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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MVP를 보라보는 5개의 시선

2012년 시즌 가장 가치 있는 선수는 누굴까?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가장 영예가 되는 시상은 당연히 MVP 수상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투표시기를 정규시즌 종료 후로 바꾸면서 더욱 공정성을 확보하게 됐다. 더군다나 2010년 이대호, 2011년 윤석민처럼 압도적으로 치고 나간 선수가 없기에 득표수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다. 


먼저 짚고 넘어가면 MVP는 정확히 어떠한 기준으로 심사되는가? 한국야구위원회 표창규정 제6조에 보면 최우수 선수란 페넌트레이스에서 기능•정신 양면이 가장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라고 명시되어 있다. MVP를 뽑는 데 인성이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후자는 상벌위원회에서 선정하는 ‘페어플레이상’을 주면 될 일이다. 


상투적인 대회요강의 정의로 기자단이 MVP 후보를 뽑을 것 같지는 않다. 이번 글에서는 선수를 평가하는 다섯 가지 기준으로 강력한 후보들을 소개해 보기로 했다.



누구의 득점 기여도가 높은가?


 


일본에서 복귀한 김태균은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6월과 9월을 제외하면 거진 4할 이상의 무시무시한 타율을 기록 중이다. 기대하던 4할 도전이 실패로 끝나고 홈런 수가 20개가 되지 않는다고 폄하될 성적이 전혀 아니다. 




위는 이번 시즌 wRC 상위 3명의 선수와 2010년 7관왕 이대호의 성적을 비교한 표다. wRC란 비율 스탯인 wOBA를 통해 얼마나 득점에 기여했는지 나타내는 누적 지표다. 쉽게 설명하자면 wRC는 리그평균을 반영한 추정 타점 혹은 추정 득점, wRC+는 조정 OPS를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라고 보면 된다.


기록을 보면 김태균은 올 시즌 가장 많은 득점 공헌을 했으며 비율지표를 나타내는 wRC+에서는 2010년 이대호보다 높게 나타났다. 어떻게 OPS가 훨씬 높은 이대호보다 김태균이 더 뛰어난 타격을 했다고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 이유는 2012년이 2010년보다 경기당 득점이 0.8점가량 낮은 투고타저 시즌이기 때문이다. 올해 다른 타자와의 비교는 말할 것도 없다. 김태균은 타석 수가 적음에도 박석민, 박병호보다 wRC가 높아 명실상부한 2012년 최고 타자라 할 만하다.




누가 가장 인상적인가?


 

사진 제공 – 넥센 히어로즈


 


김태균의 대단한 활약에도 현시점에 가장 MVP 후보로 부각되는 선수는 넥센의 박병호다. 고전 스탯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타점과 홈런 두 개 부문 1위가 확실시되 팬과 기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다. 또 도루 3개를 추가하게 되면 30홈런-100타점-20도루라는 매우 깔끔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실제로 역대 프로야구 MVP 수상자 중 홈런과 타점 부문 동시 타이틀 홀더가 MVP 수상을 한 경우는 전체 21번 중 13번이나 된다. 무려 .62%의 확률로 나머지 38%는 모두 투수가 MVP가 됐다. 결국, 기자들의 투표성향을 고려하면 후보를 야수로 한정했을 때 수상확률 100%라는 의미다.


세이버스탯으로 봐도 박병호의 수상은 큰 문제가 없다. 전 경기 출장 중인 박병호는 누적에서는 김태균과 차이를 줄이고 있고, 수비와 주루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더 뛰어난 활약이라고 해도 된다. 올 시즌 기자들이 평소 습관대로 박병호에게 투표하더라도 크게 불만을 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가 최고의 선수인가?


그럼 박병호가 과연 넥센 최고의 선수인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현재 MLB 어메리칸리그 2명의 선수를 통해 수비와 주루 플레이의 중요성을 알아보자.


 

팀 성적의 변수가 있지만 앤젤스의 신인 마이크 트라웃과 디트로이트의 미구엘 카브레라는 현재 강력한 MVP 후보로 불리고 있다. 트라웃은 아직 30홈런은 되지 않지만, 뛰어난 주루 플레이와 수비능력을 보여주는 외야수이고, 카브레라는 홈런은 2위, 타율과 타점은 리그 선두를 달리는 빅리그 최고의 강타자다. 타격에서는 카브레라가 근소하게나마 우위이지만, 승리기여도(WAR)에서 차이는 트라웃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유는 수비와 주루능력의 차이다. 1루가 주포지션인 카브레라는 올해 3루를 보면서 약 -9.4점 팀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트라웃은 수비와 주루에서 무려 리그 평균보다 19.1점, 약 2승가량 플러스다. WAR이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해도 2.6승 정도의 차이라면 오차를 고려해도 누가 더 뛰어난 활약을 하고있는지 답변이 된다.



 

자, 이제 국내 선수들의 WAR을 보자. 포지션에 대한 가중치는 마구스탯의 수비기록실을 참고하면 대략적인 값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수비와 주루능력을 평가할 방법이 없다. 국내 기록실은 MLB의 UZR 같은 수비 스탯을 구할 만한 원자료 자체가 공개된 곳이 없다. 그래서 세간의 평가로 추정만 할 뿐이다.


위에서 볼 때 강정호, 박석민, 최정 등이 WAR 1위를 경합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중에서 수비와 주루플레이를 고려하면 역시 강정호가 가장 유력한 후보다. 강정호의 후반기 타격이 폭락하지만 않았더라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매우 극소한 차이일 것이다.




누가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나?



 

사진 제공 – 삼성 라이온즈


여기서 잠깐. MVP를 선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아 있다. 4강 진출 팀 프리미엄. 정규시즌 팀들이 온 힘을 다해서 뛰는 이유는 우승. 그러니까 가을에 야구를 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4강에 진출한 팀이라야 선수의 가치가 빛난다고 할 수 있다.


기량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면 팀이 4강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투표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삼성의 박석민 정도면 우승팀 프리미엄을 줘도 무방하다고 할 수준이다. 오히려 이승엽이라는 이름값에 밀려 과소평가 된 측면이 있다. 리그 wRC, wRC+ 2위, WAR에서도 상위 3명 안에 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선호하는 홈런과 타점이 부족한 선수도 아니다. 왜 이리 언급이 덜 되는 걸까?


최근 리그에 스타가 부족하다거나 MVP 후보가 밍밍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과연 미디어가 스타를 만드는 데 얼마나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다. 감독의 한 마디에 집중하고, 박찬호, 이승엽에만 몰두하지 않았나? 아무리 라이언킹 이승엽의 명성이 자자하다고 해도 현재 사자 무리의 우두머리는 젊은 사자 박석민이다. 국내 프로 스포츠에 길이 남을 개그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현실은 언론에 실책이 아닌가. 물론 삼성 홍보팀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작년부터 삼성의 MVP 유세만큼은 일류와 거리가 있는 듯싶다.




외국인 차별이 없었다면


 


투수 중에도 MVP 후보는 있다. 무릎 부상에서 회복한 넥센의 나이트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도 평균자책점이 가장 낮아 MVP의 후보가 될 만하다. 투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스탯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승수도 15승이나 된다.




다만 나이트가 승수를 제외해도 2007년 리오스에 버금갈 정도의 활약인지는 다소 의문이 따른다. 야수의 수비를 최대한 배제하는 FIP로 보자면 나이트는 류현진보다 약 2승가량 낮은 기여도를 보였다. 탈삼진, 사사구, 피홈런 등의 지표를 봤을 때 같은 상황에서 류현진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확률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 시즌의 수상을 결정할 때는 평균자책점(ERA)는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운이 포함됐다고 해도 실제 경기에서 나이트와 넥센의 수비수들이 다른 투수들보다 실점을 억제했다는 것이 엄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실 타자의 기록도 투수보다는 연관성이 크긴 하지만 운이 포함됐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로 ERA를 통한 나이트의 높은 WAR 수치는 박석민, 강정호, 박병호 등과 함께 경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용병들이 각종 시상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이트가 완벽히 다른 투수들을 제압할 정도가 아니라면, 기자들의 선택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예상한다.




지금까지 김태균, 박병호, 강정호, 박석민, 나이트 등 5명의 MVP 후보의 강점에 대해서 차례로 살펴봤다. 예상되는 후보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후보가 일치하는가? 아마도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결과를 떠나서 상투적으로 쏠리기보다 다채로운 각도에서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는 야구 문화가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마구스탯에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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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5일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