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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BABIP로 보는 2014시즌 경계해야 할 낙관들

구기 종목에서 공이 작아질수록 변수가 많다는 말이 있다. 야구공은 크기가 작을 뿐더러 투수가 멀리서 던진 공을 타자가 방망이로 멀리 보내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공을 다시 수비수가 잡는 복잡한 형태의 종목이다. 당연히 운이 많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요소들을 최대한 잡아내거나 배제하기 위한 스탯들도 존재한다. BABIP는 방망이에 맞은 공이 파울이나 홈런이 아닌 그라운드로 들어와 인플레이 상태가 될 때 안타 확률을 나태는 스탯으로 선수가 제어하기란 매우 어렵다. 반대로 FIP는 이런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홈런, 삼진, 사사구 등으로 투수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두 스탯 모두 운이나 기량을 정확하게 측정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타율이나 OPS 혹은 평균자책점만으로 시즌을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실제에 접근할 수 있는 지표들이다.


BABIP = (안타-홈런) / (타수-홈런-삼진+희생플라이)

FIP = (13*HR + 3*(BB-IBB+HBP) - 2*K) / IP + 시즌에 따른 특정값(약 3.20)


가령 2007년 타율 1위에 오른 이현곤이나 입단 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한 이승화는 커리어보다 7푼 이상 높은 BABIP를 기록했다. 다음 시즌 성적 하락은 예상된 결과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2009년 미스터 제로라 불리며 22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한 유동훈은 어떨까? 타자와는 반대로 자신의 커리어보다 1할 가까이 낮은 .181의 BIPA를 기록. 플루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해 비슷한 이유로 성적이 오르내린 선수는 쉽게 찾을 수 있다. 2013년 어떤 선수들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살펴, 대비가 필요한 포지션을 꼽아 보았다.




삼성 1루, 지명 포지션 – 채태인


320% 연봉인상을 이룬 채태인. 2013년은 다시 못 올 행운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XTM 중계 캡쳐)


프로야구 원년 MBC의 백인천이 대기록을 세운 이후 4할 타율은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2013년에는 이를 능가할 만한 진기록이 나왔다. 채태인이 342타석 동안 .472의 BABIP를 기록했는데 이는 프로야구 역사에서 압도적인 1위다. 200타석 이상 타자 중 채태인 다음으로 높은 BABIP 수치를 기록한 선수는 2012년 작은 이병규(.413)와 1987년 장효조(.412)로 채태인과는 약 6푼의 차이가 난다.


채태인의 기록이 얼마나 희귀한지는 미국 야구와 비교하면 더욱 확연해진다. 1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규정타석을 넘긴 타자 중 채태인보다 높은 BIPA를 기록한 선수는 1871년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 소속의 레비 메엘레 딱 한 명뿐이다. 당시 메엘레의 BIPA는 .480으로 타율 또한 .492로 역대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다만, 이 기록은 지금의 메이저리그 체제가 갖춰지기 전 132타석이라는 작은 표본이기에 공평한 비교는 아니다. 기준을 300타석으로 한정하면 역대 1위는 1876년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의 로스 반스로 BABIP는 .438로 대폭 낮아진다. 1900년 이후로 범위를 좁히면 1923년 양키스의 베이브 루스로 699타석 동안 .423의 BABIP를 기록했다. 그러니까 채태인은 한국과 미국을 통틀어 3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 중 143년 동안 가장 높은 BIPA를 기록한 셈이다.


채태인이 아무리 천재에 교타자라도 이런 페이스를 내년까지 이어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천하의 베이브 루스조차 1923년을 전후로 .320/.383를 기록해 편차가 컸다. 한국의 장효조도 1987년을 기점으로 .347/.337로 BABIP 수치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예상대로 채태인이 선배 타자들의 전철을 밟는다면 삼성의 1루, 지명 포지션은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공산이 크다. 이승엽의 작년 부진이 우연이 아니라고 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대비책이라고 하면 우동균, 문선엽, 김헌곤, 모상기 등의 유망주를 준비시키는 것. 여태껏 삼성이 믿음의 야구로 성공을 거뒀더라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더 유연해져야 역대 한국시리즈 두 번째로 4연패를 도모할 수 있다.



한화 선발 로테이션 – 송창현


한화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송창현. 아직은 보여줘야 할 게 더 많은 투수다.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9년 만에 컴백한 '백전노장' 김응용 감독은 2013년 최하위 성적과 무리한 투수 기용으로 팬들에게 많은 원성을 들었다. 그래도 후반기 노감독을 재평가하는 요소가 있었으니 송창현의 분발이다. 이전까지 평균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던 송창현은 8월 24일 이후 8번의 선발 등판에서 46.0이닝 1.9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경기 결과만 놓고 보자면 새로운 에이스의 탄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평균자책점을 제외하고, 송창현이 정말 시즌 초와 비교해 몇 단계 업그레이드했는지 의문이 따른다. FIP만 보자면 마지막 8경기에서도 5.43으로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이 시기 BABIP 수치는 .183로 2009년 유동훈의 수치와 거의 비슷하다. 작년 선발 등판 기록만 보면 송창현은 ERA와 FIP 차이가 가장 큰 선수였다. KIA 다음으로 FIP에 대비 평균자책점이 높았던 한화에서 유독 한 선수에게 극단적인 반대 결과가 나타난 것은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불펜에서도 송창현은 다른 투수보다 상당히 관리를 받은 편이다. 4살 어린 임기영이 수차례 만루의 불구덩이 상황에 집어 넣어진 것과 달리 송창현은 불펜에서 애지중지하게 키워졌다. 임기영의 등판시 중요도(gmLI)는 1.26으로 평균보다 높았던 반면, 송창현의 gmLI는 0.38로 난이도가 무척 쉬웠다. 평균 130km 후반의 빠른볼, 부족한 제구력은 등 아직 ‘송창현진’이라는 별명에 적합한 기량이 아니다. 송창현에 당근책을 계속 쓰더라도 내년 시즌 기대치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화 션발진의 문제는 송창현만이 아니다. 외국인 투수 두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자리는 모두 물음표다. 김혁민은 FIP와 ERA에서 지난 시즌에서 모두 후퇴했고, 유창식은 조급함 속에 단계를 밟지 못하고 있다. 삼성과 달리 돌파구는 딱히 없다. 단지 조지훈이나, 임기영 등의 투수 유망주를 유창식이나 하주석처럼 너무 공격적으로 다루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KIA 외야진 – 신종길


이용규와 김주찬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진 상황에서 KIA 외야를 지킨 선수는 제4 외야수로 분류됐던 신종길이다. 좌중우를 넘나들며 전천후로 뛰며 427타석 동안 .310의 타율, 29도루로 두 부문에서 팀 내 1위를 마크했다. 2014년에도 신종길은 상위타선, 심지어 중심타선에서 기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신종길이 작년과 같은 활약을 지속할 수 있느냐다. 채태인까지는 아니라도 신종길의 BABIP는 .388로 상당히 높았고, 이는 300타석 이상 역대 9위의 기록이다. 참고로 8위는 프로야구 최고의 시즌 중 하나라 불리는 1994년의 이종범으로 .391의 BABIP를 기록했다. 둘의 차이라면 전성기 이종범은 BABIP 수치와 거의 무관하게 생산력을 유지했지만, 신종길은 출루와 장타에 약점으로 기복이 극심하다는 점이다. 타석 수는 적으나 2010년 신종길의 비율 스탯은 지금과 비슷하다. 내년 다시 2011, 2012년으로 돌아가지 말란 법이 없다.


페이스 하락에 대한 우려는 이미 후반기부터 시작되었다. 7월까지 방망이에 맞으면 안타가 될 것 같던 포스의 타격은 후반기 BABIP가 8푼 6리가량 떨어지면서 OPS는 .907에서 .697로 수직 낙하했다. 선구안이 발전했다는 호평에도 타석당 삼진, 볼넷 비율은 커리어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수비는 코너에서도 센터에서도 평균 이상이라는 평을 받지 못한다. 


현재 KIA의 외야진은 김원섭의 부상, 이용규의 이적으로 구멍이 많이 뚫렸다. 나지완은 수비에서, 이대형은 공격에서 약점이 극명한 선수들이다. 신종길이 2014시즌에 작년 이상으로 불방망이를 내뿜을 수도 있지만, 부진할 경우를 대비한 시나리오는 지금부터 준비돼야 한다.



SK 투수진 – 박정배, 백인식 등등


앞서 타자는 갑작스러운 BABIP 증가, 투수는 감소를 걱정했다면 SK에 한해서는 반대다. 투수진의 BIPA는 수비효율이라 불리는 DER 수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또 FIP보다 ERA가 작을수록 그 팀의 수비력이 뛰어날 개연성이 높다. 연간으로 보면 큰 의미가 없으나 SK처럼 평균대비 꾸준히 그러한 경향이 나타났다면 팀수비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대현이나 송은범 등 SK 출신의 선수가 타 팀 이적 시 평균자책점이 떨어지는 현상은 이런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FIP+ = 리그평균ERA / 개별선수 FIP X 100 (파크팩터 제외)

100을 기준으로 높을 수록 좋음.


하지만 최근 SK의 수비 조직력에 균열이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 표를 보면 2위 그룹과 압도적인 차로 1위를 유지하던 FIP-ERA 차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으며 최근 3년간은 1위 자리를 내줬다. 여전히 상위권이긴 하나 이제 SK가 최고의 수비력을 갖춘 팀이라고 말하기는 망설여진다. 더군다나 내야 수비의 핵심축이던 정근우마저 한화로 팀을 옮기고 말았다. 앞으로도 SK 투수들이 수비수들의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김광현을 예로 들어보자. 2011년을 기점으로 제대로 된 피칭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나, 수비력 차이가 부진을 극단적으로 드러나게 했다. 2007~2010년까지 김광현의 FIP(3.66) - ERA(2.65) 차는 1이 넘는데 2011년 이후에는 FIP(4.58)와 ERA(4.52) 수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 2014 시즌 후 최정과 김강민마저 떠나게 되면 이후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한편, SK의 투수력 자체가 더 무너지는 게 더 큰 일이다. FA 선수 이동과 정우람 등의 입대로 팀 ERA와 FIP는 모두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필승조로 뛰었던 박정배는 작년 1.65의 평균자책점에 비해 FIP는 3.61로 특별하지는 않다. 5선발 백인식도 선발로 뛴 15경기 81.2이닝 동안 FIP는 4.48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고 하기는 이르다. 리바운딩 확률이 높은 김광현을 마무리로 돌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그보다는 중복포지션을 정리해 외부에서 투수를 수혈해야 할 시점이다. 전병두, 엄정욱 등 부상 선수만 기다리기에는 SK 투수진의 상황이 느긋하지 않게 느껴진다.



추가로 위에 언급한 내용 외에 두산의 이원석, 김재호, KIA의 양현종, NC의 이재학, 롯데 손아섭, 이명우, LG 이병규, 봉중근 등이 올해 특히 조심스럽게 봐야 할 선수들이다. BABIP에 관련된 스탯들이 무조건 운에 의지하지는 않지만, 단기간 성적의 오르내림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으면 한다. 적어도 팀을 꾸리는 프런트와 코치진이라면 치우친 낙관이나 비관 모두 지양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