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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2013년 골든 글러브 후보로 보는 포지션별 스타들

12월 10일 포지션 별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골든 글러브 행사가 열린다. 영화계의 청룡영화제나 연말에 열리는 각 방송국 연예연기 대상처럼 야구인들에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뜻깊은 시상식으로 각인되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스탯인 다승에 의존하는 야구 문화에서 나이트 같은 피해자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그러나 수상 결과에 대해서는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끊임없는 논란과 의문이 계속돼왔다. 문제점은 선정 방식에 있다. 골든글러브 후보는 매년 바뀐 기준으로 KBO가 선정하며 300명(작년 351명)이 훌쩍 넘는 기자단이 투표한다. 국내 언론 현실에서 야구를 전문으로 다룰 수 있는 기자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투표자의 절반 이상이 야구에 대한 관심을 의심받을 정도라면 애초에 권위를 바라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럼 메이저리그가 산업화 되어있는 미국은 어떠한가? MVP, 사이영상, 신인왕 등의 시상식에서는 AL과 NL을 나누어 각 도시를 대표하는 30명의 야구전문기자가 선수의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골드 글러브는 각 팀의 감독, 코치가 소속 팀 선수를 제외하고 투표를 한다. 올해부터는 '미국야구연구협회'에서 제공하는 세이버메트릭스 자료를 코치들에게 배포하고 평가 점수를 따로 반영한다고 한다. 메이저리그처럼 따라 하지 못하더라도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쉬움은 뒤로하고 올해 골든 글러브 후보들의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를 정리했다. 최근 WAR은 이장석 사장도 언급할 만큼 알려지기도 했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수치가 나오는지 의아해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 그러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되었으면 한다. 또 노미네이트 여부를 막론하고 포지션별 수준급 활약을 한 선수를 추가해 프로야구의 판도를 점검하는 의미도 있겠다.


WAR 계산에 쓰인 기본 스탯은 야수는 wOBA, 투수는 FIP와 ERA. 대체선수 레벨은 600타석당 30점으로 낮춘 후 MLB 밸런스를 유지하도록 조정했다. 때문에 구원 투수의 승리 기여도가 체감보다 낮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 구장효과를 보정하였으며 야수의 경우 수비와 주루 수치는 제외했다. (포지션 조정, 도루, 도실은 포함) 최고의 수비와 주루 능력을 갖춘 선수는 MLB에서 최대 1~3승까지 플러스 되기도 한다.





올해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자격 요건은 타율 .230 이상이다. 규정타석을 채울 필요도 없이 포수로 85경기만 출전하면 된다. 이런 소박한 기준은 올해 포수들이 얼마나 부진했는지 나타낸다. 세대교체에 대한 요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선수 면면을 들여다보면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먼저 후보에 오른 강민호, 양의지, 이지영 등은 통산보다 BIPA가 낮았던 시즌으로 내년 페이스 회복 여부는 낙관적이다. 또 정상호도 부상만 없다면 국가대표가 어울리는 기량. 차세대 유망주인 최재훈은 108타석에 들어섰음에도 타격 수치만으로 0.8WAR을 마크하며 눈부신 존재감을 드러냈다. 군에서 복귀하는 장성우와 함께 어느 팀에 가도 주전을 차지할 올스타급 재능들이다. 다만, 분배가 아쉬울 따름이다. 


본론으로 넘어가 골든 글러브 수상자를 예측하면 아무래도 강민호가 유력하다. 타격은 물론, 포일 수치도 양의지 보다 앞섰다. 앞으로 강민호의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연속 수상 기록을 누가 깰지도 궁금하다. 만에 하나 올해가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명타자 부문은 유일하게 수비를 점수에 포함하지 않아 가장 명확하게 최고가 결정되는 포지션이다. 그렇지만 역대 수상결과를 보면 특별히 공정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작년엔 1루수로 여겨졌던 이승엽이 지명타자에 분류되며 논란을 샀고, 2011년에는 잠실에서 17개의 홈런을 친 김동주가 장타율 4할 언저리를 기록한 홍성흔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이변이 있었다. 올해는 후보들이 워낙 박빙의 대결을 펼쳐 1위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타율과 OPS만 보면 이병규가 타야 마땅하겠으나 홍성흔은 29경기 137타석 더 많이 출장해 팀에 기여했다. 잠실에서 홈런을 더 많이 치면서 파크팩터로 인한 조정치도 이병규보다 높게 나타난다. 


위 표에서 나타나는 수치와 별개로 올해 LG 돌풍으로 이슈 몰이를 한 이병규의 수상이 더 유력하게 여겨지는데 그간 기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홍성흔이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득점권 타격은 OPS차이가 2할 가까이 날 정도로 이병규가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WAR이 선수 평가의 절대 지표는 아니다. 이병규는 올해 충분히 골든 글러브를 탈 자격이 된다는 생각이다.


1루 자리는 최다 득표가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박병호가 압도적이다. 아쉬움이라면 채태인이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해 후보에 오르지 못한 점이다. 올 시즌 채태인의 BIPA는 통산기록보다 .122나 높다. 앞으로 이런 시즌을 다시 재현하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골든 글러브 내야수 후보를 보기 전에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애틀란타의 시몬스와 오클랜드의 라우리의 WAR 관련 기록을 비교해 보았다. 시몬스는 WBC에 네덜란드 대표로 출전했던 선수로 강한 어깨의 화려한 수비로 국내 야구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라우리는 수비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는 평을 듣는 공격력이 쏠쏠한 유격수다. OPS는 라우리가 1할 가까이 높지만, 수비력 차이로 시몬스가 WAR에서 1승 이상 앞섰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선수들의 성적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알 수 있다. 아래 살펴볼 선수들도 이를 감안해서 보시길 당부드린다.



2루 자리에는 정근우가 한발 앞서있는 모양새다. 수비력도 워낙 정평이 나 있는 선수이기에 무난히 황금장갑의 주인이 되리라 예상한다. 만약 오재원이 내야 유틸리티가 아닌 2루에 고정되어 있었더라면 판도가 달려졌을 수는 있겠다.


3루 포지션은 으리으리한 후보들의 격전지다. 김민성과 정성훈이 고군분투했음에도 최정 - 박석민으로 이어지는 트윈타워의 벽은 깨기 힘들다. 박석민도 최정이 워낙 공수에서 압도적인 선수이다 보니 살리에르와 같은 입장에 처해있다. 단, 기자들이 우승 프리미엄을 내세우고, 올해 최정의 수비가 무뎌졌다고 평한다면 변수는 있을 수 있다.


유격수 자리는 압도적으로 강정호처럼 느껴진다. 김상수가 수비와 주루에서 압도적인 선수라고 가정하면 판단을 유보해야겠으나 강정호도 뛰어난 수비수이므로 역전은 어렵다고 판단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09 드래프트 4대 유격수들의 선전이다. 허경민은 276타석만 들어섰음에도 1.9 WAR을 기록했다. 앞으로 주전으로 자리 잡는다면 김상수와 좋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오지환은 파워를 앞세운 타격으로 경쟁 가능하며 용의 머리에서 꼬리가 된 안치홍의 회복도 염원한다. 참고로 안치홍은 작년보다 2승가량 기여도가 줄었다. 이 4명이 앞으로 프로야구계의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골든글러브 최대 격전지라 할 수 있는 포지션은 외야수다.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많고, 수비와 주루에 의한 변수가 커서 이 자료만으로 실제 WAR 측정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유일하게 확정적인 선수는 올해 수비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고, 강견을 보유한 손아섭 정도. 타격에서도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최형우와 나지완은 타격만 보자면 나머지 두 자리를 차지할만하나 수비와 주루에 약점이 뚜렷한 선수다. 김현수와 박용택은 높은 인지도와 함께 앞에 둘보다는 수비 범위가 넓어 기여도는 막상막하이거나 더 높을 수 있다. 관례상 중견수가 적어도 한 명은 포함되는 예가 많아 민병헌, 이종욱, 김강민 등의 수상 확률이 꽤 높다. 김강민은 뛰어난 수비력으로, 이종욱 등은 한 루를 더 가는 추가 진루로 팀의 득실점 마진을 높여주는 선수들이다.


올해 유독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라면 민병헌과 신종길인데 통산 기록보다 5푼 이상 높은 BIPA를 기록했다. 내년에도 3할을 기록한다면 능력을 인정받겠지만, 쉽지만은 않은 미션으로 느껴진다. 그밖에 나성범과 문우람 등 캐넌암을 자랑하는 루키급 외야수들의 등장도 눈을 즐겁게 한다.




투수 부문은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는 스탯들이 가장 격렬히 충돌한다. 또 외국인 투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투수 평가와 무관하게 기자들이 많이 쓰는 승수를 많이 올린 선수는 세든과 배영수다. 둘 중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배영수에 초점을 맞추는 이도 있을 텐데 극히 일부라고 믿어본다. 배영수는 매년 회복하고 있는 정상급 선발 투수지만, 올해 골든글러브의 주인 자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FIP와 ERA로 볼 때 가장 팀에 많은 공헌을 한 선수는 NC의 에이스 찰리다. ERA도 압도적이며 FIP에서도 근소하게 다른 투수를 앞선다.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리즈도 훌륭한 경쟁자다. 전반기 치고 나갔던 세든은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후보에 오르지 못한 선수 중에는 옥스프링과 에릭, 송승준 등이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뒤지지 않는 활약을 했다.


이브랜드와 소사는 FIP와 비교해 ERA로 구한 WAR 수치가 너무 떨어지는데 두 팀의 수비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두 선수는 모두 보류 선수 명단에 제외되어 내년 시즌 타 구단 소속으로 선수 등록이 가능하다. 리그 상생 차원에서 KIA와 한화는 좋은 일을 했다.


한편 불펜 투수는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MLB의 WAR 계산 방식은 릴리버에게 다소 가혹한 면이 있다. 실제 미국 리그의 기여도를 반영했다고 하니 큰 오차는 아니겠으나 국내 현실과 다소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한들 손승락의 가치가 찰리나 다른 선발 투수보다 위에 있다고 보기는 무리다. 기자들이 내국인 선수에게 표를 주겠다고, 손승락이 의외의 수상을 하게 되면 차라리 외국인 투수상을 따로 만드는 게 공평한 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