야수의 수비능력과 각종 시프트, 타구 방향에 따른 운, 구장 효과등 온갖 요소들이 작용한다. 만약 류현진이 최정과 정근우, 김강민을 뒤에 두고 던졌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평균자책점은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반대로 김광현은 압도적인 투수임에는 분명하지만 방어율로만 본다면 과대평가 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홈런, 삼진, 볼넷, 파울 등을 제외한 인플레이 된 타구의 안타 확률(BIPA)을 계산하면 SK가 .292로 가장 낮고, 한화는 .322로 가장 높았다. 단순한 우연일까? 



 


위 표를 보면 유독 3년간 SK와 한화의 순위가 고정되 있음이 눈에 띈다. 한화 투수들이 잘하고 SK 투수들의 능력이 좋아서 일까? 다른 팀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결국, 그라운드 안의 공이 안타가 될 확률(BIPA)은 야수들의 수비력과 같은 피칭 외적인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칰칼코마니, 원기옥 등의 필살기를 지닌 한화의 정줄 수비가 투수의 피안타율을 높여준다는 것이 통계로 증명된 셈이다.



그래서 나온 스탯이 'The Book'의 저자 톰 탱고가 개발한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다. 


FIP = (13*피홈런 + 3*(볼넷+몸에 맞는 볼-고의사구 - 2*삼진)/이닝 + 3.20(또는 특정 상수)


뒤에 3.20을 더해주는 이유는 평균자책점과 비슷한 값을 같게 하기 위함인데 아래와 같은 식을 사용해 상수를 구해서 더해주면 시즌 평균자책점과 완전히 동일한 시선에서 봐도 무리가 없다. 물론 수치는 낮을수록 좋다. 


C = (9*리그자책점 + 2*리그삼진 - 13*리그홈런- 3*(리그볼넷+리그몸에 맞는 볼-리그고의사구)) / 이닝  ※ 6월 20일까지의 계산 값은 약 3.11


FIP는 뒤에 있는 야수와 상관없이 타자와의 승부로 결정 나는 탈삼진, 사사구, 피홈런만으로 가치를 계산한다. 이 때문에 평균자책점보다 수비나 운과 같은 요소들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 투수가 안타를 맞는 행위는 투수의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게 FIP의 시각이다. 참고로 류현진, 장원삼, 고효준의 통산 BIPA(홈런과 삼진을 제외한 피안타율)는 각각 .297 .289 .293로 대동소이하다. 류현진이 가장 높은 걸 보면 피안타가 투수 능력을 설명하는 스탯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설명에도 눈에 익지 않은 기록이기에 FIP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공식에 계산된 삼진, 볼넷, 피홈런 등의 수치들이 왜 중요한지 이해한다면 FIP를 좀 더 신용할 수 있을 것이다. 


 




류현진이 리틀 야구 선수에게 수비를 믿기보다 반드시 삼진을 잡으라는 한스러운 조언을 해준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삼진은 투수가 타자를 아웃시키는데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물론 포수의 리드, 파울존 등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투수의 피칭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아웃은 바로 삼진, 그리고 9이닝당 탈삼진(K/9) 수를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구위가 좋은 투수들이 탈삼진 숫자가 많다. 여기서 구위란 단순히 빠른 볼뿐 아니라 타자를 속일 수 있는 보조 구질을 포함한다. 김광현이 부상에서 복귀했음에도 이닝 당 1개꼴로 삼진을 잡아낸 것은 그의 슬라이더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보여준다. 서재응이나 김광삼 등은 구위보다는 제구력 위주의 투수로 9이닝당 삼진 숫자는 5개가 체 되지 못했다.


 




볼넷은 눈물의 씨앗이다. 최고의 투수조련사로 알려진 선동열, 김시진 감독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말이다. 아무리 SK 수비가 탄탄해도 고효준의 롤러코스터 피칭은 어찌할 수 없다. 사구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작전상 내주는 고의사구는 실점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볼넷이 적은 투수를 제구력이 좋다고 평하기도 한다. 또 피해 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승부하는 타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9이닝당 볼넷 수(BB/9)를 통해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장원삼을 보면 왜 최고의 제구력을 가진 좌완인지 설명이 된다. 경기 당 1개 정도로 볼넷을 통제하는 선수니 타자들이 요행을 바랄 수 없다. 반면 강윤구는 9이닝 당 무려 7개에 가까운 볼넷을 내줬다. 빠른 공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처럼 들쑥날쑥 하면 에이스 역할을 하긴 무리다. 한편 리즈는 여전히 볼넷이 많지만, 선발로 전환한 뒤에는 차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안타를 맞아도 볼넷은 안된다고 한다. 그래도 홈런만큼은 아니다. 홈런은 타자가 점수를 내는 다이렉트 코스로 피장타율과도 연관이 있다. FIP는 볼넷과 홈런을 계산함으로써 출루율+장타율을 모두 반영해 피OPS와도 연관을 가진다. 또 땅볼 비율이 높을수록 피홈런을 허용할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다. 단 피홈런은 투수의 능력 외에 구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하겠다.


김선우는 잠실을 홈으로 사용했음에도 매우 많은 피홈런을 내줬다. 61이닝 동안 6개의 피홈런을 허용했으니 평균자책점이 높은게 당연하다. 반면 박찬호는 대전 구장을 사용했음에도 피홈런은 단 2개다. 투심 위주의 그라운드 볼 유도가 도움이 됐을 것이다. 땅볼아웃/ 뜬공아웃(GO/AO) 비율은 피홈런과 연관이 있는 수치인데 위 표에서는 뚜렷한 연관은 나타나지 않았다. 단편적인 사례이기 때문일 듯하다.

 

 

종합해서 70이닝 이상 평균자책점 TOP5 선수들의 그래프를 그려보았다.



 


연두색은 높을수록 남색과 붉은색은 낮을수록 좋다. 현재 부상으로 빠져 있는 류현진의 탈삼진률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더욱 기승을 부린 한화 수비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고 해외진출에 대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2.38FIP는 다른 투수를 확실히 압도한다. 승수가 2승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할 수 있나? 류현진은 올해 커리어 하이에 가까운 압도적인 피칭을 하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2.2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나이트는 4.03FIP로 운과 수비의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2012년 시즌 8개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들의 기록이다. 승수, 평균자책점(ERA), FIP 어떤 지표를 선호하는가? 제발 승수라고는 하지 말자. 평균자책점과 마찬가지로 FIP로 투수를 일렬로 세우려는 것은 과욕이다. 그래도 한 단계 진일보한 스탯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FIP의 각 요소를 통해 선수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자.




※ 이 글은 마구스탯에 송고되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마구스탯이며 그래프는 26일자, 마지막 표는 23일의 기록을 정리하였음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