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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프로야구 수놓은 두 개의 마일스톤

사진 출처 - 삼성 라이온즈



삼성의 '라이온 킹' 이승엽이 한일 통산 500호 홈런을 달성했다. 29일 넥센과의 목동 경기, 4회 동점 상황에서 나온 영양가 만점의 솔로포였다. 500호 홈런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 15일 KIA전 홈런 이후 7경기 동안 홈런이 나오지 않았다. 이승엽은 이에 달관한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자칫 아홉 수에 시달릴 타이밍에 나온 천금 같은 홈런이었다. 



이승엽은 프로 데뷔 전 1994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홈런왕을 차지할 만큼 빼어난 유망주였다. 투수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승엽은 삼성 입단 후 타자로 전향했고 곧바로 121경기 411타석 동안 .285의 타율 13개의 홈런을 치며 빼어난 활약을 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 이승엽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국 프로 선수 사상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로 우뚝 섰다. 그야말로 전설의 탄생이다.


개인 통산 500홈런은 150면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에서도 배리 본즈에서 에디 머레이까지 총 25명밖에 없고, 70년 역사의 일본 프로야구는 9명뿐이다. 한국프로야구 위원회에서는 이승엽의 한일 통산 기록을 인정하지 않지만, 일본에서의 홈런이 더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선수 개인으로서 한국인 최초 프로 500홈런 달성은 그 자체로 위대한 마일스톤이 아닐 수 없다.


이승엽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의지가 부족해 올해 홈런왕이 되지 못할 것이며, 이번 홈런이 공식 기록은 아니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제시한 것이 한국프로야구 통산 400호 홈런이다. 앞으로 59개만 치면 달성할 수 있는데 76년생 이승엽으로써는 딱 적당하게 동기 부여될 목표치인 것 같다. 아마도 이승엽의 머릿속에는 개인 통산 400호 홈런과 함께 3개의 우승반지를 그리고 있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프랜차이즈 최고의 스타가 이끄는 팀의 전성기에 삼성 팬들은 더 없는 행복감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 출처 - KIA 타이거즈



지난 주에는 이승엽 말고도 프로야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선수가 있다. KIA 타이거즈의 최향남은 25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3명의 타자를 상대로 12개의 투구로 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최향남의 나이 만 41세 3개월 27일에 세운 기록으로 이는 송진우의 41세 3개월 15일을 넘어서는 것이다. 


시즌 중반 최향남을 영입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 1군에 올라오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더군다나 최고 구속이 140km도 나오지 않으니 잘해야 셋업맨 정도를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향남은 누구보다 빠른 투구템포, 타자를 농락하는 노련한 수 싸움으로 팀에서 가장 안정감 있는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승리조로 역할을 담당했던 루키 박지훈마저 지친 기색을 보이는 상황에서 최향남이 없었다면 KIA는 일찌감치 붕괴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향남의 이런 활약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의 끊임없는 야구 열정이 아니었다면 설명할 수 없다. 


고교 시절 학교 측의 실수로 동국대 입학이 좌절되고 막노동판을 헤매다 헐값에 KIA에 입단했다. 루키시즌 부진한 투구로 좌절해 현역에 자원입대했고 4년의 공백을 딛고 재기하는 등 우여곡절 많은 커리어 초기를 보냈다. 1997년 LG로 이적해 드디어 에이스로 활약하며 꽃을 피우는가 했지만,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하는 파문을 일으키며 다시 시련의 시간을 겪는다. 


부상과 부진으로 제 역할을 못했던 최향남은 2006년 미국행을 선택한다. 2003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이후 두 번째 도전인데 106.1이닝 2.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아쉽게 빅리그 유니폼을 입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롯데 소속으로 FA 등록일 수 3일을 남겨둔 채 2009년 다시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그러한 상황에서 최향남이 아닌 어떤 선수도 미국 도전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향남은 비록 자신의 재능에 비해 많은 돈을 벌지도 못했고 훌륭한 커리어를 쌓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최근 팔꿈치나 어깨 수술 후 재활이 힘겨워 은퇴까지 생각하는 젊은 선수들은 대선배 최향남의 야구 인생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또한, 꿈을 향한 도전 정신은 타인에게 권유할 수 없더라도 높이 평가될 만하다. 


말 그대로 프로야구계의 기인 최향남. 많은 대기록을 남긴 송진우에게서 최고령 세이브 타이틀 기록을 넘겨 받을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