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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준비된 영웅 최재훈, 다시 가을을 달구다

후반기 최고 승률 팀들의 대결로 기대를 했던 준플레이오프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팀 이미지와 다르게 양 팀 모두 저조한 득점에 묶였고, 그러다 보니 매 경기 1점 차 대결이 펼쳐졌다. 점수 차가 적어 흥미진진해야 할 경기지만, 과정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수비와 주루에서 본헤드 플레이와 같은 장면들이 반복되었고, 언론에서는 최악의 경기력이라는 혹평에 시달렸다. 준PO 3, 4차전 관중 매진 실패도 이러한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백업 아닌 백업, 시리즈를 원점으로


그럼에도 불구 다시 가을 야구의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한 선수가 있다. 시즌 중반까지도 팀의 백업 포수에 머물렀던 최재훈은 3차전 14회를 온전히 소화하며 결정적인 순간 3번의 도루 저지로, 4차전에는 결승 역전 투런 홈런으로 팀을 구렁텅이에서 구해냈다. 급기야 이번 준플레이오프를 가리켜 최재훈 시리즈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백업 포수? 두산 엔트리에 포함된 야수라면 모두 올스타급 재능이 있다.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최재훈이 이렇듯 경기의 주인공이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4월경에도 뛰어난 블로킹과 함께 1점 차 경기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2루 견제 송구로 만들어내면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최재훈의 강한 어깨는 2010, 2011년 경찰청 복무 시절부터 정평이 나 있었고, 유승한 감독의 총애 속에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최재훈은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2년간 611타석 동안 .338의 타율 28개의 홈런으로 2군 최고의 포수로 떠올랐다. 타자 친화적인 벽제 구장을 홈으로 썼다고 하지만 대단한 성적임에 틀림없다.


군 제대 후 실질적인 1군에서의 첫 시즌은 어떠했나? 최재훈에게 소중히 기억될 인연을 만나게 된다. 당시 두산은 일본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대단한 커리어를 쌓았던 명포수 이토 쓰토무를 수석 코치로 선임한다. 어찌 보면 1년 차 신임 김진욱 감독과 기묘한 동거로 일각에서는 형태 자체가 잘못된 만남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샀다. 아니나 다를까 이토 쓰토무 코치는 팀 코치진과 제대로 조화되지 못했고, 점차 영향력을 잃어 갔다. 


그런 상황에서 이토 코치가 알아본 재목이 바로 최재훈. 일본 야구의 레전드는 마치 절망적인 한국 생활의 한을 풀듯 최재훈에 몰두했고, 제자는 어미 새를 따르듯 훈련을 소화했다. 타고난 소질에 훌륭한 스승이 함께하니 어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이번 포스트시즌 여태껏 제대로 기회를 받지 못했던 최재훈의 조명만으로도 두산에는 큰 의미가 있다.  참고로 이토 쓰토무 코치와의 일화는 NHK의 다큐에 소개된다. 일본 방송의 시각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으나 야구 팬이라면 흥미 있게 바라볼 내용이 곳곳에 포함되어 있다.


최재훈을 비롯해 두산 야구의 힘은 야수 층에서 나온다. 시리즈 전 백업으로 떨어졌던 최준석은 3차전 천금 같은 홈런을 때려냈다. 반면 비슷한 역할의 넥센 박동원과 최준석은 수비와 공격에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마지막 5차전, 어느 팀에도 유리함 없다


4차전 넥센이 아쉬웠던 포인트 중에 하나는 투수의 활용이다. 염경엽 감독은 1점 차 리드 상황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선발 등판 후 이틀을 쉬었던 벤 헤켄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고,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다. 헤켄의 투구수는 무려 56개로 5차전 등판이 쉽지 않다. 또 중간을 책임졌던 한현희도 4일 연속 등판하면서 피로 가중을 피하기 어렵다. 그에 반해 두산은 베테랑 이재우가 7이닝, 3일 휴식 후 등판한 니퍼트가 24개의 등판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불펜에 휴식을 줬다. 이 정도 되면 흐름은 두산에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직 넥센에 불리할 게 전혀 없다. 2차전 유희관이 호투하긴 했으나 볼넷 3개, 몸에 맞는 볼이 2개로 많았고, 4일 휴식 후 등판이다. 넥센의 선발 나이트는 정상적 등판 간격으로 1차전 베테랑답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불펜에서는 헤켄이 나오기 어렵다지만, 3차전 등판 오재영이 73개의 투구만 했기에 중간에서 좌완 계투로 피칭이 가능하다. 넥센 타선이 리드만 가져다준다면 마무리 손승락까지 이어지는 라인은 넥센 쪽의 안정감이 다소 낫다고 해도 좋다. 




또 한 가지는 구장 변수다. 박병호가 정규시즌에도 7개의 홈런을 더 때릴 만큼 홈에서 더 두려운 타자였다. 수비적인 면에서도 목동에 익숙한 넥센 야수들이 더 유리할 것은 당연지사. 3위를 한 덕을 마지막에 볼 수 있다. 한편 두산의 주포 김현수는 4차전 초반 시즌 내내 괴롭히던 발복 부상으로 경기에 빠졌다. 5차전 김현수의 출장이 가능한지도 시리즈의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선수 면면을 볼 때 넥센과 두산이 5경기 연속 타선이 터지지 않을 확률은 적다고 생각한다. 현재 부진한 넥센의 강정호, 유한준, 두산의 이종욱, 민병헌, 김현수 중 누가 먼저 부진에 탈줄 할까? 최종전의 승자도 바로 이 대목에서 결정된다. 무엇보다 5차전에는 시원한 타격과 야무진 수비와 주루들로 지난 경기의 아쉬움을 풀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