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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한미일 기록으로 예상하는 류현진 포스팅 금액

정규시즌이 한 달여 남은 시점, 프로야구에서 최고 이슈는 순위 경쟁이 아니다. 한국 최고의 투수인 류현진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을지가 연일 뉴스난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2일 류현진이 취재진 앞에서 "몸값과 관계없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는 인터뷰가 발단이 됐다. 2006년부터 풀타임 시즌을 치른 류현진이 FA가 되려면 2014시즌이 끝나야 하나, 구단의 허락이 있으면 올 시즌 후부터 포스팅 절차로 해외진출이 가능하다. 설사 류현진이 별다른 언급이 없었더라도, 리그 에이스의 미국행 이슈는 오프시즌 화두였을 것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화 측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류현진의 미국 진출을 막지 않겠다면서도 신임감독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내보였을 뿐이다. 이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류현진을 보내는 것을 찬성할 감독이 어디 있겠으며, 신임감독이 류현진의 거취를 결정할 만큼 힘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단순히 입장 표명을 꺼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진 제공 - 한화 이글스



류현진으로서는 가능한 전성기에 가까운 시기에 미국에 도전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포스팅 절차에 따른 연봉에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것도 이 때문. 사실 금액적으로도 크게 손해가 없다. 메이저리그에서는 3년을 채우면 FA가 아니더라도 연봉조정 신청을 할 수 있어 본인이 하기에 따라 장기 고액 계약이 가능하다. (슈퍼 2조항에 따라 3년 차부터도 연봉조정 신청 가능) 국내에서 FA가 되기 전까지 받을 연봉이 10억이 안 될 터라 포스팅으로 100만 달러(약 11억)의 연봉만 받아도 손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단, 윤석민처럼 FA에 1년을 앞뒀다면 사정이 다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과연 한화는 어떤 이득이 있나?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투수의 친정팀이라는 의미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형적 가치다. 포스팅으로 해외 진출 시 소속팀에 복귀해야 한다고 해도 국내에 일찍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류현진은 미국이 아니더라도 일본에서는 충분히 통할 것이고, 이번에 한국을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는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류현진을 2년 일찍 보내면서 한화가 얻는 구단 운영상 이득은 포스팅 절차에 따른 이적료가 될 것이다.



만약 선발진이 부진한 보스턴 구단이 류현진의 입찰금으로 500만 달러를 제시했다고 해보자. 최근 한국의 A급 용병에게 제시되는 연봉은 100만 달러를 상회한다고 한다. 한화는 바티스타와 함께 짝을 이룰 선수로 기존 예산과 함께 100만 달러만 추가해도 니퍼트 못지않은 선수를 스카우트할 수 있다. 사실 50만 달러만 스카우트 시스템에 투자해도 질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또 한화에 꼭 필요한 3루수 정성훈은 300만 달러(약 34억)면 충분히 계약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니퍼트와 정성훈의 올 시즌 WAR(승리기여도) 합은 류현진 한 명보다 약 1승 이상 높다. 한화가 앞으로 2년간 우승 확률이 희박하다고 할 때, 400만 달러 이상을 받는다면 류현진을 2년 일찍 보내는 게 상식적인 일이다. 300만 달러라도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문제는 MLB 구단이 포스팅 절차로 얼마를 한화에 넘겨줄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반응은 긍정적이다. 9월 6일 대전 경기에서는 10개 구단 20명 이상의 스카우트가 류현진의 투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볼티모어 구단은 지난 오프시즌 정대현에게 2년 300만 달러를 오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현에게 2년 동안 300만 달러 오퍼가 사실이라면, 류현진에게 3년 1000만 달러 혹은 4년 1200만 달러의 금액은 합리적이다. 



과연 미국 스카우트가 그정도 고액을 제안할 정도로 류현진이 매력이 있는 선수일까? 일단 체격과 구속 자체가 메이저리그급이다. 류현진의 KBO 공식 프로필은 6'2" 216lb로 양키스 현 로스터의 투수 평균 체격 6'3" 223lb와 거의 흡사하다. 아마도 체중은 더 나갈 듯싶지만.


구속은 어떨까? 팬그래프 닷컴의 자료를 인용하면 MLB 좌완 투수 중 100이닝 이상 투구한 선발 투수 38명의 패스트볼(포심) 평균 구속은 90.4마일이다. 데이빗 프라이스가 95.6마일로 가장 빨랐고, 배리 지토가 83.7마일로 가장 느린 볼을 던지는 투수다. 


 



위는 2011년, 2012년(9월 6일까지) 류현진의 구종별 평속이다. 143.3km를 단순 환산하면 89마일이 나온다. 그런데 외국인 투수들의 사례를 보면 이런 단순 비교는 오차가 생길 수 있다. 




탈보트의 올 시즌 구속 140.8km 단순 환산하면 87.5마일이다. 2010년 선발로 28경기 159.1이닝, 2011년 12경기 선발로 63.2이닝을 던졌던 2년간 탈보트의 투심패스트볼 평속은 90.4마일이 나왔다. (포심은 던지지 않은 것으로 측정) 국내에서 포심으로 분류된 공이 투심이라고 해도 2마일이 넘는 차이다. 83년생 탈보트의 젊은 나이와 기용 방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갑작스럽게 구속이 저하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양국의 스피드건 차이 일 수도 있다.




2010년 선발로 174.1이닝, 2011년 불펜으로 37.1이닝을 던진 부시의 구속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스피드를 단순 환산하면 85.4마일이지만, MLB에서는 86.2마일, 87.5마일을 기록했었다. 약 1~2마일가량 국내에서 평균 구속이 낮게 측정됐다.


2011년 10번의 선발 등판을 한 KIA의 소사도 1.5마일 차이, 구원 투수로 뛰었던 바티스타나 소사도 약 1마일 이상 차이가 난다. 물론 리즈처럼 국내와 미국시절 평속이 유사한 예도 있으나 대부분은 이와 같은 현상을 보였다. 이로 미뤄볼 때 스피드건의 차이는 존재하며,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팬그래프에 측정되는 평속도 약 90마일을 웃돌 것으로 예상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 좌완 선발 투수 평균에 가깝고, 스카우트들에게 플러스 이상급 구질로 평가받는 체인지업과 함께라면 경쟁력이 있는 구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위 다섯 명의 투수들은 국내에 오기 전후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에 가까운 활약을 한 선수들이다. 이 중 작년에 뛰었던 탈보트와 저마노는 현재 소속팀 액티브 로스터에 포함될 만큼 깜짝 활약 중이다. 류현진이 이 투수들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은 한국 리그를 봤던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혹시라도 승수가 적다고 불만을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 기사에서 더 건강해진 구위로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트레비스에게 이와 비슷한 내용의 질문이 나왔다. 류현진과 윤석민이 올해 승수가 적어 성적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해 트레비스는 "경기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중략) 나는 그래서 방어율(ERA)와 WHIP, 두 가지 항목만 유의 깊게 본다." 라고 답변했다. 


트레비스가 말 한대로 승수는 투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스탯이다. 하물며 MLB에서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남은 기간 류현진이 10승을 하든 못하든 메이저리그 진출과는 전혀 무관한 사항이다.


 



9월 16일까지의 류현진의 커리어 기록이다. 피홈런이 비교적 많기는 하지만 타자 친화적인 대전구장임을 감안해야 한다. 류현진은 올 시즌 탈삼진 비율이 9이닝당 10개에 달할 정도로 높고 그에 비해 볼넷 수는 2개 정도로 유지했다. FIP는 2.55로 리그 1위다. FIP는 수비무관 방어율로도 불리며 가능한 변수를 줄이려는 스탯이다. 스카우팅에 한정할 때 확실히 평균자책점보다 유용한 스탯이라고 하겠다. 리그를 이동한 한미일 선수들의 FIP기록을 바탕으로 류현진의 기대치를 살펴보자.


 





FIP+는 리그 평균 ERA(FIP)를 개인의 FIP로 나눈 후 100을 곱해준 값이다. 파크팩터는 고려되지 않았고 MLB는 내셔널리그와 어메리칸 리그를 구분하지 않았다. 가능한 리그 이동 전후 3년간의 기록을 구하되 마쓰자카는 2004년의 리그 성적을 구할 수 없어 NPB 2년간의 기록을 구했다. 100을 기준으로 높을수록 리그 평균보다 잘 했다고 해석하시면 된다.



위 기록을 보면 다르빗슈 유와 마쓰자카가 왜 5000만 달러나 되는 엄청난 금액의 포스팅 금액가가 나왔는지 알 수 있다. 무려 160대의 FIP+로 NPB를 정복한 투수들이었고 구위 역시 나무랄 데 없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다르빗슈 유의 체격과 구위, 기록이 좀 더 매력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가장 뛰어난 기록을 보인 선수는 적지 않은 나이로 MLB에 도전한 구로다 히로키다. 구로다가 비교적 투수 친화적인 NL 서부에서 출발한 것도 고려해야 하지만, MLB에서는 마쓰자카보다 위력적인 구위와 커맨드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포토버켓



올해는 천웨인이 비교적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데 FIP로 보면 역시 다르빗슈에는 못 미친다. 천웨인은 류현진과 같은 좌완 투수로 여러모로 비교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을 거친 국내 용병들의 기록을 보면 왜 이런 비교가 가능한지 알 수 있다. 


극도의 투고타저인 일본리그에서 리그 이동 간 기록 격차는 야수들만큼 크지 않다. 2008년 요미우리에서 75이닝을 뛴 번사이드는 오히려 일본에서 기록이 더 좋았다. 설령 류현진이 히메네스처럼 일본에서 부진하다고 하더라도 FIP+는 천웨인과 비교할 만하다. 팬그래프에서 제공되는 천웨인의 패스트볼 구속은 91마일 정도로 류현진보다 약간 빠르다고 할 지라도 류현진보다 더 뛰어난 투수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이와쿠마는 2010시즌이 끝나고 오클랜드로부터 1910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을 입찰받았으나 계약과정에서 틀어져 MLB 입성이 1년 늦어졌다. 2011년 이와쿠마는 떨어진 구위와 리그 평균보다 크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올해 시애틀과 1년 150만 달러의 저가 계약을 하고 말았다. 게임과 이닝수에 따른 옵션이 340만 달러가 붙어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FA 신분이기에 이번 시즌 좋은 활약 후 장기계약을 노린 것 같기는 하다.



류현진의 시장가치는 이와쿠마보다는 높을 가능성이 크고, 3년 1138만달러의 계약을 한 천웨인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2008년 야부타나 고바야시 등 노장 불펜투수들이 2년 600만 달러가량의 계약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류현진에게 굴욕적인 계약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포스팅비용 300~500만 달러는 충분히 가능한 예상치다.


그렇게 볼 때 한화 구단이 류현진에게 포스팅 절차를 밟을 기회를 주는 것은 상식적이고 현명한 처사다. 류현진이 일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미국에 진출하는 것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꿈을 위해 미국행을 시도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도 새로운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류현진이 미국에서 성공 후 박찬호처럼 주황색 의자에 앉아 CF를 찍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현역 메이저리거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일지도 모른다. 한화는 가능한 류현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협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잠재가치인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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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6일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