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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봉인된 레전드 박경완, 지도자로 돌아오다

박경완의 은퇴가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아니더라도 팬들에게 위안을 주는 소식이 됐다. (사진 출처 - SK 와이번스)


22일 이른 아침부터 SK 박경완에 대한 빅뉴스가 연이어 터졌다. 첫 번째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는 소식이다. 이번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박경완의 거취 여부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정상호와 조인성 두 명의 정상급 포수를 보유하고 있는 SK에서 박경완은 출장 기회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타 팀 이적을 통해서라도 경기에 뛰고 싶다며 감독이나 프런트와 면담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경쟁'을 하라는 완고한 거절이었다. 동등한 경쟁이 가능한 상황이면 선수가 왜 면담을 자처하고 나섰겠는가? 올해 김동주가 그렇듯 나이 든 노장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란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 


결국,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이만수 감독의 답변에도 불구 2013년 겨우 21타석만을 들어섰다. 트레이드 후폭풍을 두려워하는 구단의 이기심과 프로야구의 조악한 규정이 20년 차 힘 떨어진 베테랑에게도 다른 곳에서 뛸 기회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불합리로 봉인된 박경완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한국시리즈가 열리기 전 휴식기에 은퇴 결정을 하고 말았다. 다른 팀에서 선수 생활을 연장하느니 SK에서 끝내는 게 낫겠다는 박경완의 태도 변화는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의례적인 답변 같았다. 일각에서는 옛 스승 조범현 감독이 있는 KT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왔다.


그런데 곧이어 나온 기사를 통해 박경완이 왜 그런 코멘트를 했는지 이유가 밝혀졌다.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한 박경완이 곧바로 SK의 2군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발 빠른 소식이었다. 이는 곧 은퇴를 결심하기 전 SK의 코치 제안을 의미 받아들였고 협의가 됐다는 의미다. SK 2군 감독직은 현 SK 이만수 감독이 부임하기 전 거쳤던 곳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구단 내에서 차기 감독으로 박경완을 고려하고 있다고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코치 경험 없는 은퇴 선수에게는 전례가 없을 만큼 파격적인 대우다.


현재 프로야구의 상황을 보자.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LG와 넥센의 사령탑은 젊고, 새로운 인물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제 와서 김인식이나 김재박 감독처럼 현장을 오래 떠나 있던 과거의 명장을 앉힌다는 것은 야구계의 흐름과는 이질적이다. 또 김성근 감독 재신임은 당연히 불가.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박경완 카드는 말 그대로 안성맞춤이다.




한일 양국의 전설적인 두 포수의 만남. 박경완은 후루타보다 진중하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길 희망한다. (사진 출처 - SK 와이번스)


포수 박경완이 누군가? 프로 야구 31년사에서 가장 수비력이 뛰어난 포수로 불린다. 올해 PS에서 두산 최재훈에 대한 찬사가 많은데 박경완은 그 이상의 지배력으로 15년 넘게 프로야구에 군림해왔다. 게다가 타자로서도 일류. 선수로서 완벽에 가까운 커리어다. 김경문이나 조범현 같은 포수 출신 명감독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선수 시절 동료와 후배들로부터 신망도 높았다. OBS에서 했던 불타는 그라운드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후배가 농담조로 박경완이 선수겸 감독이 되면 어떠냐는 말을 한 기억이 있다. 일본에는 후루타 아쓰야라는 시대를 풍미한 포수가 선수겸 감독으로 야쿠르트에 뛴 적이 있다. 최재훈의 스승으로 유명한 현 지바 롯데의 이토 감독도 현역 은퇴후 곧바로 사령탑을 맡아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박경완은 국내에서 그들과 비교할 유일한 포수가 아닐까 싶다.



단,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나도 야구는 선수가 한다. 어떤 이들은 감독이 바뀌면 팀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 믿지만 실제로 미디어가 영웅을 남발하듯 환상일 뿐이다. SK는 김성근 감독 없이도 2회 연속(엄밀하게 말하면 1.5년)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김성근 감독도 SK를 만나기 전에는 우승 경력이 한 번도 없다. 훗날 박경완이 감독으로 부임한다고 해도 현 전력에 대한 고려 없이 팬들의 기대치만 높인다면 또 한 명의 레전드가 추락하는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쉬운 박경완의 은퇴. 다행스럽게도 팬들에게는 이별이 아닌 만남이다. 만남이 행복이 되려면 이만수 감독의 입지 축소에 통쾌해하기 전에 감독 혹은 코치라는 보직 자체에 대해 냉정히 인지할 필요도 있겠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였던 박경완이 외부 환경에 의해 떠들석해지기보다 담담하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면 한다. 다른 이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고, 온전히 2군 감독 박경완을 바라보는 자세가 팀의 레전드를 대하는 예의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