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메모

시류 거슬러 오르는 감독 대공황 시대

추운 날씨에 치러지는 포스트시즌. 하지만 올해 겨울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슈거리와 함께할 예정이다. 바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감독 교체가 연이어 발생할 확률이 높다.

 

먼저 계약이 1년 남은 김시진 감독은 17일 정규시즌이 끝나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롯데는 최근 보강된 전력에 비해 성적이 크게 미치지 못했고, 시즌 중반 선수단과 코치진이 갈등을 겪은 사건을 계기로 감독의 통제력이 일찌감치 상실되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다음으로 부임기간 2년 연속 최하위의 성적과 고령의 나이까지 한화 김응용 감독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팀을 떠날 게 확실시된다. KIA 선동열 감독도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재계약의 이유를 찾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SK 이만수 감독은 그간 독특한 지휘 방식으로 악화된 여론과 2년 연속 4강 실패 등 재계약 하기에는 걸림돌이 많다. 2003년 이후 처음으로 5위 밑으로 내려간 두산도 송일수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타팀 이상이다.

 



김성근 감독은 누구보다 야구에 대해 고민하는 탐구가로 알려졌다. 신이라는 칭호를 받는 이도 야구에 대해서 이렇게 겸손할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 SK 와이번스)

 

역대 오프시즌 중에 감독 교체가 가장 많이 이루어졌던 시기는 1984, 1989, 1991, 2012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4개 구단의 사령탑을 바꿨다. 2012년에는 그 전해 이만수 감독 대행이 지휘봉을 이어받은 것이므로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90년대와는 궤를 달리한다고 하겠다. 올해 위에 언급된 5개 구단이 전부 인사이동을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지난 20년 동안 현행 감독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임 감독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썰들이 난무한다. 마침 재야에 있는 김성근 감독에 대한 팬들의 애절한 구애는 끊이질 않고 있다.

 

 

감독 선임에 대한 언론과 야구팬들의 지대한 관심은 상위권 팀의 류중일, 염경엽, 김경문 감독의 평판을 본다면 고개가 끄떡여질 수도 있다. 이들은 각각 현대 야구에서 중요한 수비와 주루 플레이에 조예가 깊고, 전문가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감독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팀 성적에서 타 팀 감독보다 얼마나 공헌하고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과연 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승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각 구단의 상황, 시대를 평균 낼 때 누가 가장 성적을 잘 내는 감독인지 측정할 수 있을까?

 

감독의 명성은 개인이 통제하기에는 어려운 팀 성적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 '야신' 칭호를 듣는 김성근 감독은 언더독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탁월한 지도력을 입증해 왔으나 SK에서 3번의 우승 반지를 획득하기 전에는 김응용 감독에 가려진 2인자라는 시각도 존재했다. 단체 스포츠인 야구에서 감독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팀 성적을 감독 능력의 척도로 삼는 야구계의 일반적인 실태는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마치 투수의 능력과 관계없이 포수 등판시 평균자책점을 볼 배합, 투수리드 능력으로 추정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감독 선임만으로 팀의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한화보다 17년 먼저 2군 전용 구장을 세운 삼성은 이제 BB아크를 통해 3군 육성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사진 출처 - 삼성 라이온즈)

 

철옹성 같은 왕조를 쌓아가고 있는 삼성, 신흥 강호로 떠오른 넥센, 신생팀으로 가을 야구에 참가한 NC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선수 육성에 굳건한 시스템을 갖췄거나 프런트가 영민하게 움직이는 팀이라는 것이다. 하위권 팀과 비교하면 더욱 명확하다. 삼성은 어느 구단보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팀으로 알려졌다. 1996년 경산볼파크를 건설해 2군 육성에 힘써왔던 삼성은 올해 초에는 BB아크를 설립해 3군 육성을 더욱 체계화시키고자 힘쓰고 있다.

 

반면 KIA와 한화는 최근 들어서야 겨우 2군 구장을 건립했으니 삼성과는 무려 17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SK는 아직까지도 2군 전용 구장이 건설 중이라 아시안게임 기간 지방을 오가며 훈련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 전까지 김광현이 투수조 막내였다는 사실은 이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단순히 감독이 교체해서 신진급 투수들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니다.

 

트레이닝 시스템 역시 차이가 난다. 유명한 삼성트레이닝센터(STC)는 선수들의 재활을 크게 도와 전체적으로 구단의 가치를 키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항상 부상에 시달리는 KIA가 삼성과 천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프런트의 구성도 빼놓을 수 없다. 히어로즈는 모기업에 의존하는 타 구단과 달리 스스로 자생하는 국내 유일의 야구 전문 기업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보니 MLB의 단장들처럼 이장석 대표가 야구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데 거리낌이 없고, 일원화된 지휘체계로 과감한 움직임을 보인다. 최근 드래프트와 트레이드 성과, 외국인 투수 교체 등 한발 빠른 움직임은 넥센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만하다.

 



롯데 프런트는 프런트가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외국인 선수 교체와 선수 보강이라는 책무를 소홀히 하고 말았다. (사진 출처 -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 선수의 하락세가 분명함에도 교체 시기를 놓쳐 버린 롯데는 데드라인 시기 확실한 트레이드 카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중첩된 야수진과 헐거운 투수진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한 두산도 마찬가지. 프런트의 행동력과 협상력 모두 넥센과는 천양지차다.

 

신생팀 NC도 전 스포츠 기자를 구단 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프런트의 전문화를 꾀했고, 마케팅과 스카우트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프런트가 재료를 잘 준비하지 못했다면 김경문 감독도 팀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감독들이 지난 몇 년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옹호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으나 팬들의 날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치명적 과오를 반복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감독 교체 자체를 팀 혁신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태도는 리그 발전에 유해한 요소에 가깝다. 프런트가 팀 내 위기 상황에서 묘수를 찾기보다 한 발 빠져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는 까닭은 성적을 내지 못해도 그에 맞는 책임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감독 탓으로 돌리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그래서 프로야구는 마땅히 프런트가 해야 할 일임에도 감독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실패를 반복한다.

 

어느 리그를 막론하고 팬들은 김성근 감독과 같은 영웅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허나 자신의 팀에 기적과 같은 마법이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신을 접견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팀이라면 범인이 함께 벽을 쌓아 올리는 구조를 만드는 게 현명하다. 적어도 2014년 시즌 결과는 이런 야구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