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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롯데 사찰 스캔들, 일그러진 프로야구 자화상

롯데 구단은 프로야구 최고의 팬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사진 출처 - Save the Giants 대문)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 타자가 친 타구의 궤적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한국시리즈. 그러나 경기장 밖에서 벌어진 롯데 파동은 다시 한 번 팬들의 눈을 경기장 밖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준PO, PO 기간 있었던 감독 교체기의 진통이 해프닝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국 야구계에 미치는 후폭풍이 큰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롯데 사태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시기는 지난 5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정상 주말 경기를 마치고 3일간의 휴식기를 가진 롯데에 갑작스럽게 선수단이 집단행동을 취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선수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했는지 그 동기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자세한 내용이 전달되지는 못했다. 다만, 이 일로 인해 권두조 코치가 수석직에서 내려왔고, 이문한 운영부장이 사의를 표했다. 원인에 대해서는 선수들과는 권위적인 지도 방식 등에서 마찰이 있었다는 내부의 전언이 실린 정도다. 여기에 CCTV를 통해 선수들을 감시한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몇몇 매체에서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롯데 내부의 진통은 봉합되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다는 추정이 유력하다. 첫 번째 근거로 수석 코치에 사임해 1군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권두조 코치의 이름은 8월 22일까지 엔트리에 등록되어 있었다. 이문한 운영팀장도 선수와 접촉금지 명을 받았을 뿐 사표는 반려됐다고 한다. 한 마디로 미봉책으로 사태를 수습했을 뿐 실질적인 인사 조치가 없었던 셈이다. 반면 김시진 감독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넥센에서 함께 온 정민태 코치는 공필성 코치와 갈등을 겪었다고 알려진 후 3군으로 내려갔다. 이때가 되어서야 권두조 코치의 이름도 1군 엔트리에서 지워졌다.


어정쩡한 인사 조치 속에 선수들의 불안감은 계속됐다. 선수들과 접촉이 차단됐다고 하나 프런트 라인으로 불리고 있는 권 전 수석과 이 운영팀장이 시즌 종료 후 보복을 하겠다는 소문이 돌았다. 차기 감독 후보로 공필성 코치가 선임된다고 하자 선수들이 반감을 가진 이유도 이와 큰 관련이 있을 듯하다. 실제로 이들이 구단과 선수 사이에서 어떠한 역할을 부여받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인 코치와 선수 간의 관계에서 나오기 힘든 반응들이었다. 그리고 이 라인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배재후 단장이 지목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1월 4일 박동희 기자의 취재를 통해 또 다른 반전의 사실이 알려진다. 지금까지 배재후 단장을 견제하던 인물이라 생각했던 최하진 사장이 실은 호텔 선수단 사찰을 주도한 배후라는 것이다. 최하진 사장은 선수들의 사생활을 감시하기 위해 CCTV가 설치된 호텔 후보지를 직접 물색하고, 호텔 직원이 기록한 문서를 주기적으로 보고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5월 선수들이 이 문제가 불거진 후에도 자신은 슬쩍 책임을 회피하고, 6월까지 사찰행위를 계속했다고 하니 부정적 의미로 과감하기가 이를 데 없다. 아직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실로 밝혀질 경우 선수들의 인권 침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물론 엄중한 법적 처벌도 피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팀의 현안은 제쳐두고, 선수단을 감시를 통해 성적을 내려 했던 롯데 구단의 행태는 마치 한국 사회에 제기된 병폐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 출처- 롯데 자이언츠) 


롯데 팬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이 이 문제를 가지고 기자회견을 갖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최하진 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즉각 대응했다. CCTV 감시를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행한 일이라며 선수들에게 동의를 받으라는 지시도 내렸다는 것. 하지만 기사가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롯데 선수단은 공지를 받은 일이 없다는 반응을 내놨고, 선수협도 법적 조치를 준비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롯데 프런트. 결국, 6일 최하진 사장과 배재후 단장, 이문한 운영부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게 됐다.


길게 이어져 온 롯데 파동은 프런트 핵심 인사 세 명의 사표가 수리되면 조금씩 수습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은 프로야구 어쩌면 한국 사회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고 있기에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다. 먼저 다음 날 경기를 위해 선수단을 CCTV로 감시하겠다는 발상은 성적만 나오면 개인의 삶은 무시해도 좋다는 전형적인 성과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프로야구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선수를 근로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로 정의하는 모기업의 강경한 태도를 상기하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백번 양보해 최하진 사장이 롯데 자이언츠를 위해 열정을 가지고 일했다고 해도 그 방식이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프로야구에서 성적은 선수들의 자율권을 배제해야 오르는 게 아니다. 정신무장과 투지만으로 성적을 내는 시대는 지났거니와 그 역할은 현장 코칭 스탭이 해야 할 분야다. 프런트의 할 일은 한정된 예산에서 최고의 선수단을 구성하고, 현장 실무진과 상의 하에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막상 눈앞에 해야 할 과제인 신인 스카우트, 외국인 선수 교체, 포지션 중복 문제를 등한시하면서 엔트리와 작전 지시에 개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야구단 프런트의 최종 책임자가 바뀐다고 하여도 넥센처럼 야구를 전문으로 하는 경영진을 구성하지 못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 될지도 모른다. 야구단을 대하는 그룹의 태도도 마찬가지. 약 30년 전 삼성 김영덕 감독 부임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번트를 대지 말라는 지시가 지금도 똑같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한국 프로야구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된다. 야구인이 존중받지 않으면 야구도 발전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이치다.




인종 차별 발언으로 영구제명 당해 클리퍼스를 매각해야 했던 도널드 스털링 전 구단주. 협회가 제 역할을 할 때 리그는 건강해진다.


KBO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롯데 사태와 결은 다르지만, 올해 4월 NBA 플레이오프 기간 중 LA 클리퍼스 선수들의 맥을 풀리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이 그의 여자 친구가 매직 존슨과 사진을 찍자 흑인을 경기장에 데려오지 말라며 인종차별을 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흑인(Afro-American)이 대부분인 NBA리그에서 선수들의 반발은 당연. 클리퍼스 선수들은 경기 보이콧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경기 전 클리퍼스 로고가 새겨진 연습 유니폼을 벗어 던지는 침묵 시위를 했다. 선수들뿐 아니라 NBA의 레전드를 비롯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각개 각층의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한 NBA 사무국의 대처는 단호했고, 며칠 후 애덤 실버 커미셔너는 도널드 스털링의 영구 제명을 통해 구단 매각을 유도했다. 그리고 현 NBA 클리퍼스의 구단주는 MS의 전 CEO 스티브 발머로 바뀌어 있다.


안타깝게도 KBO에 이런 엄중한 대응을 바라기는 무리다. 리그의 세계화를 이끌며 힘을 키워나간 NBA 사무국과 달리 KBO는 이전 현대 사태에 어설픈 대처로 운영자금마저 축내면서 예산권을 뺏기면서 입지가 더욱 축소됐다. 앞으로 협회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려면 정치권 인사가 총재가 되기보다 제도와 수익 구조 개선 등을 통해 리그를 활성화해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러한 논의들은 롯데 사태와 관련해 너무 포괄적인 접근인지도 모른다. 허나 워낙에 뿌리 깊은 사안들이 얽혀있는 만큼 다각도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나갈 필요가 있다. 당장은 까마득해 보이지만,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던 야구 팬들의 열정을 보면 한국 야구의 미래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