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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한화에서 1064일, 한대화 감독이 남긴 것

28일 새벽, 초대형 태풍 ‘볼라벤’ 상륙으로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새벽 0시 즈음해서 야구계를 떠들석하게 할 소식이 전해졌다. 한화 이글스의 한대화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는 것이다. 해가 뜨고 한화 이글스는 구단 보도자료를 배포해 한대화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후 한 감독과 지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대화 감독이 해고당했을 거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사실 한화가 올 시즌이 끝난 후 한대화 감독과 한화의 결별은 예정되어 있었다.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을 맡은 후 8-6-8의 성적, 무엇보다 김태균, 박찬호, 송신영 등이 영입된 올해도 최하위에 머물렀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프런트가 말하는 우승 전력은 결코 아닐지라도 4강 근처에서 경쟁했어야 재계약 가능성이 생길 수 있었다. 성적을 내지 못한 감독에게 변명은 통용되지 못한다. 시기의 문제가 있다 뿐이지 한대화 감독의 퇴진은 한화 팬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소식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사진 제공 – 한화 이글스


헌데 한대화 감독의 부임기간이 한화에 과연 해로웠냐고 되묻고 싶다. 시계를 2009년 9월 30일 한대화 감독이 한화와 3년 계약을 맺었던 시기로 되돌려 보자. 그 시기가 얼마나 암울했는가?


김인식 감독 체제에서 몇 년간 4강에 올인하고 한화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투수 쪽에는 레전드 송진우, 정민철이 은퇴를 앞둬, 선발진은 안영명, 유원상, 김혁민으로 꾸려졌다. 2009년 이들 세 명의 평균자책점은 364.1이닝 동안 6.47이다. 오직 류현진만으로 운용되던 로테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타자 쪽은 어떤가. 막강 타선을 이끌던 김태균, 이범호 듀오가 한 감독의 부임과 함께 일본에 진출했다. 김태완과 송광민은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이영우는 은퇴직전, 이도형은 재계약 실패로 2011년부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한 감독에게 주어진 주전급 야수라고는 신종길과 트레이드 된 30대 중반의 노장 강동우와 어깨가 약한 수비형 포수 신경현 정도다. 


2009년 시즌 성적 46승 84패 3무 .346의 승률. 더 나아질 게 없을 것 같던 팀의 전력. 한대화 감독을 성적을 가지고 평가를 한다는 것은 기준 자체가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한대화 감독이 남긴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았다.




최진행 성장과 센터라인의 방향제시



위 선수들은 한대화 감독 부임시기 도약했다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이 중 최진행은 김태완의 입대를 앞두고 한대화 감독이 선택한 후계자였다. 팀 내 자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당시 최진행의 입지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2004년 입단 후 곧바로 239타석 9개의 홈런을 치기도 했으나 타율은 .206으로 부진해 1군에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다. 군 복무 시기를 제외하고 이후 3년간 부여받은 타석은 단 70타석에 2할 언저리 타율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선수였다.


2군에서 가능성을 보인 선수라도 모든 감독이 이를 믿고 꼭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니다. 최진행이 중심 타자로 성장한 것은 본인의 재능이 가장 컸다고 해도 한 감독의 적절한 판단이 최진행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장성호와 이대수는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된 선수다. 트레이드 당시 장성호의 대가로 간 안영명은 스타까지는 아닐지라도 연고지역에서 오랫동안 공헌한 선수이기에 아쉬움이 컸다. 결국, 이범호의 보상선수로 다시 한화에 복귀하게 됐는데 트레이드 손익은 지금으로 봐서는 한화에 나쁘지 않은 결과다. 내년 김태완 복귀로 한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한다면 여전히 선수 가치는 살아 있기에 트레이드로 만회할 수 있다고 답해본다.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은 이제 다음 감독과 프런트의 몫이다.




 

사진 제공 – 한화 이글스


이대수 트레이드는 김창훈과 조규수가 대가로 당시에는 거의 주워오다시피 한 트레이드 였다. 한대화 전 감독이 능글맞게 타팀 감독들에게 트레이드를 시도한 결과다. 이대수가 만족스럽지 못하긴 하지만, 그 대안을 생각하면 더욱 끔찍하다. 만에 하나 내년 FA로 대박을 터뜨리며 나가더라도 성적도 내고 보상선수도 얻을 수 있기에 한화는 웃을 수 있다.


이대수 – 한상훈 키스톤 콤비를 축으로 한화의 센터라인은 어느 정도 밑그림이 생겼다. 중견수는한화 이적 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김경언-고동진 라인에 발이 빠르고 출루능력이 좋은 양성우가 미래가 된다. 포수는 올해 많은 기회를 받은 정범모가 앞으로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2012 드래프트 1픽 하주석을 생각하면 미래가 그리 어둡지는 않다.




토종 선발진은 한화의 경쟁력


한대화 감독의 가장 큰 공이라면 토종 선발진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각기 부침이 있는 선수들이지만, 2009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괄목상대다. 2009년 116.2이닝 7.87ERA 6.49FIP를 기록했던 김혁민은 다른 팀 같으면 그저 구위가 좋은 불펜 자원으로 남을 수 있었다. 2009-2010년의 부진에도 참고 선발진으로 기용한 결과 현재는 한화에서 류현진 다음으로 믿음직한 선발 투수로 성장했다. 양훈을 선발로 정착시킨 것도 좋았다. 올해 부진하더라도 86년생으로 젊고, 입대 후에도 한화 3선발 이상의 역할로 돌아올 것이다.


더 큰 즐거움은 유창식이 선발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다. 올해는 좌완 불펜으로만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많은 기회를 받았다. LG 임찬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다면 코칭 스탭은 적어도 유창식에게만큼은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방향을 잘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새롭게 꾸려진 필승조




2009년 한화의 필승조는 토마스-구대성-양훈-마정길로 구성됐다. 이 중 토마스는 미국에 돌아갔고, 구대성은 은퇴, 양훈은 선발로, 마정길은 넥센으로 갔다. 필승조가 사라진 한대화 감독 체제에서 새롭게 떠오른 선수는 ‘노망주’ 박정진이다. 박정진은 1999년 입단한 후 2003년 갑작스럽게 떠올라 거의 불펜으로만 100.1이닝을 던진 선수였다. 이 때의 혹사 때문인지 이후 공익근무 요원 시기를 포함해 6년 동안 44.1이닝만을 던지는 등 활약이 전무했다.


한대화 감독이 박정진의 실력을 키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방출 위기에 놓인 베레랑을 재신임한 것은 한 감독의 공이다. 올해 초반 부상으로 부진했던 박정진은 6월 이후 22.1이닝 동안 3.22ERA 2.11FIP를 기록 중이다. 

올해 급성장한 송창식도 ‘폐쇄성 혈전 혈관염’으로 방출된 후 2010년 재입단한 선수다. 어떻게든 전력을 만들자는 코칭스탭의 의지가 올해 필승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대화 감독이 빼어난 지휘력을 보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 야왕이라 불린 후 너무 많은 작전은 올해는 한화에 독이 되어 돌아왔다. 경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하고, 접전 상황에서는 추격조를 기용하는 등 비상식적인 투수기용도 많이 보였다. 유원상과 김광수를 맞바꾼 것은 현시점에서는 뒷골이 당기는 트레이드가 됐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한대화 감독은 꼴찌팀 감독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리빌딩 팀의 감독으로서 팀 구성을 발전시켰느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싶다. 또 작년에는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놀라운 성적을 거두지 않았나? 한화는 2011년 피타고리안 승률보다 무려 6푼이나 높은 .450의 승률을 기록했었다.




감독 선임 문제, 급할 게 없다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지나가고 해가 떴다. 겨우 한 달 정도를 남겨둔 시점에 감독 경질이라는 파문을 겪은 한화에도 평온이 찾아올까? 김성근 감독의 고양 재계약으로 당분간은 후임 감독 문제는 가라앉을 듯하다. 


한화는 감독과 관계없이 당분간은 승보다 패가 많은 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를 잘 뽑는다면 다크호스가 될 정도로 팀은 2009시즌 후보다 기본 토양이 좋아졌다. 앞으로 어떻게 참느냐에 따라서 팀의 미래는 크게 바뀔 것이다. 삼성을 벤치 마킹해 25년간 한화 유니폼을 입었던 한용덕 감독 대행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누구보다 팀 사정에 밝아 시행착오가 적고, 기대치에 따른 부담이 적은 것은 장점이다. 마지막 남은 기간 류현진의 10승 챙겨주기를 위해 무리를 시키거나 조바심을 내는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면 더 바랄 것도 없다.


한화의 감독 선임은 지금 결정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감독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한화의 2013년 사령탑은 당장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인물이 되어야 하며, 프런트는 감독에게 그런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그래야만 후임 감독의 마지막 모습이 한대화 전 감독처럼 씁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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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1일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