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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야구

2012년 리그 하향 평준화 정말일까?

최근 리그가 하향 평준화된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SBS ESPN의 김정준 해설위원은 현재 리그의 실책성 플레이가 너무 잦아 리그의 질적 하락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시한 바 있다. 이러한 칼럼이 아니더라도 올 시즌 초 팬들의 정신 건강에 해가 되는 발암 야구가 종종 발생했던 것도 사실이다. 시즌 초 한화가 보여준 수비력이나 삼성 채태인이 보여준 본헤드 플레이, KIA의 장타력 상실 등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다수의 야구 팬들은 리그가 하향 평준화됐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향 평준화에 대해 타당성이 부족하며 경기 순간순간 인상이 작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전체 경기를 다 보지 않는 이상 프로야구의 경기력이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판단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좀 더 진실에 가까이 가기 위해 숫자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실책 수다. 


    



6 27일까지의 기록을 볼 때 올 시즌 경기당 실책 숫자가 늘어난 팀은 KIA LG, 한화 뿐이다. 롯데는 올해 두 번째로 실책이 많은 팀이지만, 작년보다는 줄어든 추세다. 리그 전체로 보면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비율이다. 적어도 기록원이 봤을 때 수비수들의 실책은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실책이 많아서라기보다 그 때문에 점수가 많이 나고 경기 시간이 늘어나 인상이 강하게 남았던 것은 아닐까? 비자책 점수를 살펴보자.

 


   



비자책점은 실책이 없었으면 실점하지 않았을 점수를 말한다. 왼쪽 표의 주황색 부분을 하늘색으로 나누면 자책점 비율, 1에서 이 수치를 빼면 비자책 비율이다. 작년과 비교해 보면 두산과 넥센만 비자책점의 비율이 늘었다. 대부분 팀에서는 실책으로 실점한 점수는 오히려 미세하게나마 줄었다. 표본이 커지면 실책에 비례하는 수치이기에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다.

 

위에서 보듯 실책만 놓고 보면 리그 수비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성립이 안 된다. 하지만 실책 수가 수비력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책을 범하지 않으려고 소극적인 플레이를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경기 수준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또 기록되지 않은 실책이 승패를 좌우하는 예도 많다. 다른 방식으로 수비력을 측정해보자.

 

 

 

수비 효율이라고 말해지는 DER(Defensive Efficiency Rating)은 현재 국내 실정에서는 가장 유용한 팀 수비 지표다.

 

DER = (타석-안타-삼진-사사구-에러로 인한 출루 허용) ÷ (타석-홈런-삼진-사사구)

 

공식만 보면 어려울 것 같지만 내용을 해석하면 간단하다. 타자가 친 공이 그라운드에 들어갔을 때 아웃을 잡아낼 확률을 나타낸다. 개별적으로 본다면 수비수가 아웃을 잡아내는 것은 타구 질과 방향, 운에 관계된 요소일 뿐 수비력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시즌의 커다란 통계로 보면 결국 뛰어난 수비력을 가진 팀이 많은 아웃을 잡아낼 확률이 크다. 그러므로 DER이 높을 수록 팀 수비력이 좋을 개연성이 크다. BIPA(인플레이시 안타가 될 확률)와 유사한 스탯인데 DER은 수비 측의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위는 MLB의 수비 스탯인 UZR/150 DER의 팀 랭킹을 매겨 상관관계를 나타낸 그래프다. UZR/150은 구장의 구간을 나누고, 타구의 방향과 강도, 구장 효과, 타자의 성향 등을 계산해 만들어낸 가장 각광받는 수비 지표다. 그래프를 보면 DER은 비록 UZR 순위와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2011년과 2012 6 27일까지의 국내 팀 DER 수치다.



 

리그 전체로 보면 수비 효율이라 불리는 DER 수치는 오히려 올라갔다. 1루수가 이대호에서 박종윤으로 업드레이드 된 롯데가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고, 논란이 됐던 한화도 지난해보다 높은 확률로 아웃을 잡았다. SK에서 영입한 후쿠하라 코치 영입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DER이 수비력을 정확히 나타내진 못하지만 지난해보다 악화된 것 같지는 않다. 반면 KIA는 상승세를 타려면 수비에서 더 안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SK의 수비수들은 5년 연속 가장 높은 비율로 아웃카운트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수치는 다소 하락했다. 전력분석팀의 재편성과 김성근 사단의 이탈이 영향을 줬을 거라는 추정은 나름 설득력을 얻는다. 속단은 이르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타자가 친 공이 아슬아슬하게 수비수 사이를 가르며 안타가 될 때 "아 작년 같으면 잡았을텐데 올해 선수들 경기력이 영 아니네" 라는 생각은 근거가 부족하다. 오히려 대부분 팀은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다. SK KIA 팬들만이 투정을 해도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전반적인 투고타저로 강한 타구의 비율이 줄어 수비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올해 평균자책점은 지난해 4.14에서 4.04로 낮아졌다.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ISO 수치도 6리 정도 줄었다. 하지만 이는 작은 차이로 타구의 질을 설명할 수 없고, 결론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지막으로 투수들의 제구력에 관련된 스탯을 살펴보자. 

 


 


리그 9이닝 당 볼넷 수를 찾아 보자. 볼넷은 투수의 제구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며 KIA의 이순철 코치는 해설할 때 볼넷이 많은 경기는 수준이 낮다고 평하기도 했다. 중계 중 괜히 볼넷 상황에 금연보조제 광고가 나오는 게 아니다. 올해는 작년과 비교해 볼넷이 미세하게 줄었다.

 


   


타자 몸에 맞는 공과 폭투 역시 투수라면 가급적 피해야 할 백해무익한 것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봤지만 역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종합하면 위 수치들로 리그 수준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어떠한 징조도 찾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1년 만에 경기 수준이 떨어졌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물론 이 정도 스탯으로 리그 수준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따른다. 야구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 경기력 하락을 우려한다면 전혀 근거 없이 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서두에 언급한 김정준 해설자의 중계를 매우 선호하며, 칼럼은 빼먹지 않고 읽을 정도로 팬이기도 하다. 경기 상황 시 아쉬움에 대한 비판이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되는 일은 없지 않은가?

 

다만, 이러한 논란이 좀 더 건설적이 되었으면 한다. 순위 경쟁이 치열한 것을 놓고 경기력과 연관 짓는 것은 사양이다. 전력 평준화는 리그 흥행에 기폭제이지 불안요소가 될 수 없다. 또 토종 에이스들의 승수를 근거로 부진하다고 재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앞서 봤지만 류현진은 부상 전까지 더없이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줬다. 그보다는 경기력 상승을 위해 그라운드를 비롯한 야구장을 정비하고, 트레이닝 시스템을 충원하는 논의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구를 하는 환경 조성은 9, 10 구단으로 가는 시기 프로야구에 가장 절실한 사안이다.



 ※ 이 글은 마구스탯에 송고되었습니다. 

 마구스탯과 한국 야구위원회 기록실, 팬그래프닷컴의 자료를 인용하였고 6월 27일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