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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김기태 사임 쇼크' LG에 남긴 숙제는?

개인에 대한 엇갈린 평가와 별개로 4월 감독 사퇴는 LG에 있어서 또 한 번의 불명예스러운 역사다. (사진 출처 - LG 트윈스)


23일 저녁 LG와 삼성의 중계를 보는 야구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덕아웃에 있어야 할 김기태 감독이 모습을 비치지 않았던 탓이다. 특별한 설명 없이 감독이 자리에 없다면 이유는 많지 않다. 결국, 경기가 끝나고 LG는 김기태 감독의 사퇴를 발표했다.


선수단이나 LG 팬 입장에서 쇼크가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최하위로 처져 있더라도 겨우 17경기를 마친 시점에서 11년 만에 4강 진출에 성공한 감독을 자르는 행동은 비상식적이다. 실제로 백순길 단장은 아직 사표 수리를 하지 않았다며 김기태 감독이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감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승리를 갈구하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리가 보통 감독의 위치다. 그만큼 귀중한 기회를 쉽게 차버리기란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성적 외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2011년 김경문 감독이나 김성근 감독처럼 구단의 의중을 알고 계약 마지막 해 먼저 자신의 거취를 정리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정황은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2013년 5월 프런트는 팀 성적이 부진하자 경질설이 나돌며 김기태 감독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보도가 있다. 또 김기태 감독의 신임을 받던 차명석 코치가 구단의 소극적 태도에 의해 재계약에 실패하자 크게 동요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된다. 게다가 연이어 터진 팀의 구설수와 최하위 추락은 팀 내외적으로 김기태 감독을 강하게 압박했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런 김기태 감독의 결정에 대해 위기에 몰린 팀을 두고 빠져나가는 식의 행보가 무책임하다는 시각도 있다. 일견 일리가 있다. 마지막까지 팀을 위해 반전 카드가 되려고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는 설명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자신의 부재보다 일시적인 분위기 전환이 낫다는 판단이라면 애초에 그 자리에 있지 않는 편이 낫다. 


하지만 다수 여론의 반응은 김기태 감독 옹호론에 쏠려 있다. 역대 감독 교체가 가장 많았던 팀 상황을 되돌아볼 때 프런트가 얼마나 야구인으로서 존중하지 않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도도 남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한을 침해받고, 재계약이 희박함을 알았을 때 뺨 맞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누가 강요할 수 있겠는가?   


사회적 상황에 비춰 김기태 감독의 행위를 세월호 선장에 빗댄 풍자도 도가 지나치다고 여겨진다. 프로야구의 체제상 감독이 사퇴한다고 하여 팀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2012년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고, 한용덕 감독 체제에서 팀은 더 좋은 성적을 냈다. 같은 해 김성갑 대행 체제를 비롯해 이런 사례는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선수단에 가해지는 충격 요법과 함께 줄어든 부담감이 긍정적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다. 설령 그렇지 못해도 성적만 보자면 김기태 감독 사퇴가 팀을 파국으로 몰고 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문제는 성과 없이 이런 일이 반복되는 LG의 시스템에 있다고 하겠다. 감독이 바뀐다고 LG에 혁신적인 변화가 생길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적에 부담을 느낀 감독의 혹사는 더해가고 신인들에 대한 기용은 엇나간다. 김기태 감독이 떠난 23일 팀의 보물 같은 유망주 임지섭은 삼진을 하나도 못 잡는 등 인상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 6회 동점 상황에서 다시 마운드에 오른다. 결과는 두 개의 2루타를 허용하고 투구수 100개를 넘긴 채 강판 당하고 만다. 위축된 피칭으로 패배하는 경험이 성장에 득이 될 리 만무하다. 


한편 떠오르는 유망주 채은성이나 운동능력이 좋은 문선재는 퓨처스리그에서도 자신의 포지션 없이 유틸리티로 키워지고 있다. 두산이 김인태를 좌익수, 이우성을 우익수로 설정하며 상무와 경찰청에 차분히 키워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계약을 완료하기 힘든 감독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프런트에게서 장기적인 계획은 세워지기 어렵다.


몇 년 전 SK가 왕조를 형성하던 무렵 모든 팀은 한발 앞서 뛰고, 강한 훈련을 하며 대세를 따랐다. 지금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팀은 프런트와 감독이 역할을 분담하는 넥센이다. 구단주의 야구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이장석 대표는 스스로 단장의 역할이 되어 프런트를 전문화하고 있다. LG 그룹 수뇌부가 수뇌부에서 진정 자신의 야구팀을 사랑한다면 매 경기 기용에 대해 가타부타할 게 아니라 정말로 야구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 프런트를 구성하는 편이 낫다. 매번 실현되지 않는 '야신'만 부르짖는다면 이전과 같은 톱니바퀴 속에서 발을 구를 뿐이다. 



야구계에서 감독이 왕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번에 김기태 감독이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역할과 책임을 분담할 조직을 바르게 꾸리고, 감독에게는 정당한 권리를 부여해야 LG 그리고 프로 야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