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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KIA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가 두산을 상대로 승리하며 2017년 프로야구 챔피언에 등극했다. 시리즈 스코어는 4 : 1로 앞섰지만, 손쉽게 우승 반지를 손에 얻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 2개의 아웃을 잡기까지 안타 하나만 나왔다면 시리즈 전세가 완전히 바뀔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됐다. 애초에 정규시즌 1위도 마지막 날에 결정되는 등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였다. 플레이오프에 투수진 소모가 별로 없던 터라 2년 연속 디펜딩 챔피언 두산의 우세를 예상하는 이도 많았다.



두산과 KIA의 전력을 보는 두 가지 관점


2009년 후반기 

KIA 84득점 212실점 72+ 승률 .739

SK  257득점 165실점 92+ 승률 .714(현재 승률 계산 방식 : .732)


2017년 후반기

KIA  319득점 311실점 +8   승률 .517

두산 385득점 256실점 +129 승률 .700


후반기 승률을 봐도 양 팀의 페이스를 알 수 있다. 2009년 SK와 경쟁하던 시기에도 KIA는 후반기 SK에 승률이 앞선 채 정규시즌을 마쳤다. 그에 비해 올해는 1위와 13경기 차 5위에 머물던 두산이 7할의 승률로 기적적인 상승세를 탔고, KIA는 .517의 승률에 머물렀다. 득실점 마진으로 본다면 무려 100점이 훌쩍 넘는 차이를 나타낸다. 이 수치만 본다면 업셋의 가능성이 어느 해보다 컸던 시리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박도 충분히 가능하다. 


2017년 전체   - KIA .840OPS 4.82ERA 4.70FIP / 두산 .828OPS 4.38ERA 4.79FIP

2017년 후반기 - KIA .807OPS 4.86ERA 4.69FIP / 두산 .839OPS 3.90ERA 4.87FIP  

2017년 9월    - KIA .811OPS 4.83ERA 4.37FIP / 두산 .833OPS 4.06ERA 5.09FIP


두산이 잠실을 홈으로 두고 있음에도 활화산 같은 타격으로 후반기 돌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투수력에는 상당히 의문부호가 붙은 상태였다. 두산 선발 4명의 후반기 평균자책적은 4.20으로 낮으나 장원준(4.63FIP)을 제외하면 나머지 투수는 FIP가 모두 5점대 이상을 기록했다. 니퍼트와 보우덴은 모두 9월 6.6X FIP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했다. 반면 KIA는 9월 최형우가 최근 4년 최악의 한 달을 보내며 부진하긴 했으나 득점에 비해 타격 자체가 안 되는 팀은 아니었다. 투수진의 FIP는 9월 들어 불펜과 선발 모두 안정세를 보였다. KIA의 에이스라던 헥터가 오히려 4.82FIP로 난조의 기미를 보였고, 임기영은 3.56FIP로 회복을 알렸다.


득실점과 승률을 본다면 후반기 두산은 압도적이다. 허나 투타 기록(FIP, wOBA OR OPS)을 본 피타고리안 승률은 1푼6리로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이마저 9월 KIA가 2푼 9리로 역전했다. 시즌 전체로 본다면 당연히 KIA의 우위다. 2009년과 마찬가지로 FIP에 비해서 실점이 낮아 2위팀의 선전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PO에서 정점 찍은 두산 중심타선, KS에서 억제한 비결은?


KIA에게 두려운 일은 후반기 두산의 성적이 아니라 플레이오프에서 달아오른 두산의 타격감이다. 시리즈에서 5개의 홈런과 12타점 2.300OPS를 기록한 오재일을 필두로 김재환과 박건우 등 두산 중심 타선은 NC 투수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4경기 평균 12.5득점을 기록하며 시즌 중 KIA의 8경기 연속 두 자리 수 득점 페이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런 페이스라면 상대 팀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KIA의 첫 번째 선발 투수 헥터 역시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천적이라 불린 박건우에게 2개의 안타와 적시타를 허용했고, 김재환과 오재일에게는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선취점의 빌미를 제공하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5회 연타석 홈런으로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다행히 KIA는 3가지 호재가 발생하며 두산 중심타선의 위력을 대폭 반감시킬 수 있었다. 첫째는 바로 좌투수의 활약이다. 김재환은 최근 4년 우투수에게는 .617의 장타율을 기록했으나 좌투수에게는 .491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평범(?)했다. 오재일은 좌우 가리지 않은 타격이나 좌투수를 상대로 피홈런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NC는 선발이 일찍 무너지고, 구창모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나 선발투수의 이닝이팅 능력이 뛰어난 KIA는 다르다. 좌투수가 한 번만 잘 막는다면 KIA 불펜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이 상황에서 코칭 스탭이 승부수로 내세운 선수가 심동섭이다. 심동섭은 시즌 중 6.14ERA로 4.13FIP로 썩 좋지 못했지만, 정규시즌 후 좌투수 중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필승조로 투입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다. 한국시리즈 1.2이닝 5.40ERA 9타자만 상대해서 심동섭의 기록이 별거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심동섭은 마무리 이상의 경기 중요도 상황(2.18gmLI, KS 김윤동 김세현 다음 3위)에 등판했고, 오재일과 김세현을 총 무려 6번 상대하며 전담 마크했다. FIP는 0.70으로 KIA 불펜 중 가장 낮다. 심동섭이 1차전 등판해 거대한 두 좌타자를 막으면서 두산 득점 페이스를 낮춘 게 시리즈의 전체적 분위기를 크게 좌우했다. 3차전 김재환에게 빗맞은 적시타를 허용한 후 오재일의 포수 파울 플라이는 시리즈를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아웃 카운트였다. 이러한 역할은 KIA 불펜 중 오직 심동섭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정규시즌 대비 활약이라고 하면 금전적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스승 간베 토시오 코치 앞에서 양현종은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됐음을 직접 증명했다. (사진 출처 - KIA 타이거즈)


심동섭이 시리즈의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라면 MVP 양현종은 2017년 포스트시즌의 주인공이다. 2차전 설명이 필요 없는 환상적인 피칭은 야구팬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경기 초반 상대를 윽박지르며 두산 타자들의 감을 흔들리게 했고, 상대전적에서 앞선 박건우와 김재환을 작아지게 만들었다. 9회까지 던지며 불펜 투수들을 쉬게 만든 공헌도 좋았을뿐더러 다음 나올 선발 투수들에게도 자극과 자신감을 심어주게 했다.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무패 신화를 이어가게 한 주인공으로 올드팬들에게는 '까치' 김정수의 향수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어찌 보면 양현종의 한국시리즈 활약은 예견된 일인지 모른다. 그동안 양현종은 체력적 문제 때문인지 시즌 중 다소 기복과 제구력에 약점을 보였다. 2015년 184.1이닝 2.44의 평균자책점에도 불구 윤석민보다 뛰어난 투수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고, 동기 김광현과의 평가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 양현종은 FIP로 계산 시 처음으로 최상위 외국인 투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즌이고, 대한민국 에이스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다. 대단한 임팩트의 한국시리즈 2차전은 그에 대한 확인을 한 무대였던 셈이다.


양현종과 심동섭이 두산 중심타선을 억제한 KIA의 자체 기제였다면 나머지 두 가지는 외부 요소에 가깝다. 잠실은 포스트시즌에도 그렇고, 정규시즌에도 승수로 보면 두산에 불리한 곳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도 장타자가 많은 두산에 올해 타격에 손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비잠실에서 정규시즌 .902의 OPS를 기록한 반면 잠실에서는 .764의 OPS를 기록했다. 마침 한국시리즈는 두산의 투수력보다 타격으로 승부를 봐야 했기에 잠실 이동은 그리 득이 되진 않았던 듯하다. 3차전 팻딘이 좋은 투구를 했으나 1회 박건우, 2회 오재일, 6회 박건우의 타구는 다른 구장에서는 홈런이 아니면 2루타가 될 비거리였다. 


마지막은 플레이오프 두산 야수들이 당한 부상과 김태형 감독의 조금은 고집스러운 라인업 기용이다. 플레이오프에서 투수진의 소모가 적었으나 양의지, 박건우가 경기 중 부상 혹은 몸 상태가 악화되어서 정상적인 수비와 타격이 어려웠다. 어깨 부상이 있던 김재호는 1차전 타격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음에도 주전 기용되었다. 정상컨디션이 아닌 양의지는 양현종에게 비교적 강한 타자였으나 4번 모두 출루하지 못하고, 수비에서 결정적 실수로 결승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김재호는 포스트시즌 13타석에서 단 하나의 안타나 볼넷도 기록하지 못했다. 수비에서도 평소 보이던 안정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마침 세 명의 선수는 모두 센터라인. 두산 수비가 휘청할 수밖에.


가혹하게 말하면 두산 코칭 스탭이 부상 선수들의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지명타자가 있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 투수들이 느끼는 편안함을 상대에게 안겨주고 만 셈이다. 프로야구 특히 단기전에서 감독의 역할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곤 하지만, 이번 시리즈 부상 선수들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코칭 스탭의 실책이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두산이 KIA에 확실히 앞선 강점은 야수진의 깊이였고, 이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KIA보다 1명 더 많은 두산 엔트리내 13명의 투수 중 김성배, 박치국, 이영하는 출장시키지 못했고, 마지막 5차전 대타를 쓸 야수는 부족해 보였다. 한국시리즈에 들어가기 전 야수 부상자를 대하는 자세가 약간 안일했다고 여겨진다.



수성에 몰두한 두산, 절실히 바꾸려 한 KIA


 

버나디나는 한국시리즈에서 호타준족의 야수가 홈런이 아니고서도 얼마나 미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사진 출처 - KIA 타이거즈)


이번 결과를 보는 시각을 조금 더 넓히면 더욱 흥미롭다. 유희관은 미디어데이에서 단군 매치라는 별칭을 언급하며 두산이 우승할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그런데 3년간 인내한 팀은 두산보다 KIA가 더 가깝다. 3년 전 KIA는 안치홍과 김선빈이 입대하며 본격적인 리빌딩 체제에 들어갔다. 김기태 감독에게 성적을 기대하기보단 발전의 토양을 마련하라는 주문이었고, 해외파 윤석민의 복귀 외에 2년간 FA 보강은 없었다. 그나마 송은범의 보상 선수도 상무 입대가 예정된 임기영이었다. 


2년의 리빌딩은 방치가 아니다. 현장과 프런트가 장단을 맞추면서 선수 육성에 힘썼다. 2015시즌 중 한화와 트레이드를 통해 김광수, 노수광, 오준혁, 유창식을 영입했다. 이중 노수광은 김호령과 함께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2016년 KIA 외야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내야 세대교체가 여의치 못하자 김기태 감독은 염경엽 감독과의 친분을 활용해 서동욱을 영입해 올해까지 쏠쏠히 활용했다. 


2016년 가을 야구 성공과 에이스 헥터의 스카우트 성공으로 승부를 볼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 KIA 프런트는 화끈한 투자로 현장을 지원했다. 거액을 들여 최형우 영입을 성공함과 동시에 나지완에 이어 양현종과 재계약에 성공했다. 온전히 프런트의 능력으로 된 일은 아니지만, 써야 할 시기 지출에 주저함이 없었다는 점은 인기 구단으로서 프로야구 흥행에 기여한 바가 아주 크다. 외국인 선수 영입도 거침이 없다. 2옵션 투수로 재계약이 아닌 투수에게 팻딘에게 지불한 90만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다. 야수도 고민 끝에 필과 재계약이 아닌 새로운 포지션에 호타준족 버나디나를 선택했다. 버나디나가 부진하자 필을 다시 스카우트로 영입하며 끝까지 보강에 게으르지 않았다. 이대호와 계약했다고 외국인 선수 영입에 돈을 최대한 아낀 롯데나 보우덴과 맨쉽이 부진함에도 교체에 미온적이던 두산 NC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트레이드는 더 활발했다. 작년 좋은 활약을 한 노수광과 이홍구를 SK에 보내고 주전 포수로 기용할 김민식과 베테랑 외야수 이명기를 영입했는데 모두 주전으로 도약했다. 김민식은 부진한 타격에도 클러치 상황에서는 조금 나았고, 강한 어깨의 송구력으로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이명기의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진 타격 페이스와 기대 이상의 수비는 트레이드를 완벽한 성공으로 만들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에도 쉬지 않았다. 팀의 약점인 불펜에 1라운드 투수 유망주를 내주고 김세현을 영입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넥센으로 간 이승호가 선발로 대성하더라도 무슨 후회가 남을까? 라인업의 야수 구성과 선발 로테이션, 필승조까지 3년 전과 비교해 새 얼굴이 주를 이룬다. KIA가 했던 지난 몇 년 간의 움직임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했다면 지금 KIA의 우승은 없었을 확률이 높다.


전력이 갖춰진 두산이 KIA처럼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할 필요는 없다. 화수분처럼 야수 유망주들이 대기 중이라 KIA처럼 극단적인 투자가 불필요한 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 두산은 유독 트레이드에 소극적인 팀 중 하나였고, 전력보강을 위한 과감한 트레이드보다는 도저히 길이 안 나는 선수를 가치가 떨어진 후 내어주는 형식이 대다수였다. 이 정도만 해도 1위가 가능하다는 자신감, 혹은 괜히 일을 키워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진정한 미러클을 이뤄내기는 결국 불가능했다.


단기전 일주일 남짓한 승부 결과는 요행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3년 전부터 KIA는 오늘의 우승을 위해 때로는 고개숙이고, 각 분야에서 뒤처짐 없이 분주히 달렸다. 이상적인 과정과 달콤한 결실, 2017년 KIA는 챔피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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