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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1차 지명 부활은 속 보이는 꼼수?

류현진 이후를 대비할 선수인 유창식을 지명한 한화는 전면 드래프트의 가장 큰 수혜를 받았다. 이 제도가 유지된다면 향후 몇년 간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7월 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제6차 실행위원회가 열렸다. 실행위원회는 이사회가 열리기 전 9개 구단 단장들이 모여 실무를 상의하고 안건을 상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날 논의된 과제는 10구단 문제, 9구단에 따른 월요일 경기 편성 여부, 신인지명제도의 개정 여부였다고 한다. 가장 중요하고 다급한 과제는 이사회의 10구단 창단 반대에 따른 선수들의 올스타전 보이콧에 대한 대응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작 미디어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회의 결과가 없다. 물론 선수들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일 것이기에 크게 진전된 결과가 나올 것이란 예상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단장들 사이에 중요한 협의가 있었더라도 공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날 회의에서 1차 지명 제도 부활을 추진한다는 중대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전에도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되고 난 후 구단들의 아마야구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어 연고지명을 부활하자는 의견은 있어 왔다. 하지만 왜 하필 현시점에 이런 중대한 사항을 갑작스레 진행하는 걸까? 아마야구를 지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서? 마음만 있다면 전면드래프트 제도하에서도 연간 KBO에서 구단에 지급하는 수익금을 일정 부분 아마야구에 전달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더 연관성 있는 이유는 10구단을 반대하기 위해서라고 추정하는 게 설득력 있다.



애초에 1차 지명 제도를 포기하고 신인지명 방식을 전면드래프트로 바꾼 것은 9구단, 10구단 확장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2000년 박용호 KBO 총재가 프로야구를 지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변경했지만, 1차 지명제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사실상 광역연고권의 개념으로 운영됐다. KIA의 규약상 연고권은 광주시에 한정됐지만, 신인지명에서는 전남, 전북을 인정해 지역 고교생들을 모두 1차 지명 대상자로 하는 식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히어로즈는 리그 입성 과정에서 2000년부터 현대가 SK에 연고권을 침해한 것에 따른 보상금을 내야 했다. 당시 유니콘스는 SK에 인천에 대한 연고지 보상금을 받고 서울입성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수원으로 눌러 않게 된다. SK가 인천, 경기, 강원 지역의 연고권이 인정받는 상황에서 더부살이하게 된 것으로 몇 년간 이 지역의 선수들을 연고 지명했다. 만약 도시연고제를 칼같이 적용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유명무실하던 도시연고제 개념은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되고 나서야 의미를 찾게 된다. NC가 수월하게 창원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도 전면드래프트 덕이다. 만약 1차 지명 제도였다면 롯데가 경남지역의 연고권을 주장하며 NC의 리그 입성을 저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허락했다고 하더라도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했을 것이다.



이번 실행위에서 1차 지명 부활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10구단 입성 과정을 더 어렵게 하는 것과 동시에 반대표를 늘릴 수 있다. KIA는 10구단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밝히지 않아 왔는데 연고 지명제도가 부활하면 달라질 수 있다. 일단 광주, 전라 지역의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돼 왔기에 1차 지명을 찬성하는 팀이었다. 또 전북이 10구단 유치의 유력 후보이기 때문에 1차 지명 대상자를 나눠갖기를 반길 리가 없다. 10구단 찬성 쪽이던 SK도 수원에 10구단이 들어서게 되면 경기지역의 고교 선수들을 나눠 가져야 하기에 미묘하게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1차 지명제도 자체에 회의적이다. 박지훈이 대구 출신 선수라서 KIA 팬들이 정이 덜 갈까? 류현진은 인천 출신이지만 한화 팬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정 연고 선수를 원하면 2라운드에서 부터 지역 배려를 할 수 있다.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는 것은 오히려 전력 평준화에 도움이 되는 전면드래프트가 낫다. 만약 한화가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되지 않아 유창식을 뽑을 수 없었다고 해보자. 차후 류현진이 나가는 상황을 가정하면 끔찍한 일이다. 상위권 팀인 삼성이 찬성을 한다면 이해가 가도 한화가 연고지명을 찬성한다면 프런트가 '우린 성적에 관심없소'라고 인정하는 꼴이다.



유일하게 1차 지명의 명분이 되는 것은 구단들의 자발적인 아마야구 지원이다. 이 이유라면 연고지명 부활을 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득이 없자 아마야구를 냉대했던 구단들이 10구단 문제로 아마야구 활성화가 급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여기에 더해 아마 선수들의 취업 문을 늘려 줄 수 있는 10구단을 반대하기 위해 1차 지명 카드를 내놓은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정말 아마야구를 위한다면 10구단을 추진하고 체계적인 중고교 야구 지원책을 세우는 것이 이치에 맞다. 



프로 야구팬들 가운데 연고 지명을 선호하는 숫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1차 지명제도 부활은 언뜻 달콤해 보이는 유인책이다. 허나 1차 지명제도로 뛰어난 연고 선수들이 늘어날 거란 기대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각 구단은 지명 선수에 대한 고민이 적어져 스카우트 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시점에 1차 지명을 추진하는 것은 꼼수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설사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