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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두산 부진으로 보는 프런트 전문화의 중요성

순위 구도가 상중하로 나뉘는 시점, 또 하나의 이변이 발생하고 있다. 시즌 전 우승 후보로 말해지던 두산이 거듭된 패배로 중위권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5위 롯데와 승차는 4게임 차로 크진 않으나 5월부터 14승 22패로 반등의 기미조차 보이고 있지 못하다. 가장 큰 문제는 부진의 원인을 알고도 바로 잡기 어렵다는 데 있다.


 

위 표에서 보듯 두산의 타격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타율과 출루율은 리그 1위이며 장실 구장을 사용함에도 장타율 2위를 기록 중이다. 도루 숫자는 유일하게 80개를 넘어 육상부의 명성을 찾았고, 종합 타격 지표인 wOBA도 가장 높다. 결국, 부진의 이유는 투수력에 귀결되는데 선발 이닝이 한화와 함께 유일하게 300이닝 미만 5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그나마 4월 상승세를 유지했던 비결은 불펜의 힘인데 5월 이후 평균자책점은 5.74로 한화에 이어 가장 높다. 수비를 배제하는 FIP에서도 SK와 함께 유일하게 5점대를 기록해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런데 이런 투수력의 하락이 우연한 난조라기보다 프런트가 자초한 결과라는 게 뼈아프다. 지난해 FA 홍성흔 영입 당시 팬들의 반발을 떠올려보자. 홍성흔이 부족한 선수라서가 아니다. 이미 두산은 윤석민이나 김동주, 오재일 같은 지명타자 자원이 있었고, 내야의 경쟁도 치열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9개 구단 최상위 선수층을 자랑하는 두산은 보호선수에 대한 부담이 컸다. FA 영입이 아니라 트레이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고, 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타고투저인 올해 올스타 지명타자 후보 자리에 홍성흔보다 낮은 OPS를 기록한 선수는 SK의 김상현과 한화 김태완뿐이다. 이 중 김태완은 외야수, 1루수로 출장하고 있어,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 홍성흔이 타자에게 불리한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9개 구단 유일의 지명고정 선수이기에 아쉬운 성적이다.



 

FA로 영입된 홍성흔의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에게 더 필요한 투수력을 잃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사진 출처 – 롯데 자이언츠)


반면, 롯데에 보상 선수로 간 김승회는 필승조에 포함(enLi 1.77)되며 25경기 44.1이닝 3.86ERA 3.18FIP를 기록 중이다. MLB 수준의 대체선수 레벨을 적용해 계산하면 홍성흔의 기록은 약 0.6WAR로 계산된다. 김승회는 ERA를 기준으로 할 때 약 0.8WAR, FIP로 기준으로 할 때 약 1.2WAR로 홍성흔 보다 높다. 현재 성적만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영입이었다. 


출혈은 이뿐이 아니다. 김동주는 3루 포지션 전향을 강요받아 다이어트에 돌입하면서 타격이 부진, 더욱 은퇴에 대한 압박을 받게 생겼다. 팀의 미래라던 윤석민, 최준석의 플레잉 타임은 줄어들었고, 내야 수비력의 약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두산은 이러한 손실을 떠안기 위해 76년생 야수에게 31억의 계약을 안겨준 셈이다. 이 모든 일은 팀에 애정을 갖고 지켜봐 온 팬이라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게 비극이다.


두산 프런트의 착오는 비단 이 계약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해 있었던 트레이드를 기억하는가? 당시 외야수가 부족했던 두산은 이성열을 넥센에 보내며 약점을 키웠고, 중첩된 지명타자 자리에 오재일을 데려왔다. 당시 팬과 언론은 방향성이 맞지 않는 이 움직임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더군다나 지명타자 홍성흔이 영입된 후 올해 오재일은 단 4경기 출장에 그치고 있다. 선장과 항해사가 바다를 모르면 배는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최준석이 지금처럼 기회를 받지 못한다면 FA 자격을 얻는 이번 시즌 후 팀을 떠나게 될 확률은 매우 높다.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어떤 이는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프런트에 대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두산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1개의 포지션에 여러 명의 선수가 경쟁하는 상황. 교통정리는 필수다. 투수력을 향상하려면 외국인 투수 교체만이 아니라 남는 야수 자원이 가치를 잃기 전에 적절한 트레이드가 요구된다. 선수를 쌓아두기만 하면 전력이 그대로 유지될까?


2013년 시즌 후 두산에는 최준석, 이종욱, 손시헌 등이 FA 자격을 얻는다. 윤석민이 부상에서 복귀한 후 최준석은 팀에서 확실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자신이 없어도 지명-1루 포지션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있고,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함을 알고 있다. 아무리 서울 프리미엄이 있어도 최준석이 두산에 남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준석뿐이 아니다. 손시헌 역시 허경민과 김재호의 존재로 인해 잔류보다는 이적이 유력시된다. 


팀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지금보다 위로 오르기 위해서 두산은 움직여야 한다. 이는 프런트의 역할이고, 상황이 닥쳤음에도 대응하지 못하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하지만 프런트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2013년 유일하게 트레이드가 없는 팀인 두산은 프런트 스스로 지난 이성열 트레이드에 위축되어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10구단 KT는 기존 대기업 구단들의 답습이 아니라 NC의 야구단 구성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사진 출처 – NC 다이노스)


그럼 단장과 감독을 교체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아마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야구단 운영이 대기업 간부의 발령으로 결정되는 야구 문화에서 프런트의 전문화를 꾀하기 힘든 까닭이다. 살아남기 위해 실적을 내는 게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팀은 나아가지 않는다.


넥센의 시즌 초중반 상승세는 이장석 사장 혹은 염경엽 감독 개인이 훌륭해서라기 보다 그들의 운영주체가 야구단 가치 상승을 위해 절실히 매진한 덕이다. 5월 돌풍을 일으킨 NC도 마찬가지. 야구단에 관심이 많은 김정준 NC 구단주는 야구 기자 출신 이태일 사장을 임명하는 등 타 구단보다 전문화에 힘썼다. 프런트가 모기업에 의존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야구단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구성원은 야구를 잘 아는 준비된 인력이어야 효율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아직 야구단 전체가 흑자로 전환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한계는 있지만, 프런트 구성을 전문화해나가는 구단이어야 프로야구를 선도해 나갈 수 있다. 두산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만 있다면 그들의 빛나는 재능은 팀을 우승으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