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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프로야구 에이전트 도입, 방향은 상생

사례 1) 2009년 최희섭은 연봉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큰 의견 차를 냈다.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최희섭은 자신이 5억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구단은 4억 이상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감정적인 상처를 받은 최희섭은 팀 훈련에 불참, 다음해 1 20일이 되어서야 전훈에 참가한다. 이후에도 최희섭은 오프시즌만 되면 화제의 인물이 되곤 했다.

 

사례 2) 같은 해 롯데 이정훈은 57경기 74.1이닝 3.03ERA로 커리어하이의 기록했다. 기대감을 안고 협상 테이블에 나섰지만, 롯데의 제안은 7200만원으로 연차와 실적을 고려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마지막까지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연봉조정신청까지 가서야 구단이 승리했다. 팬들은 연봉모금 운동으로 이정훈의 마음을 달랬지만, 다음 해 성적은 6.85ERA로 급상승. 스프링캠프 훈련 부족의 후유증을 남겼다.

 

사례 3) SK KIA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이름 높은 정근우와 이용규는 2013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야구 실력과 달리 협상 능력은 아마추어였던 둘은 프런트와 몇 번의 만남에서 생채기를 냈다. 이 과정은 언론에 모두 노출되었고, 좀 전까지 자신을 응원했던 팬들로부터 모진 비난을 들어야 했다.

 

 

위 세 가지 사례는 모두 선수가 구단 운영팀과 직접 협상을 벌이다 생긴 결과물이다. 선수도 손해를 봤지만, 구단도 결코 승자는 아니었다. 감정적으로 배신감을 느낀 팬들 모두 패자가 됐다.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이 조금씩 해소될 전망이다. 그 동안 여건을 핑계로 미뤄뒀던 대리인 제도가 내년부터는 드디어 시행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두 차례 국정감사의 압박이 공정위를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인 제도가 신설되면 선수는 감정상할 필요 없이 훈련에 매진하면 된다. 비싼 연봉만큼 선수가 경기에서 보여준다면 팀에도 이득이 된다. 또 팬들이 선수에게 할 비난이 에이전트로 향하면서 마케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파이가 커진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제도 도입을 너무 우려스럽게 볼 일은 아니다.

 

 

돈이 가는 곳에 룰도 바뀔까?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했던 임선동. 당시 LG를 상대로 한 '지명무표확인본안소송'은 선수 인권 면에서는 큰 의의가 있는 일이었다. (사진 출처 - 엔하위키 미러)

 

그런데 에이전트가 도입된다고 해도 지금의 야구규약대로라면 에이전트 시대가 열렸다고 표현하기는 무리가 있다. 야구 규약 5장 제30조에 의하면 선수가 대리인을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 변호사법 소정의 변호사만을 대리인으로 하여야 하며, 변호사 이외의 어떠한 사람도 대리인 역할을 담당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계약협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계약한다면 암암리에 야구 전문가와 의견을 교환하겠으나 공식적으로 에이전트 팀을 꾸릴 수 없다.

 

결정적으로 대리인으로 지정된 변호사는 2명 이상의 선수계약에 관여할 수 없다고 못박음으로써 대형에이전트의 출현을 막고 있다. 에이전트의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규정이 차차 무너지리라 보는 이유는 자본이 계속해서 유입된는 프로야구에 변호사가 개입된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KBO의 규정은 불공정하며 상대가 평생 야구만 해온 선수가 아닌 이 분야의 전문가 법조인일 때 변화의 흐름은 더 빠를 수밖에 없다. 10구단 체제의 프로야구 시장은 여전히 성장 중이고, FA 시장은 갈수록 활성화 되고 있다. 혹자는 프로야구단이 아직 적자이기에 시기 상조라고 하지만, 모기업들은 야구단 재정 독립화에 관심이 없다. 구단 지원금이 같다면 이득이 난 만큼 시장에 투자될 수 있는 구조다. 게임관련 퍼블리시티권 분쟁에서 봤듯 돈이 몰리는 곳에서는 투쟁심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선수 소유에 대한 개념 전환이 필요

 

야구 규약상에는 대리인에 대한 직접적인 문구 말고도 수정해야 할 불공정한 규정들이 또 있다. FA 제도가 대표적이다. 1995년 임선동이 '지명권 효력정치 및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신인지명제도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하고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는 판정을 받은 후 3년이 지나 FA 제도가 신설되었다.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당시 FA제도와 보류제도에 대해 선수들의 구단 선택권 및 교섭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제도라고 시정 명령을 내린 후 FA 기한이 1년 줄었다. 현재 규정은 다소 완화되었으나 과도한 보상 제도로 인해 매우 한정된 비율의 선수만이 FA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전력 불균형의 위험이 있는 프로 스포츠의 특성상 드래프트가 시행되고 FA가 되기까지 선수에 대해 보류권을 갖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구단의 권리가 지나치게 남용되어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면 제도 수정은 불가피하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들어간 직장은 연봉 협상마저 일방적이다. 게다가 정년은 극히 짧고 이직이 불가능하다면 노예 제도와 다를 바가 있나? 등급별 보상제도 시행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2차 드래프트로 팀을 옮겨야 할 선수는 1년 차 심재윤이 아니라 2006 LG에 입단한 황선일 같은 선수가 되어야 했다.(사진 출처 - LG 트윈스)

 

2군에서 오랜 기간 뛴 선수들에 대한 처우는 더 심각하다. 메이저리그는 룰5 드래프트 제도를 만들어 기회를 받지 못하는 2군 선수들에게 팀 이적의 기회를 주고, 마이너리그에서 7년을 뛰면 FA 자격을 주고 있다. 이 밖에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가 20일 이상 마이너에 있는 시즌을 세 번으로 제한하는 마이너 옵션 규정을 두어 선수 소유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에 반해 국내는 아무런 제한 없이 1, 2군에 들락거리며 구단이 방출하지 않는 이상 무기한 팀에 종속된다. 한국형 룰5 드래프트제도라는 2차 드래프트 조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팜의 재분배 용도로 사용되는 현실이다. 도대체 드래프트 1, 2년 차 선수를 옮겨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보호선수를 줄이고, 연차가 있는 선수의 이적을 유도하는 게 낫다. 왜 미국도 보호 선수가 40인인데 더 줄여야 하냐고 묻는다면 군 입대 선수와 용병을 모두 포함하면 공평해진다. 그리고 나서 이적 팀에 일정기간 뛰지 않은 선수를 돌려 보내야 한다는 항목을 추가하면 불평이 생길 건덕지도 확연히 줄어든다.

 

 

프로야구 상생, 에이전트 제도와 부합

 

선수는 구단의 소유물이 아니다. 팀간 전력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기간 보류권이 주어졌을 뿐이다. FA제도나 2차 드래프트의 시행 목적은 구단의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이행해야 할 사회 규범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사항들은 모두 에이전트 제도의 활성화와 맞닿아 있다. 많은 선수들이 기회를 받고, 스타가 되는 자체가 에이전트의 대상 고객이 늘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선수 인권 차원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FA 제도도 처음 시행될 때도 구단들은 도입이 시기상조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지금도 선수 몸값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 흐른 시점에 프로야구는 굳건히 버티고 있으며 10구단으로 늘어나 시장은 성장세에 있다. 에이전트 제도도 마찬가지. 여건을 고려하기 전에 이러한 제도가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선수 인권 신장이 구단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 선수 이동이 활발하다는 뜻은 대형 FA의 대체제가 될만한 선수를 늘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대리인 제도로 선수들의 경기력이 향상되고 팬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가 가능하다면 구단은 더 큰 소득을 올릴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결국, 프로야구의 제도 개선도 이런 상생에 기반에 진행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