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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다시 만난 곰과 사자, 명승부는 예약돼있다

싸대기 매치라 불리는 양 팀의 매치업은 4~5경기로 끝내기는 너무 아깝다. (사진 - KBSN 스포츠 캡쳐)


얼마 전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포스트시즌 제도를 강하게 비판해 화제가 되었다. 총 144경기를 치르는 정규리그의 승자가 있음에도 단기전 승부로 우승이 결정되는 구조가 불합리하다는 논조다. 이런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다. 하지만 상업 스포츠인 프로야구에서 단기간 관심을 집중시키는 포스트시즌 토너먼트 제도는 필수 불가결하다.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최종전 개념의 단기전 승부는 있기 마련이다. 대신 메이저리그는 양대 리그와 총 30개 팀 중 10개 팀으로 포스트시즌에 참여를 제한하면서 단기전 승부의 당위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 리그는 어떨까? 현 프로야구의 포스트시즌 제도는 하위 팀이 차례로 승리를 거둬야 정규리그의 1위를 만나는 페널티를 부과하면서 팬들을 이해시킨다. 실제로 이런 시스템하에 정규시즌 1위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한 경우는 22시즌 중 단 3번뿐이다. 또 2001년 이후에는 정규 시즌 우승팀이 리그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이 정도가 되면 약간의 불합리를 인지하고 있어도 한국시리즈의 당위성에 대해 이해시킬 수 있게 된다. 


올해 두산의 한국시리즈 도전도 미디어에서는 상당히 어렵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4위 팀이 한국시리즈에 승리한 예가 한 차례도 없다는 이유로 0%의 도전이라는 모순적인 문구마저 꺼내 든다. 그런데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이런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두산이 할 만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로 보면 된다. 정규시즌 경기 차만 봐도 양 팀의 치열함은 드러난다.



숫자는 함정! 시리즈 전망은 예측불허



위에서 왼쪽은 역대 정규시즌 승률 1위~4위 팀 중 10경기 차 이내 시즌을 정리한 표다. 프로야구 32년사에서 올해처럼 1위와 4위의 게임 차가 적었던 적은 처음이다. 정규시즌 승률 1위와 4위의 게임 차가 10경기 이내인 9시즌 중 한국시리즈에서 순위가 뒤집어진 경우는 무려 4차례, 44.4%의 확률이다.


이번에는 오른쪽 표. 한국 시리즈 상대 팀이 정규시즌 5경기 이내일 때 업셋 확률은 12번 중 4번, 33.3%의 확률이다. 결과가 뒤집히진 않았으나 2009년 SK는 KIA를 7차전 9회까지 몰고 갔고, 2004년 한국시리즈는 무승부 경기만 세 번으로 9차전까지 가며 혈투를 벌였다. 현 시스템하에서 1위 삼성이 유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언론에서 말하듯 희박한 확률은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두산은 플레이오프를 4차전에서 끝마치며 3일을 쉬었고, 잠실에서만 경기해 이동일 없이 피로를 줄였다. 상대 삼성은 키스톤 콤비 김상수-조동찬이 모두 빠진 상황. 두산이 시리즈에 승리해도 '미러클'이란 표현은 하지 말자.


반대로 삼성은 3년 연속 통합 우승의 기로에서 최대 강적을 만났다. 지난 2년 SK가 삼성에 도전해왔으나 정규시즌 8.5게임 차로 전력에 있어서는 차이가 심했다. 이번에 만날 두산은 후반기 승률에서는 근소하게나마 삼성을 앞서고 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는 2001년 아픔의 반복일까? 아니면 2005년 기쁨의 재연일까?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우나 명승부가 될 확률이 높다.



홈 경기를 잡아야 승리가 보인다



이종욱을 위시해 두산 육상부가 살아나기 시작하면 삼성 배터리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전체 기록상으로 두산은 올해 최고의 타격 팀이다. 그렇지만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 김현수, 홍성흔, 이종욱, 김재호 등 주력 선수들이 OPS 5할을 넘기지 못하는 등 극심한 타격 부진을 보이고 있다. 그에 반해 삼성은 후반기 채태인이 ‘타신’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최형우 박석민도 살아났다. 2루수 김태완은 조동찬의 공백을 완전히 뒤덥을 만한 맹타로 팀 분위기를 주도했다. 대구 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으로 삼성은 장타력에서만큼은 두산에 우위를 가져갈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김상수의 부상으로 내야에 큰 구멍이 생겼다. 정병곤이 안정감이 있더라도 수비 범위와 타격 면에서 김상수와의 차이는 크다. 두산의 백업인 손시헌과 허경민이 더 재능있는 선수라고 해도 이의를 달기 어렵다. 포수 포지션도 걱정. 진갑용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포수 3명을 엔트리에 채웠으나 두산 최재훈이나 양의지와 비교하면 수비력에서 뒤처진다. 두산의 도루 숫자는 삼성의 2.5배가 넘어 뛰는 야구를 빈번하게 시도할 듯싶다. 피치 아웃만으로 두산 육상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펜스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대구 구장에서는 중심 타선의 무게감이 장점인 삼성이, 수비와 주루가 더 중요시되는 잠실 구장에서는 두산이 유리한 부분이 있다. 양 팀의 라인업도 이러한 고려가 있지 않을까 싶다.



높은 삼성 마운드, 변수는 있다?


장원삼의 활약은 후반기 기록과 상대 전적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  (사진 출처 - 삼성 라이온즈)




많은 전문가들이 삼성의 근소 우위를 점치는 이유는 삼성의 높은 마운드가 배경에 있다. 특히 선발은 차우찬을 뒤로 돌릴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고, 좌우 분배도 이상적이다. 다만, 윤성환이 후반기 부진하면서 확실한 1승 카드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가장 큰 불안은 4선발 장원삼. 올해도 홀수해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시종일관 널뛰는 피칭을 했다. 두산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네 번째 선발을 쓰는 시기에 장원삼 활약이 시리즈의 관건이라고 할 만하다.




불펜은 삼성이 크게 앞선다고 평가받는 부분이다. 그런데 기록상으로 보면 두산도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홍상삼이 큰 역할을 했고, 핸킨스가 구원진에서 나름 자리 잡은 덕이다. 삼성 불펜진의 가장 큰 변수는 마무리 오승환이다. 놀랍게도 오승환의 후반기 FIP는 4점대로 신용운, 조현근 다음으로 높다. 올해 평균자책점은 1점대로 여전히 낮지만, 투구내용을 보면 한창 좋을 때의 모습과 거리가 있다. 오승환도 사람이기에 해외진출에 대한 이슈로 평정심이 흔들렸는지도 모른다. 홍성흔의 미디어데이 코멘트는 영리했다고 보인다.




상대전적을 보면 투수진의 활약에 대한 예상은 더 어려워진다. 후반기 부진했던 장원삼은 두산을 상대로는 좋았고, 두산 불펜의 핵인 홍상삼은 삼성을 상대로 피홈런 3개를 허용하는 등 약한 모습을 보였다. 또 마무리 오승환 역시 그 정도는 아니나 두산 야수들에게 철벽 마무리는 아니었다. 2차전 등판이 예상되는 외국인 투수들 기록도 막상막하. 그래도 삼성의 마운드의 우세를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종합해서 보자면 타격은 막상막하, 수비에서는 삼성 마운드의 높이를 두산 야수들의 수비와 강한 어깨로 보완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더 강한 팀은 운이 좋은 팀이라고 할 정도로 전력의 차이는 크지 않다. 이쯤 되면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살며시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