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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KS 치명상 입은 삼성, 어디에서 꼬였나?

한국시리즈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시작 전 1위팀 메리트로 다소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왔던 삼성이 대구 홈에서 두산에 충격적인 2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경기 내용은 더 좋지 않다. 1차전에서는 에이스 윤성환이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6실점 하며 강판당했고, 2차전에서는 마무리 오승환을 4이닝이나 던지게 했으나 결승 홈런을 허용하고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이승엽은 장타 없이 9타수 1안타, 승부처에서 번번이 물러나면서 상대 투수의 먹잇감이 됐다. 투타의 중심축이 주저앉은 삼성은 코치나 선수 모두 망연자실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실타래가 꼬인 걸까?



최대 무기라던 1+1, 타이밍 놓쳐 무용지물로


2012년 우승의 일등 공신 윤성환과 오승환. 코칭스탭은 이들의 실패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삼성 라이온즈)



일반적으로 경기를 예상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포지션이 선발 투수다. 전력이 비슷하면 선발 투수가 호투하는 팀이 승리할 확률이 높은 게 당연하다. 따라서 삼성의 지금 패배의 단초는 선발 윤성환의 난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시리즈를 시작하기 전에도 1선발의 불확실성은 예견되던 바다. 위에서 보듯 2012년 윤성환은 시간이 갈수록 좋은 피칭을 했던데 반해 올해는 점점 성적이 나빠졌다. 전체 성적도 ERA로 보면 무난하지만, FIP가 높아 100% 만족하진 못한 시즌이다. 후반기 페이스로 본다면 밴덴헐크나 배영수가 1차전 선발로 더 이상적인 카드였다.


그럼에도 불구 윤성환의 커리어와 뛰어난 커맨드를 고려하면 1선발까지는 이해한다. 문제는 계획이 어긋났을 때의 대처다. 삼성이 두산보다 더 강한 부분은 불펜진도 있겠으나 차우찬을 포함한 선발의 여유가 가장 컸다. 류중일 감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1전략을 쓰겠다며 차우찬의 활용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윤성환이 2회 3실점 허용했을 때 차우찬을 준비시켜야 했고, 김현수에게 피홈런을 허용한 다음에는 투수를 교체하는 기용이 무난했다. 두 번 양보하더라도 최준석에게 안타를 맞을 때는 바꿔줘야 했다. 현실은 이원석에게 4연속 안타를 맞고 추가 2실점 할 때까지 투수는 바뀌지 않았고, 이후 필승조 투수들은 6점 차 상황에 컨디션 조절차 차례차례 올라오게 된다. 투수 기용의 순서와 시기가 모두 엇나가 버린 순간이다.


1차전 패배 후 류중일 감독은 승부를 걸겠다며 2차전 차우찬과 오승환의 조기 투입을 예고했다. 하지만 밴덴헐크가 이렇다 할 위기 없이 호투하면서 1+1은 또 한 번 시행되지 않았다. 롱릴리프 역할을 하기 위해 중간중간 몸을 풀던 차우찬은 6회초 2사에 등판했는데 1.2이닝을 던지는 평범한 중간 계투로 활용됐다. 경기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가면서 차우찬이 메워야 할 중간을 오승환이 정규시즌보다 3~4배 많은 피칭으로 메워야 했다. 그 정도 던지면 천하의 류현진이라도 실투가 하나쯤 나오기 마련. 두산 타자들의 오승환에 대한 적응력 상승도 생각지 못한 출혈이다. 삼성은 스스로를 궁지에 몬 꼴이 되고 말았다.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한 LG와 위기에 빠진 삼성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두 번째 외국인 투수의 부재. 불펜이 강한 1, 2위 팀이라고 프런트와 코치진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고, 이 차이는 포스트시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삼성이 외국인 투수 한 명이 더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여유 있고 과감한 투수 운용이 가능했다. 두산이 핸킨스가 없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시리즈가 진행됐을 개연성이 높다. 챔피언의 자만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 삼성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듯하다.



상반된 타격 사이클, 김상수 공백 절실



김현수가 큰 경기에 약하다는 평은 국제 대회에서의 모습을 상기하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두 번째 패인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손승락이 4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던 두산과 지난 25일 오승환이 상대했던 두산 타선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준PO와 PO에서 두산은 9경기에서 .207의 타율 .627의 OPS를 기록했다. 아무리 선별된 투수들과 상대하는 포스트시즌이라 해도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치다. 두산은 이 기간 동안 수비와 주루플레이로 타격 부진을 극복했고 3일 휴식기를 통해 타격 사이클이 점점 올라오는 추세다. 지난 9경기 27타석 .120의 타율 .160의 장타율로 땅을 기던 김현수의 타격감도 홈런 한 개 포함 .545의 장타율을 기록할 만큼 살아났다. 또 손시헌이 정규시즌에 이어 삼성에 강한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고, 부상당한 이원석과 교체된 김재호까지 3타수 2안타 2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2차전 승리의 크게 공헌했다. 하필 상승세의 타선을 상대하는 삼성으로서는 불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삼성 선수들은 20일간의 공백으로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두 경기 삼성이 획득한 점수는 겨우 2점. 보통의 경기 흐름이라면 2차전 초반 김현수의 타구가 배영섭에 잡히고, 최준석이 좋은 타격을 하고도 병살타가 되었음에도 경기 흐름은 넘어가지 않았다. 경기 후반 찬스 무산 장면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 


8회 오현택에 이어 등판한 홍상삼은 도무지 제구가 되지 않았다. 선두 타자 정형식에게 볼넷을 내준 후 박석민에게 던진 6개의 공은 1개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볼 판정을 받을 만한 위치에 들어갔다. 운 좋게 내야 안타가 되긴 했으나 박석민은 플레이오프 LG 타자들처럼 홍상삼을 도와준 것과 진배 없었다. 다음 타자 최형우도 마찬가지. 처음 들어온 5개의 공이 모두 볼이었음에도 방망이가 나가 2-2 볼카운트가 됐고, 마지막 존에 들어온 슬라이더에 헛방망이로 삼진을 당한다. 이날 경기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이었다. 다음 타자 채태인이 안타로 겨우 동점을 만들었지만, 난조를 보인 홍상삼이 내려가면서 쉽게 승리할 찬스를 놓쳐 버렸다.


두산의 가장 큰 약점은 구원진이라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확실한 필승조의 부제다. 후반기 팀을 이끌었던 윤명준은 정규시즌과 비교해 살짝 불안한 피칭을 했고, 김진욱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탭은 신용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2차전 호투는 다시 신뢰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베테랑 정재훈과 함께 두산 구원진은 남은 한국시리즈에서 더 견고해질 확률이 높다. 삼성 타자들이 알아서 도와준 결과다.


이날 최형우의 성급함은 후속 타자들의 부진과 연관이 없지 않다 . 김상수, 조동찬의 공백을 정병곤과 김태완이 수비에서는 어느 정도 메꿨지만 타격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지난 두 경기에서 포수-유격수-2루수 포지션 선수들은 합계 27타석 동안 .136AVG .269OBP .136SLG의 저조한 타격 라인을 보였다. 이승엽과 배영섭을 포함 라인업의 반이 침묵하니 중심 타선선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수비에서 잘 해주던 정병곤 마저 부상으로 교체됐다. 앞으로 출장에 지장이 있으면 삼성은 경기 후반 선수 교체마저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원정에서의 2연승으로 두산이 한국시리즈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분위기만 본다면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새다. 그렇지만 아직 승리에 도취하거나 패배감에 좌절하기는 이르다. 두 경기는 표본으로 삼기에 너무 적고, 삼성 투수진은 여전히 힘이 넘친다. 당장 3차전에 승리하면 4차전은 배영수가 나오든 장원삼이 나오든 이재우보다 매치업에서 우위에 있다. 단기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않은 법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3년의 야구가 어떤 드라마를 쓰게 될지 느긋하게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