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메모

두산의 프런트 야구, 비난 일색인 이유는?

지난 27일 김진욱 감독의 경질이 발표됐다. 김선우 방출, 윤석민 트레이드에 이은 쉼없는 3연타. 여론은 더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비난이 빗발쳤다. 경질 이유는 성적이다. 두산 프런트는 팀이 최종 성적 2위를 거뒀음에도 공보다 과가 많다고 판단했다. 물론, 과정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김진욱 감독이 포스트시즌 보여줬던 경기 운영이 결코 능수능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투수 교체의 아쉬움을 나타내는 의견이 더 많았다.


그러나 감독은 결국,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3년 전 삼성 팬심과 크게 엇나가 있던 선동열 감독조차 준우승 후 경질되자 프런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물며 연일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두산이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랴. 



한국의 바인페스트? 팀 사정만 인정


Jose Reyes

구단 신축과 함께 호세 레이예스와 6년 1억 6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성사시켰던 말린스는 성적이 나오지 않자 1년 만에 선수를 팔아버렸다. (사진 출처 Keith Allison님 플리커)



논란이 계속되자 김태룡 단장은 직접 입장을 밝히며 여론 진화에 나섰다. 진화될지 기름을 부은 게 될지 모르나 일단 책임을 언급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덧붙여 2000년대 초중반 플로리다를 언급하며 리빌딩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플로리다의 예는 상당히 흥미롭다. 말린스는 현재 마이애미로 구단명을 바꿔 구장을 이전했는데 연고지의 야구 열기가 뜨겁지 않아 애를 먹곤 했다. 게다가 구단주는 짠돌이로 악명높은 제프 로리아로 거듭된 파이어 세일로 팀 연봉을 줄이고, 구단 분배금을 통해 돈을 벌어왔다.



※ 2003년은 우승 시즌, 2012년은 신축구장 이전, 2003년, 2013년은 파이어 세일 시즌.


그 아래서 고군분투하며 현란한 움직임을 보였던 이가 바인페스트 단장이다. 플로리다에 부임하고 2003년  4875만 달러의 적은 페이롤에도 우승팀 로스터를 꾸렸고, 구단주의 예산에 맞춰 선수들을 과감하게 내치기도 했다. 2005년 시즌 후 6000만 달러의 페이롤을 1500만 달러로 줄이면서도 팀 승률을 .481로 유지한 성과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사장으로 승격하고, 2013년 로리아와 불화로 내침을 당할 때까지 바인페스트는 유능한 단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한마디로 김태룡 단장의 인터뷰는 고참급 선수를 대거 처분해야할 만큼 구단의 재정의 어려움을 은연 중에 암시하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대폭 줄은 예산으로 구단을 운영할려고 치면 지금 상황이 단장으로서 억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김승영사장, 김태룡 단장 지휘아래 행해진 일련의 움직임들은 바인페스트는 언감생심, 대부분 박한 점수가 매겨졌다.



연속된 중복 투자, 자기반성의 부재 


여태껏 김진욱 감독의 원했다고 오인된 알려진 오재일과 이성열 트레이드나 FA 홍성흔 영입은 모두 중복 투자에 가깝다. 당시 두산은 외야수로 55경기 350이닝 이상 뛰었던 이성열을 보내면서 외야에 구멍이 생겼고, 시즌 후반 상무에서 제대한 민병헌을 엔트리에 등록해야 했다. 이는 시즌 후 진행될 NC 지원 명단에 민병헌이 자동 보호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NC가 선택한 고창성이 부진해서 망정이지 제2의 이재학을 뽑는 결과가 되었다면 논란은 심각해졌을 것이다.


올해 오재일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고 해서 트레이드에 만족하긴 이르다. 1루 자리에 중첩자원이 많은 팀 사정상 오재일은 후반기 집중 투입되어 겨우 144타석만을 소화했다. 그에 비해 이성열은 시즌 중반 부진에도 두 배에 달하는 92경기 329타석에 들어섰다. 두산이 1루수 용병을 기용한다면 내년 얼마나 많은 기회를 받을지 미지수. 또한 윤석민 트레이드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홍성흔 영입도 마찬가지. 2013년 발목 부상으로 고생한 김현수가 휴식을 취하기 어려워졌고, 최준석과 김동주의 자리가 어정쩡해졌다. 보상 선수로 나간 김승회도 아쉬운 이름. 롯데에서 5.30ERA는 부진한 듯 보이나 FIP는 4.13으로 양호하다. 정규시즌 김승회가 있었더라면 5선발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을 테고, 1.5경기 차에 갈린 플레이오프 티켓의 향방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두산 프런트는 한국시리즈 김진욱 감독의 느린 투수교체를 문제 삼았다. 앞서 말했듯 이 지적은 타당하나 김승회 같은 자원이 있었더라면 경기운용은 한층 과감해질 여지가 있었다. 이를 인식하지 않고, 감독 탓에 우승을 놓쳤다고 불평만 한다면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닮은 듯 다른 넥센과 두산의 행보


윤석민 - 장기영 트레이드로 넥센 유망주 문우람, 고종욱과 두산 박건우의 명암은 극명히 갈린다. 리빌딩을 언급한 두산 프런트의 말이 공감가지 않는 이유다.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두산 프런트의 이런 행보는 야구인들 사이에서 프런트 야구에 대한 불신을 낳게 했다. 그런데 프런트의 적극적인 개입을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단장 야구라고 하여 선수단 구성은 프런트가 현장에서는 코칭 스탭이 역할을 맡아 팀을 꾸려 나간다. 당장 성적을 내야하고, 1승이 중요한 감독은 여건상 장기적인 구상을 하기 힘들다. 프런트와 역할 분담은 구단 운영의 발전적인 형태라고 할 만하다.


국내에서 프런트 야구의 대표적인 구단이라고 하면 넥센이 꼽힌다. 넥센은 이장석 사장의 발언권을 갈수록 강화해나가고 있으며 심지어 드래프트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김시진 감독이 해임되고, 젊고 경력이 많지 않던 염경엽 감독을 선임한 과정도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언론의 보도 내용을 봐도 넥센의 트레이드나 기타 움직임에서 감독보다 이장석 사장의 의지가 훨씬 영향력을 갖는다. 


두산 역시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 체제 후 프런트 야구를 천명했다. 김경문 감독이 사퇴한 후 야구단에 대한 지배력은 더 커졌을 게 분명하고, 넥센과의 트레이드도 프런트 야구를 하는 두 팀이기에 접점이 더 많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프런트 야구를 시도하는 두 팀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이장석 사장은 스스로 야구단의 수익을 내고 절실함을 갖는 이고, 두산 체제는 지위야 어찌 됐든 임금을 받는 피고용자 입장이다. 이장석 사장이 트레이드 직후 자신의 결정을 과시하듯 말하는 반면, 두산 프런트는 감독 뒤에 숨기 바쁘다. 트레이드 빈도도 다르다. 넥센은 팀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을 시도하지만, 두산은 윤석민 트레이드 전 유일하게 움직임이 없었다. 


사실 두산이야말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과한 선수층으로 포지션 정리에 대한 필요성은 구단 밖에서 계속 언급됐다. 만약 두산이 쓰지 못하는 선수로 투수를 업어왔다면 3.5경기 차로 1위를 차지한 삼성의 자리도 안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런트 야구를 한다면서도 여느 구단처럼 후폭풍을 두려워한 나머지 트레이드를 두려워 했다. 그 결과 FA 이종욱과 손시헌은 아무런 보상 없이 NC로 이적했다. 때로는 행동하지 않는 자체가 마이너스임을 두산이 직접 증명한 셈이다.



그래도 두산은 무너지지 않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재원과 이원석. 주변 상황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베테랑의 대량 이탈과 감독 경질로 인해 두산의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전해진다. 새로 부임한 송일수 감독이 어떻게 선수단을 추슬러 나갈지 걱정부터 앞선다. 

송일수 감독은 1970년 긴테스에 지명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해 대부분 백업 포수의 역할을 맡았다. 1984년 삼성에 입단한 후에는 김일융의 전담포수로 주전 이만수의 뒤를 받치기도 했다. 선수 생활은 화려하지 않았으나 수비형 포수라는 점에서 지도자로 토대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일본에서 불펜 포수, 배터리 코치, 스카우트로 프런트와 현장을 오갔다.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은 2013시즌 두산에 2군 감독으로 부임한 게 처음이다. 2군에서 1년의 시간만으로 역량을 측정하기란 무리다. 단, 일본 야구에서 나타나는 작고 세밀한 야구를 추구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하게 된다. 기존과 다른 팀 컬러, 1군 선수들과 부딪힌 시간이 극히 적었다는 점에서 얼마간의 과도기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벌써 내년 시즌을 비관하기는 이르다. 두산의 야수들은 젊은 나이에도 경력이 쌓였고, 기량은 출중하다. 아무리 분위기가 어수선해도 연봉을 받고 뛰는 프로 선수가 경기에 설렁설렁 뛸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아시안 게임을 앞둔 미필 선수들이라면 쉬엄쉬엄 하라고 해도 열정을 불태우기 마련이다. 이용찬이 건강하게 복귀한다면 선발과 불펜에도 힘이 붙는다. 선수들이 건재하다는 전제하에 두산은 여전히 위협적인 팀이고, 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미숙한 프런트의 언행에 야구장을 찾을 의욕이 없다는 팬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과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두산 팬들을 위해서라도 상황이 빠르게 진정되길 바라본다. 베어스 야구단은 팀 안팎에서 벌어지는 우환을 극복해낼 저력이 있는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