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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루키 한현희, 개막전을 강타하다.

흔히 신인들에게 주는 기회는 경기가 원사이드로 흘러갈 때가 많다. 이른바 가비지 타임에 나와 긴장하지 말라고 유도를 하지만, 신인들에게는 자신의 프로 첫 번째 경기이기에 떨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볼넷을 남발하는 선수들을 보는 팬들은 저 선수는 안 되겠네~ 새가슴이네~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선수 분위기가 이상하다. 넥센이 6 : 2로 이긴 상황 8회말 원아웃에서 김시진 감독은 고졸 루키를 마운드에 올린다. 4점 차라고 해도 상대 타자는 투수라면 모두가 흠칫할 만한 두산의 4번 타자 김동주다. 첫 두 개의 공이 볼이 되며 긴장할 만한 상황에서 3개의 공을 존에 꽂으며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다음 타자 최준석에게는 슬라이더를 구사해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선수보다 관중과 시청자가 더 놀랐다. 한현희가 던진 공은 140km 초반에서 최고 145km의 구속을 형성했다. 오버핸드 투수라고 해도 빠른 편에 속하는데 옆구리 투수가 이런 강속구를 뿌리니 타자는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마치 지난해 김대우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줬다. 

9회에도 재밌는 장면이 나왔다. 투아웃을 잡은 후 손시헌에게 바깥쪽 연속 볼 네 개를 내줬다. 한현희의 반응이 재밌다. 겁먹는 게 아니라 왜 이러지? 하는 듯한 표정이다. 한현희는 다음 타자 정수빈에게 공 두 개로 땅볼을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 했다. 중간에 해설자가 한현희를 보고 급하다는 듯한 코멘트를 한 게 생각난다. (정확히는 기억이^^) 아마도 빠른 투구 템포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보는 입장에서는 머뭇머뭇하는 것보다는 좋다. 


미디어 데이에서 김병현에게 귓속말 하는 한현희 (사진 출처- 히어로즈 홈피)



한현희는 당돌하다. 미디어 데이에서는 롯데의 대졸 신인 김성호에게 산체스 형이라는 말을 하지 않나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닥터 K라고 소개한다. 엔트리에 드는 게 먼저라면서도 신인왕에 대한 욕심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한현희의 이런 4차원 포스에 사람들은 건방지다기 보다 즐겁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귀염상 외모와 말투도 한몫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감에서 나오는 밝은 아우라가 있다. 진지한 하주석과의 대비는 매우 코믹하다.


한현희는 고교 시절 주말리그에서 3학년 시기 총 123.1이닝 동안 무려 167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볼넷은 단 10개. 고교리그를 씹어 먹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비록 크지 않은 체격과 사이드스로라는 핸디캡으로 드래프트 4번째로 지명됐지만, 누구 못지않게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진지한 믿음이 있기에 프로에 와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좋은 스타트에도 불구 아직 93년생 한현희가 갈 길은 멀다. 프로에서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큰 실패도 있을 것이다. 넥센에는 김병현 같은 멘토가 될 선배도 있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개막 첫 경기부터 대형 신인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에 크게 고무되는 2012시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