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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강정호, 역대 최고의 유격수 시즌을 노린다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최근 해외파 선수들의 낭보가 연이어 들린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는 시즌 10호 홈런과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의 부진을 깔끔히 털어냈다. 오릭스 버팔로스의 이대호는 리그 홈런, 타점 단독 선수에 오르며 애초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국내는 어떨까? 이대호와 추신수 못지않게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가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유격수 강정호는 65경기 출장하며 .343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19개의 대포를 쏘아내 홈런 선두에 올라있다. 이런 강정호의 활약에 힘입어 팀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들 세 명은 한미일 각각의 리그를 대표하는 한국 선수라고 칭할 수 있다. 물론 앞의 두 명과 비교하면 강정호의 명성과 커리어는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현재의 기량 자체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야수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강정호가 얼마나 위대한 시즌을 향하고 있는지 현역, 역대 선수들의 성적과 비교해 보았다.




초인의 경지로 향하는 김태균의 타격 페이스


 


위 표는 규정타석 이상 OPS 9할 이상 선수들의 기록이다. 최근 박석민의 페이스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김태균과 강정호를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다. 타격만으로 본다면 현재까지는 김태균과 강정호가 각축이라고 할 수 있다. 타점은 타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어렵다. 타순과 주자의 여부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이다. 강정호는 앞선 타자 박병호의 탐욕으로 타점을 기록할 기회가 적다. 김태균은 한화 테이블 세터가 찬을 차리지 못하니 득점권 .385의 타율 .692의 장타율에도 배불리 먹지 못한다. 


삼성 이승엽, 박석민의 득점권 타석은 각각 80, 85타석인데 반해 강정호와 김태균의 득점권 타석은 60, 65타석에 머물렀다. 단타를 친다고 가정할 때, 강정호는 박석민보다 25번 타점을 올릴 기회가 적었다는 뜻이다.


그럼 출루율+장타율의 합인 OPS는 만능의 스탯인가? 역시 아쉬움이 있다. 실제로 통계를 통한 연구 결과 출루율이 장타율보다 득점에 더 큰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안타가 볼넷보다 더 큰 가치를 지녔음에도 이를 똑같이 적용하는 출루율로 타자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것은 다소 아쉬움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GPA, RC, XR, EqA, wOBA 등의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들이 고안되었다. 이 중 wOBA (weighted on-base average)는 이해하기 쉽고, 활용에 비해 계산이 복잡하지 않아 각광받는 스탯이다. 공식은 아래와 같다.


wOBA = (0.72*(볼넷-고의사구) + 0.75*사구 + 0.90*1B + 0.92*실책으로 인한 출루 + 1.24*2루타 + 1.56*3루타 + 1.95*홈런) / (타석-고의사구)


공식을 고안하는 과정은 매우 수고스러우면서도 단순하다.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의 실제 경기를 분석해 각 상황마다 얼마나 득점이 나는지 세어보는 것이다. 가령 무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볼넷을 얻었을 때 수년에 걸쳐 점수가 얼마가 나는지 계산한다. 또 2사 상황에서의 기대 득점은 다를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의 득점 평균을 내어 볼넷, 사구, 단타, 홈런 등의 가치를 구한 결과물이 wOBA란 스탯이다. 추가로 보기 편하도록 1.15를 곱해 출루율 스케일로 조정하여 위와 같은 공식이 구해졌다. 



7월 10일까지의 김태균은 .484wOBA, 강정호는 .459wOBA로 계산된다. OPS에 비해 많은 안타를 통해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는 김태균의 가치가 잘 반영되어있다. 얼마나 좋은 기록인지 감이 안 온다면 10번 중에 4.84번 누상에 나가는 타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김태균이 이와 같은 타격페이스를 시즌 끝까지 유지하면 프로야구 역대 400타석 이상을 기록한 선수 중 1999년의 이승엽, 2003년의 심정수, 2001년의 호세 다음으로 좋은 타격을 한 선수가 된다. 참고로 2010시즌 타격 7관왕인 이대호의 .476의 wOBA를 기록했었다.




뛰는 김태균 위에 나는 강정호


이렇게 보면 강정호가 밀리는 것 같지만 역시 대단한 타격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단지 김태균이 조금 더 미쳐있을 뿐. 게다가 강정호는 김태균의 타격을 뛰어넘는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 바로 1루수와 유격수의 포지션 차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서적 'The Book' 의 저자 톰 탱고는 162경기를 뛸 때 포지션 대비 기여도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포수 : +12.5점

유격수 : +7.5점

중견수, 2루수, 3루수 : +2.5점

코너 외야수 : -7.5점

1루수 : -12.5점

지명타자 : -17.5점


김태균은 지명타자로 54타석, 1루수로 394.2이닝을 수비했다. 1경기를 8.9이닝 정도라고 보면 162경기는 1442이닝, 위 값을 적용하면 김태균은 수비에서 4.8점가량 팀에 마이너스 된다. 반면 강정호는 유격수로 521이닝 지명 타자로 13타석 들어서 팀에 +2.38점 플러스 된다. 고로 강정호는 김태균보다 약 7점 이상 기여한 셈이다.


wOBA를 통한 타격 비교도 쉽다. 두 선수는 10일까지 274타석 똑같이 들어섰다. 리그 평균 wOBA는 .320으로 두 선수의 wOBA값과 차이를 1.15로 나눠준 후 타석에 곱하면 기여도 차이가 나온다. 약 5점 정도의 차이로 포지션에 따른 기여도 차이보다 작은 값이다. 





또 계산할 것이 주루와 수비력에 따른 기여도 차이다. 아쉽게도 국내 여건상 수비를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야수를 평가할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에러가 얼마나 많은지 보는 수비율과 RF9 정도다. 


RF9은 노란색 자살(직접 아웃을 잡는 것)과 어시스트라 말해지는 파란색 보살(아웃을 잡는데 도움을 주는 것)을 합한 값을 이닝으로 나눠주고 9를 곱한 값이다. 계산 식을 풀어서 설명하면 9이닝당 아웃을 잡는데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 보는 것이다. 수비하는 쪽으로 공이 많이 올수록 올라갈 확률이 크며 타구 질과 관계가 없기에 수비범위와도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다. 손시헌과 오지환의 RF9값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직접 눈으로 본 스카우팅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김태균은 리그 평균 이하의 수비수이고, 강정호는 평균 이상의 유격수다. 통계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을 보면 최악의 수비수와 최고의 수비수 차이는 ±20점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강정호와 김태균은 그렇게 극단적인 차이는 나지 않더라도 5점 이상은 차이가 날 것 같다.



주루플레이 역시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도루와 도실 뿐이다. 도루는 +0.175 도실은 -0.467 기대득점을 가진다. 15번의 도루 시도 중 딱 한 번 실패한 경이적인 성공률을 보인 강정호는 약 2점가량 점수를 얻었다. 4번 도루 시도 중 3번을 성공한 김태균은 0.06점이다. 그런데 주루플레이는 도루보다 추가 진루가 훨씬 중요하다. 김태균이 선두 타자로 나올 경우 안타를 세 개 쳐도 점수가 안 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다시 한번 팬 그래프를 인용하면 최고의 주자와 최악의 주자는 ±8점가량 차이가 날 수 있다. 강정호와 김태균은 3점 정도라고 해두자. 



종합해서 보면 김태균이 더 좋은 타격을 했어도 강정호가 팀에 더욱 기여하는 선수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약 OPS 1할이 조금 안 되는 차이일까? 아무리 수비와 주루가 좋아도 OPS가 좋은 선수가 짱! 이라는 의견과는 차이가 있는 결과다. 또 한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는 이종범의 상대적으로 압도적이지 않은 OPS를 보고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라며 투명인간이라고 비아냥 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난 걸까? 수비와 주루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국내에도 팬그래프 같은 사이트가 있다면 야구팬들을 눈뜬 봉사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구스탯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공개된 야구 기록 사이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스탯티즈가 아른 거리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 말이다. 




이종범과 강정호를 비교해 본다면?


프로야구 최고의 유격수 시즌이라고 하면 이종범의 커리어 초기라고 할 수 있다. 데뷔 시즌인 93년과 방위였던 95년을 제외한 3년은 어떤 유격수의 커리어 하이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타격에서는 1.000OPS 전후를 기록해 2위 그룹인 유지현, 박진만의 커리어 하이보다 1할5푼 가량 우위에 있다. 타격으로 가장 이종범에 가까웠던 유격수는 1990년의 장종훈으로 .946OPS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비와 주루에서 이종범보다 뛰어났다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 유일하게 이종범의 커리어 초기와 비교할 만한 선수가 나타난 것 같다. 타격만으로 두 선수를 비교하면



 

예전 시즌의 실책으로 인한 출루는 찾을 수 없기에 이 부분을 제외하고 구한 값입니다.



wRC+는 타석당 득점기여 수준을 나타낸 것으로 OPS+ 처럼 리그 보정이 들어간다. 실책으로 인한 출루를 제외한 1994년의 wOBA는 .304로 2012년보다 6리 정도 낮다. 그래서 2012년 강정호와 wOBA값 차이에 비해 wRC+의 차이가 적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만약 강정호가 지금의 페이스를 시즌 끝까지 유지한다면 유격수로는 처음으로 초기 이종범의 타격을 능가하는 선수가 탄생하는 것이다. 논란이 있는 수비는 넘어가더라도 한국의 리키 헨더슨이라고 할 정도인 이종범의 주루 플레이는 강정호와는 격차가 있다. 고로 비슷한 타격을 한다고 해도 1994년 이종범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1996년이나 1997년을 능가할 가능성은 높다. 


이종범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가 압도적인 활약으로 해태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시켰다는 점을 꼽는다. 기본 전력에 차이가 있는 넥센을 강정호가 우승으로 이끄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설사 넥센이 몇 년 안에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꼴찌 팀이 어떻게 4강 경쟁을 하고 있는지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리그 MVP를 향해가는 강정호가 있었노라고. 그리고 강정호가 커리어를 끝마칠 즘에 팬들은 그를 신격화시킬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남사스런 '그 단어'가 먼저 떠오르지만 말이다.



  

  ※ 이 글은 마구스탯에 송고되었습니다. 

  7월 10일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글과 관련된 스탯들이 궁금하시면 FreeRedbird님 블로그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