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야구

병역법 개정이 프로야구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 전 스포츠계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9월 16일 병무청이 스포츠계에 병역 특례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전달한 것. 여태까지는 병영법 시행령 제47조 2항에 따라 올림픽 동메달 이상 또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 병역 특례 혜택이 주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병역법은 점수제로 대회별·성적별로 100점을 채워야 기존과 같은 혜택이 생긴다. 점수표를 보면

 

올림픽 금메달 120점 은메달 100점 동메달 60점

아시안게임 금메달 50점 은메달 25점 동메달 15점

세계선수권(WBC) 1위 60점 2위 40점 3위 20점


위 내용대로 보면 2개 대회에 출전해 100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아시안게임과 WBC에서 우승하는 방법뿐이다. 올림픽은 2020년 대회까지 정식 종목 진입에 실패했다. 2015년 IBAF가 주관하는 '프리미어12' 대회가 열리나 WBC를 대체해 세계선수권 대회로 인정받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현재 프로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으려면 아시안게임과 WBC를 모두 우승해야 하는 희박한 확률에 기대야 한다. 


이번에 추진 중인 병역법은 100% 확정되진 않았으나 올해 연말 개정되어 2014년 2월 열리는 소치 동계 올림픽부터 시행이 유력하다고 한다. 물론, 병역 문제는 스포츠계에 한정해서 고려할 문제는 아니다. 야구팬 중에도 이번 제도 변경에 찬성하는 이도 적지 않다. 다만, 아시안 게임을 기다리고 있던 구단과 선수들의 당혹감은 십분 이해가 간다. 과연 이번 제도가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일까?



앞으로 순위경쟁, 포지션 선순환에서 갈린다


병역법 시행령 124조 2항에 따르면 국가대표선수나 국위 선향에 현저한 공이 있는 선수 중 문광부 장관에 추천한 사람의 경우 27세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 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만 28세가 되는 시즌까지는 입대를 미루곤 했다. 예를 들어 논란이 있던 축구의 박주영도 모나코 왕실에서 장기체류자격을 주기 전 만 28세가 되는 2013년에는 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추신수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만 28세가 되는 2010년까지만 시즌을 뛸 수 있었다. 이를 유추하면 일반적으로 만 28세가 되는 시즌까지만 입대가 연기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KIA의 팀 재건은 '꼬꼬마 키스톤' 없는 라인업을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달려있다. (사진 출처 - KIA 타이거즈)


고로 맥시멈 1988년 3월생까지는 2017년 WBC에 우승하더라도 병역특례를 받기 어렵다. 실질적으로 WBC 우승이 어렵다고 하면 2019년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에 만 29세가 되는 대부분의 1990년생도 지금부터 입대시기를 잡아야 한다. 1990년생이라는 나이는 야구계에 매우 특별한 의미다. 바로 골든 제네레이션이라 불리는 09드래프트의 4대 유격수들이(허경민은 군필) 바로 이 세대이기 때문이다. 김상수와 오지환, 안치홍은 각자 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공백을 메우기는 쉽지 않기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삼성, LG, KIA는 올해 드래프트에서 유격수-2루 포지션에 상위 지명권을 투자했다. 특히 삼성은 지난해에 지명한 정현이 수월하게 프로에 적응하고 있는 터라 타개책은 생겼다. 효천고의 박계범도 2013년 드래프티 고졸 유격수 가운데 최대어 중 한 명으로 통한다. LG는 박경수가 제대하지만, FA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손주인의 롱런 여부도 불확실하고, 공격력에서 차이가 커서 강승호를 비롯해 올해 지명한 야수들의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어려움을 겪을 팀은 선수층이 빈약한 KIA다. 안치홍과 함께 김선빈까지 군대에 보내야 해서 채워야 할 구멍이 두 자리다. 기존 미들인필더 자원인 고영우, 윤완주 등은 아직 주전이 되기에 미흡한 모습이라 눈앞이 깜깜하다. 올해 지명한 강한울, 박찬호 등의 성장이 중요한데 2~3년 이내에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당장 백업 유격수도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올해나 내년에는 외부 영입이 병행되는 편이 좋다.




롯데는 당장 이번 오프시즌부터 군 입대 선수에 대한 공백을 준비해야 한다. (사진 출처 - 롯데 자이언츠)


그래도 앞에 언급한 세 팀은 대비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주어진다. 손아섭, 전준우, 황재균을 모두 군에 보내야 하는 롯데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이들을 한 번에 군에 보낼 수는 없기에 이번 시즌이 끝나고 곧바로 전준우를 입대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봄 직하다. 헌데 내년 장원준이 복귀하는 롯데는 우승을 위해 승부를 걸어볼 시기다. 전력 강화와 미래 대비를 겸해 이종욱과 같은 매력적인 외야수가 풀리면 일단 오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강민호의 재계약으로 자금이 없다고 하면 트레이드 시도 역시 가능하다.




유망주 군입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


그런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든 구단이 이 사안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91년생 이후 선수 중 내년 아시안 게임 선발이 가능한 야수는 거의 없다. 투수 중에도 문성현, 안승민, 한현희, 심창민 등이 후보로 얼굴을 내미는 수준. 90년 10월생 이재학도 대회 일정상 병역 특례 혜택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앞으로 입대 전 두 번의 아시안 게임 참가가 가능한 세대는 2023년 28세가 되는 1995년생, 즉 임지섭을 위시한 올해 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부터다. 향후 10년간 병역 특례 혜택을 받는 세대가 나오기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과거 엘리트 유망주의 경우 구단들은 어떻게든 입대 시기를 미루는 선택을 했다. 혹시 모를 군 면제에 대한 유혹, 당장 팀의 성적을 위해서라면 흔히 있는 일이었다. 올해 말 나지완을 입대시킨 KIA, FA를 1년 앞두고 장원준을 경찰청에 보낸 롯데가 대표적이다. 시즌 중 송광민을 군에 보낸 해프닝을 겪은 한화는 말이 필요 없다. 



두산은 일찌감치 엘리트 유망주의 입대를 성장 코스로 활용해 선수층을 키어왔다.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반면 두산이나 삼성은 어떠한가? 일찍부터 될성부른 떡잎을 상무, 경찰청에 보내 선수를 성장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그로 인해 두산의 야수층은 9개 구단 중 압도적인 1등이다. 롯데 강민호는 신인 때부터 1군에서 키워져 리그 평균 이상의 OPS를 기록하기까지 서비스 타임 2년을 소비했다. 양의지는 경찰청에서 이미 만들어져 첫해부터 잠실에서 20홈런을 치는 비범함을 보였다. 2009 드래프트 4대 유격수 중 유일하게 군 문제를 해결한 선수 또한 두산의 허경민 뿐이다. 오재원, 이원석이 입대를 두산이 전혀 걱정하지 않을 정도다. 어떤 구단이 팀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는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이번에는 삼성의 구자욱과 한화의 하주석을 비교해보자. 삼성은 1년 차에 두각을 나타낸 구자욱을 곧바로 곧바로 상무에 보냈다. 2군 선수들이 자라나기 좋은 환경에서 구자욱은 탑 유망주로 성장 중이다. 그에 반해 하주석은 첫해부터 1군에서 써먹으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다 좌절을 겪었다. 2년 차에는 타격폼 개조를 한다고 2군 경기에도 출장이 뜸하다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드래프트 전과 프로에 입단한 후 두 선수의 위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애초에 구자욱의 잠재력이 뛰어났다고 할 수도 있으나 하주석이 두산이나 삼성에 입단했더라면 지금보다 나은 상황에 있지 않았을까? 유망주는 일단 1군에서 뛰는 게 좋다는 이용철 해설위원의 말은 두산과 삼성을 보면 구태의연하게 느껴진다.


이번 병역법 개정이 야구계에 타격이 되겠지만, 구단들이 선수 육성과 2군 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최근 나지완이 AG 예비~최종 엔트리에 들 경우 만 28세가 지나도 입대 연기가 가능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고로 90년생 선수들의 병역특례가 만에 하나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게 아니니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