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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프로야구 재정 독립 필요성, 넥센을 보라

2011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LG와 트레이드가 없었다면 넥센의 가을 야구는 실현 불가능했다.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혹자는 국내 프로야구는 용병 한 명만 잘 뽑으면 가을 야구가 가능하다고 한다. 과연 이 말이 타당한가? LG는 작년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한화는 2007년 이후 추락해 몇 년째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그에 반해 삼성은 10년 중 9번을 가을 야구에 경험했고, SK는 6년 연속 KS에 진출하기도 했다. 두산이나 롯데도 포스트시즌 단골손님. 속된 말로 해먹는 팀만 해먹는 구도가 깨지지 않았었다.


그런 면에서 올해는 LG, 넥센 등 하위권에 머물던 팀들의 분전이 눈에 띈다. 특히 넥센은 기존 팀과 차별화되는 발 빠른 움직임으로 팀 운영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팬들의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야구에서 성적에 따른 공과는 감독 한 사람에게 쏠린다. 실제로 감독의 영향력이 미진한 분야라도 팬들은 '결국은 감독책임'이라는 표현을 하기 일쑤다. 그런데 넥센은 조금 다르다. 올해 선전에 대해 염경엽 감독에 대한 칭찬이 빠지지 않더라도 구단주인 이장석 사장에 대한 논평이 더 화제가 된다. 감독만큼 구단주의 얼굴이 유명한 팀은 프로야구사에 전무후무하다.



이장석 사장의 공과, 절실함이 준 선물


유독 넥센에서만 나타나는 이런 기현상을 마냥 기뻐하기는 께름칙하다. 이장석 사장의 인지도는 긍정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가 현대를 인수할 당시 세간의 이목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매년 100억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야구 구단을 운영할 재정이 되는지 혹은 팀 매각으로 이득을 보려는 장사치에 불과한 게 아닌지 의심됐다.


실제로 히어로즈는 초기에 KBO에 가입금 납부 조차 힘겨워했으며 계속된 운영난을 현금 트레이드로 타개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이 시기에 팔려나간 선수만 해도 장원삼, 이택근, 이현승, 황재균, 고원준 등 팀의 주축들이다. 일련의 현금 트레이드가 없었다면 애초에 하위권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선수를 떠나보낸 팬들의 상처와 프로야구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이장석 사장이 한국야구에 끼친 해악은 결코 적지 않다. 열악한 시설의 목동 구장의 티켓값은 아직도 터무니없이 비싸 히어로즈 야구단의 근본적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넥센은 전체 프로야구 구단 중 가장 많은 스폰서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그렇지만 히어로즈가 위기를 헤쳐나오는 과정과 최근의 행보를 보면 여태까지의 과오를 어느 정도 만회했다고 여겨진다. 일단 그들은 절실했다. 가진 예산이 적기에 초기 유니폼은 덕지덕지 광고판이 되었고, 이곳저곳 스폰서를 찾아다녔다. 누군가에게는 구질구질해 보이는 행동들일지 몰라도 야구단이 모기업의 도움 없이 살아남는 방법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일이다.


넥센 프런트가 스폰서 효과나 관중 수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성적이 좋아야 한다. 재정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2011년 전후 넥센 프런트는 적극적인 투자를 시작한다. 오버페이라지만 이택근, 김병현과 계약하며 전력 보강과 이미지 개선 효과를 모두 충족시켰다. 또 일련의 트레이드로 박병호, 송신영, 이성열, 서동욱 등을 영입하는 미려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전까지 시장의 암적 존재였던 넥센 프런트가 모범생으로 변신한 순간이다. 넥센이 4강에 진출하기까지 선수 구성을 책임진 프런트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공부하는 감독이라는 호평을 받는 염경엽 감독도 이장석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선임이 결정됐다.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물론, 이런 성공은 프런트의 야구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계열사에서 이동해 야구단의 성장보다 무난함을 추구하는 타구단 프런트와 달리 이장석 사장은 성적을 올려야 하는 동기 부여가 충분했다. 그게 야구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든 구단 가치를 키워 매각 금액을 높이려는 불순한 마음이든 목적은 같다. 그래서인지 이장석 사장의 야구 지식은 시즌 전 시범경기 객원 해설자로 나설 정도로 일정 수준 이상이라고 한다. 드래프트와 트레이드에서 이장석 사장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며 기록과 통계에도 능하다고 미디어는 보도하고 있다. 감독 선임도 그렇다. 야구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나 기본적인 지식이 갖춰졌기에 감독 면접도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넥센은 유니콘스 시절부터 프런트진이 유능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구단주가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은 야구 전문 경영인을 두는 MLB와 비교해 이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낙후된 프로야구 운영 체제에서 넥센의 방식은 되려 선진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대기업 울타리 벗어나야 한국 야구가 발전한다.


단순히 성적만 눈여겨볼 게 아니다. 최근 넥센은 화성시와 협약을 맺고 2014년부터 2군 팀 '화성 히어로즈'를 출범시키는 준비를 하고 있다. 내용인즉슨 히어로즈 2군 팀에 '화성시'라는 지역명을 허용하는 대신 2군 구장 부지와 야구장 시설을 제공받는다는 게 요지다. 일종의 네이밍 마케팅으로 볼 수 있다.



야구단 프런트가 똘똘해지고, 프로야구 시장이 확대되면 모기업에 기대지 않아도 야구장이 생긴다.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지금까지 넥센은 전라남도 강진 베이스볼 파크를 임대해 2군 구장으로 사용해 왔다. 강진은 1군 팀과 거리가 너무 멀어 '유배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자체 구장이 아니기에 체계적인 선수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히어로즈의 재정 사정으로는 부지를 사고 야구장을 건립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협약으로 1군과 가까운 부지에 저렴한 비용으로 자체 연습장을 갖게 됐다. 게다가 새로운 2군 리그의 모델로 지역 밀착과 퓨처스리그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미국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을 보며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일들을 지금 넥센 프런트는 시도하고 있다.  


넥센의 이런 행보는 지지부진한 진행으로 2군 구장 건설에 애를 먹던 몇몇 구단들과 크게 대비된다. 예를 들어 한화는 2007년부터 대덕구와 협약을 맺고 2군 구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행정문제 등이 얽혀 차일피일 공사가 미뤄졌다. 최근이 돼서야 입지를 서산으로 바꾸고 300억 이상을 투자해 2군 구장을 건립했다. 한화뿐 아니라 KIA, SK 등도 마찬가지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걸렸다.


그럼 왜 기존 구단들은 넥센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대기업 산하의 구단들은 야구단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다. 모기업에서 예산이 나오기에 이득을 낼 필요 없고, 홍보를 위해 당장 성적만 내면 된다. 파견된 프런트 라인이 미래를 보는 2군 구장 건설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모기업에 기대지 않고, 재정 독립을 지향하는 넥센이기에 합리적이고 빠른 일 처리가 이뤄질 수 있었다. NC 다이노스의 마케팅 및 구단 상품들이 대기업 산하 KIA 타이거즈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여전히 야구단은 모기업에서 자금 빵빵히 지원받아서 FA 영입해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생각대로 된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내 여건상 선수 영입은 한계가 있고, 자금 투자가 곧바로 성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야구단이 돈을 벌면 뭐하냐고? 야구단이 재정적으로 독립하면 팀 자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사람들로 운영진이 바뀐다. 그 사람들은 TV 중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감독보다 선수단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올 시즌 넥센의 선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