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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후반기 변수가 될 2012년 불펜투수 피로도

야구에서 가장 고단한 보직이 뭘까? 아마도 중간 계투의 임무를 맡는 불펜 투수들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경기에 언제 나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매일 등판대기를 해야 한다. 장마철 휴식도 예외 사항이다. 경기가 밀리면 밀리는 만큼 경기 감을 잃지 않게 하려고 감독들은 구원투수들을 몰아붙인다. 선발 투수가 투구수 100개 내외, 등판간격 5~6일을 지켜주는 것이 불문율이 된 반면에 구원투수들의 기용은 여전히 감독의 재량에 따라 편차가 크다. 


고생에 비하면 대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두산의 프록터는 메이저리그 시절 '조 토레의 남자'로 불리며 혹사당한 후 버려지다시피 했다. 불펜이라는 보직은 여전히 선발 진입에 실패한 선수들의 2지망일 때가 많고, 선수층이 풍부한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들을 소모품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만큼 롱런하는 투수를 보기 드물고 마무리가 아니고서야 연봉 또한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릴리버들의 활약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2000년대 최고의 팀인 삼성과 SK는 모두 강력한 불펜을 팀의 색깔로 우승을 일궜다. 한국 야구는 메이저리그나 일본 야구와 비교해 선발 투수들이 책임지는 이닝이 적어서 중간 계투의 비중이 높다. 때문에 릴리버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팀 성적에 직결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구원 투수들의 관리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보기로 했다.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없지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초록색 이닝 수와 주황색 투구수가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닝을 던지느냐도 중요하지만, 투수교체는 투구수로 결정될 때가 많다. 양승호 감독은 30개 이내로 던졌다면 연투가 문제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기용방식을 설명했다. 김기태 감독이 유원상에게 많은 이닝을 던지게 한 것도 이닝 당 투구수가 14개로 적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등판 이닝이나 투구수만큼 출장 횟수도 투수 관리에 주요한 척도다.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는 몸이 달궈져 있어야 제대로 된 투구가 가능하다. 때로는 경기에 나오지 않으면서도 몸만 풀다 지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선동열 감독은 구원투수들의 등판을 가능하면 일주일에 3회로 제한하고 있다. 또 단순히 출장 횟수뿐 아니라 얼마나 휴식을 취하고 경기에 등판하느냐가 몸 상태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적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빌제임스의 책 'The Bill James Gold Mine 2008'에 소개된 'Closer Fatigue(마무리 피로도)'라는 공식을 이용해 보자.


릴리버 피로도= (5일전 타자수) + (4일전 타자수)*2 + (3일전 타자수)*3 + (2일전 타자수)*4 + (1일전 타자수)*5


연투를 할 경우 상대한 타자에 5배를 곱하고, 이틀 전 상대한 타자에 4배를 하는 식으로 등판 간격에 따라 피로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5일을 쉬면 피로도가 없기에 선발 투수에게 적용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 공식에서 상대한 타자의 숫자를 투구수로 바꿔서 2011년 불펜 투수들의 피로도를 계산해 보았다. 범위는 35경기 이상 등판해,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로 한정했다.




총 피로도와 평균 피로도를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임경완은 시즌 내내 많은 등판을 했지만 70.8로 평균 피로도가 작은 것은 등판 간격 관리가 됐다는 뜻이다. 반면 박희수는 후반기부터 등판하여 전체 피로도는 비교적 적지만 등판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2009년 메이저리그 릴리버들의 기록을 보면 평균이 100을 넘는 경우는 카를로스 마몰 정도로 매우 드물다. 2011년에는 아세베스, 제프 사마자, 조니 벤터스 등이 100을 넘긴 투수들이다. 팀당 133경기를 국내 여건상 총 피로도는 6000이상, 피로도는 100 전후가 위험 수준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위 표에서 빨갛게 칠해진 선수들이 올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올 시즌 제대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가 거의 없다. 2년 차 징크스라 할 수 있는 임찬규는 그렇다고 쳐도 손영민과 정재훈은 거의 피칭을 못하고 있다. 송신영, 박정진, 이보근 등은 지난 몇 년간 많은 투구를 했던 선수들로 올 시즌 부진이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정우람은 2010년부터 2년 연속 피로도 1위를 기록한 선수다. 절대로 지치지 않는 투수라고 했던 정우람도 기계는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이 있었더라면 덜라졌을까? 어깨 수술로 올해는 출장이 없는 전병두를 생각하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우람과 SK의 미래를 위해서는 군대 갈 때까지 써먹고 보자는 생각보다는 각별한 관리가 좋아 보인다.



다음은 시즌 절반이 넘어간 2012년의 피로도를 살펴보았다. 범위는 30경기 출장 또는 30이닝 이상 피칭한 투수를 대상으로 7월 11일까지의 기록을 계산했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에 온 김성배가 가장 많은 총 피로도가 누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페이스라면 시즌 말미에는 약 6600 정도의 피로도로 예상된다. 최대성이나 이명우 또한 적지 등판을 해 장마철과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할 듯싶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평균 피로도가 심각하게 높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눈여겨볼 선수가 SK의 박희수다. 박희수는 지난 시즌 후반기를 기준으로 하면 릴리버 가운데 가장 무리하게 기용된 선수다. 혹사라는 표현을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다. 무명에서 1군으로 올라와 찬밥 더운밥 따질 처지는 아니겠지만, 팀의 보물이 된 선수이기에 그만큼 아껴줘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 정우람이 이만수 감독의 탓을 할 수 없는 선수라면 박희수는 김성근 감독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는 선수다. SK가 3번의 우승을 하는 동안 트레이닝 시스템과 연계해 특별한 투수 관리 노하우를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용이 한계에 부딪혔고, 선수기용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LG는 유원상과 우규민의 체력이 우려스럽다. 유원상은 등판 이닝에 비하면 생각보다 적은 수치이긴 하지만, 긴박한 순간에 나와서 던졌기에 실제 피로도는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 우규민은 총 3번의 선발 등판을 빼면 평균 피로도 수치가 96.4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등판간격이 잘 유지됐다고 할 수 없다.


우규민과 비슷한 사례로는 한화 안승민을 들 수 있는데 시즌 초반 선발 등판을 빼면 평균 피로도가 87.5까지 올라간다. 마일영, 바티스타도 승패 상관없이 무리한 기용이 이뤄진 것은 한화 코칭 스탭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점이다. 그 외 KIA는 후반기를 위해서는 루키 박지훈의 등판간격을 조절해줘야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해보다 불펜 투수들의 피로도가 줄어들었다. 이는 선발 투수들의 평균 이닝이 지난해 5.23에서 5.54이닝으로 크게 늘어난 데에 따른 변화다. 두산과 삼성, 넥센의 선발 투수들이 각각 5.89, 5.75, 5.74로 가장 많은 이닝을 책임졌는데 표에 빨간색으로 칠해진 선수가 없는 구단들이다. 이렇게 보면 불펜 투수들의 혹사를 줄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긴 시즌을 치르는 프로야구는 마라톤과 같다. 어느 때보다 순위 싸움이 혼전인 올 시즌 어느 팀이 불펜 투수들의 피로도를 줄여주느냐가 시즌 후반 큰 변수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마구스탯에 송고되었습니다. 

  7월 11일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2011년 피로도는 본의 아니게 지난 글의 재탕이 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