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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토사구팽당한 김시진, 농락당한 프로야구

사진 제공 - 넥센 히어로즈



태풍으로 다시 우천 순연된 프로야구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2009 시즌부터 히어로즈의 감독을 맡아온 김시진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는 것이다. 김시진 감독은 지난해 재계약을 맺어 3년 계약의 첫 시즌이 마감하지도 않은 시점이다. 더군다나 팀 성적도 시즌 초 예상보다 좋아 경질의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 올 시즌 초 넥센이 4강 경쟁을 할 거라고 예상한 이가 얼마나 있었는가?



겉모습만 보자면 이와 유사한 일이 몇 년 전에도 있었다. 삼성은 200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선동열 감독을 4년 계약을 남겨둔 상황에서 갑작스레 경질시켰다. 선 감독 경질이 야구 내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룹 고위층의 라인 정리 때문이라는 설 때문에 더 논란이 됐다. 실제로 다른 원인이 있었다 해도 감독 지위를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구단의 태도에 야구인들은 모욕감이 들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김시진 감독은 1993년부터 태평양 돌핀스 코치부터 2007년 현대 왕조가 마감할 때까지 팀을 지켜온 상징 같은 존재였다. 과연 김시진 감독이 알바 짤리듯 팀에서 쫓겨날 만큼 큰 과실을 저질렀는지 의문이다. 설령 보기와 다르게 김시진 감독에 대한 내부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면 작년 재계약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몇 달의 성적으로 살아남을 감독은 없다.

 

이장석 사장은 지난 몇 년간 현금 트레이드로 프로야구 시장을 어질러 놓은 것처럼 야구계를 다시 한번 농락했다. 이것이 야구인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그러면 왜 김시진 감독이 경질된 걸까? 전후의 사정을 미루어 넥센의 결정은 단시간 내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4강 경쟁에서 멀어질 시기였을 텐데 프런트는 지금 넥센의 전력에서 더 쥐어짤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김시진 감독도 여유를 많이 두는 편은 아니겠지만, 상식이 있는 야구인으로서 넥센이 올해보다 내년 이후가 승부를 걸 시기라는 점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각차가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을 만들어 냈을 수 있다.


넥센의 지난 오프시즌을 생각해보자. 이택근을 시장가보다 훨씬 비싼 금액에 FA 계약을 맺었고, 김병현을 후한 대접으로 팀에 복귀시켰다. 초저가 구단 넥센의 뜬금없는 변화는 프로야구의 부흥기에 팀을 높은 가치로 매각하기 위한 수순으로 비칠 수 있다. 조태룡 단장은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5년을 위해 단행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그보다는 당장 구단 가치를 위해 2년 내 성적을 내줄 감독을 찾는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김시진 감독의 남은 계약기간도 크게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프로야구 관례상 퇴임한 감독이 새 팀을 찾으면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김성근 감독이 고양 원더스 잔류를 선언한 상황에 김시진 감독은 10구단의 가장 유력한 후보다. 또 어느 팀이든 빈자리가 생기면 김시진 감독은 하마평에 가장 먼저 오르내릴 것이다.




넥센이 김시진 감독을 경질하고 내년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차기 감독 후보로 현장 복귀를 선언한 김응룡 감독 혹은 김인식 감독을 고려할 수 있는데 노장 감독들은 선수들을 더 세차게 몰아붙이곤 한다. 조범현 전 KIA 감독도 2009년 우승을 경험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김시진 감독처럼 히어로즈의 선수들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은 없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넥센의 젊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무엇보다 누가 됐든 김시진 감독이 경질된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성적을 내기 위한 무리한 경기 운영이 될 것은 자명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팀의 불안요소다. 토사구팽당한 김시진 감독, 그에 대한 가장 큰 피해가 넥센의 유망주들에게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