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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김성근에서 김기태까지, 기록으로 본 감독의 색깔

사진 제공 - LG 트윈스



야구 감독은 사람들에게 가장 선망받는 직업 중의 하나다. 거의 매일 신문기사에 오르락거리며 정치인이 된 듯 그의 한마디에 수많은 이들이 주목한다. 반면에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기도 하다. 거의 매초마다 야구팬들의 순도 100% 진심이 담긴 '돌', '호구', '백정' 등 다채로운 비속어가 쏟아져 나온다. 6할의 승률을 올려도 53일, 7, 8위에 해당하는 하위팀은 최소 80일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신나게 욕하는 감독들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팬들은 자기 팀의 감독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해 8개 구단 팀 기록을 비교해보았다.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감독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함이지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번트 많이 대는 감독은 낙제점?


희생 번트는 감독을 평하는 데 있어 줄곧 등장하는 지표 중 하나다. 최근에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은데 그 자체를 스몰볼과 연관지어 재미없는 야구라고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을 근거로 득점에 도움이 안 되는 작전이라는 것이 비판의 이유다. 그래서 번트를 대는 행위는 그 자체로 고리타분한 꼰대들의 것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이 말은 일정 부분은 맞는 말이다. 평균적인 상황에서 번트가 강공보다 득점 확률이 적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이러한 통계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 초중반 일반적인 상황에서 희생 번트는 비효율적인 작전이지만, 경기 후반 한두 점 차에서 타격이 약한 선수가 대는 번트는 승리 확률을 작게나마 높여주기도 한다. 


The Book에 나온 통계를 보면 무사 1루 상황에서 1점이라도 득점할 확률은 약 44.3%로 1사 2루일 때 41.4%보다 높다. 고로 번트를 성공하면 오히려 득점 확률이 떨어진다. 그런데 무사 1루에서 진루를 시키지 못하고 아웃 될 때 득점 확률은 28.7%로 떨어진다. 만약 병살을 당하면 득점 확률은 7.8%밖에 안 된다. 때문에 한 점차 상황에서 상대편 투수가 에이스이고, 타석에 안타나 출루 확률이 극히 떨어지는 선수라고 생각하면 번트는 시도해볼 만한 선택이다. 또 무사 1, 2루보다는 1사 2, 3루가 득점할 확률은 5% 이상 높아서 현장의 판단이 틀리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경기 초반에는 강공이 다득점 확률이 높기에 번트는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수비가 이미 대비를 하고 있는데 훈련이 안 된 선수에게 지시를 내린다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다고 번트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도 문제고, 공식 따르듯 무조건 주자가 나가면 번트를 대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면 2012년 어떤 팀이 희생 번트를 많이 되고 있을까?


 



 

위 표는 2012시즌 8개 구단의 희생 번트 수다. KIA는 무려 경기당 1개 이상의 희생 번트를 기록했다. 이 중 김선빈은 13개의 번트로 이 부분 공동 선두에 올라와 있으며 비효율적인 공격 루트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선동열 감독은 대체 왜 이런 방법을 택한 걸까? 아마도 노란색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기이할 정도로 나오지 않는 홈런 수 때문에 삐뚤어진 것일 수 있다. 삼성 시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 5시즌의 통계를 보자.






좀 더 흥미로운 통계가 나왔다. 미국 출신 로이스터 감독은 비교적 희생번트를 잘 시도하지 않는 감독이었고, 미국식 자율야구를 표방한 이광환 감독 또한 숫자가 적었다. 이보다 더한 감독들은 김인식, 김경문 감독으로 이어지는 사제라인이다. 김경문 감독이 김인식 감독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한 가지 의외는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여주겠다는 이만수 감독이 대행 시절부터 꽤 많은 희생번트 작전을 낸 것이다. 2012시즌 메이저리그는 경기당 평균 0.31개, NPB는 0.93개의 희생번트가 나왔다. 이만수 감독은 화이트삭스 시절 미국 야구보다 김성근 감독 아래 수석코치로 있을 때 더욱 많은 것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고의사구에도 드러나는 한미 야구의 차이


 




야구라의 송민구님이 소개해주신 스탯 중에 TMI가 있다. 희생번트와 고의사구를 더하는 것으로 팀의 성향이 얼마나 '전통적'인지 나타내는 지표라고 한다. 소위 '올드스쿨' 마인드의 감독을 찾는다고 보면 된다.


고의사구 역시 상황에 따라 충분히 효율적인 작전이 될 수 있다. 가령 일사 2, 3루에서 만루가 되면 1점 이상 실점할 확률은 오히려 1.6% 줄어든다. 또 1사 1, 3루에서 만루로 바뀌면 실점 확률이 1.8% 늘어나지만, 다음 타자가 2~3푼 이상 출루율 혹은 타율이 낮으면 해볼 만 한 작전이다. 물론 이 역시 경기 후반, 접전상황일 때 효용이 있고, 투수의 제구력도 고려해야 한다.





 

희생번트 숫자와는 크게 다른 점을 볼 수 있는데 미국 야구로 대표되는 로이스터 감독이 가장 많은 고의사구를 내줬다. 메이저리그의 현재까지 경기당 고의사구는 0.22개, 2011시즌에도 0.25개로 한국 야구보다 많았다. 한국 야구가 좀 더 적극적인 승부를 유도하는 걸까? 참고로 NPB의 올 시즌 경기당 고의사구는 0.12개로 한국과 비슷했다.


세대별로 보면 김경문, 김시진, 선동열, 류중일로 대표되는 40~50대 감독들이 비교적 고의사구 숫자가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피타고리안 승률, 냉정과 열정 사이



피타고리안 승률은 한화 부진의 이유를 설명하며 이미 소개한 바 있다. 팀의 득실점으로 기대승률을 구하는 것으로 실제 승률에 나타나지 않는 팀의 저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공식은 아래와 같다.


기대 승률 = 팀득점1.82÷(팀득점1.82+팀실점1.82)


그럼 실제승률이 기대승률보다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운의 요소가 포함되지만, 접전상황에서 강했다는 뜻이다. 팀 불펜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해설자들은 강팀이 그렇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반대로 패배하는 경기에서 압도적으로 질 경우도 기대승률은 낮아진다. 나쁘게 말하면 버리는 경기가 생기는 것이고 좋게 보면 감독이 냉정히 판단해 무리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냉정한 감독일수록 실제승률을 높이는 데 유리하고, 열정적인 감독일수록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실제승률 – 기대승률이 마이너스인 감독은 팀을 잘못 이끈 걸까?

 





케이스 A : 김성근 감독과 김경문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명장으로 인정받는 감독들이다. 만약 피타고리안 승률이 감독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는 항상 붉은색을 띠어야 한다. 허나 매년 색깔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보면 한 해의 피타고리안 승률은 감독의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케이스 B : 물론 예외는 있다. 선동열 감독은 2008년을 빼면 모두 실제승률이 기대승률보다 높았다. 심지어 2005년에서 2007년까지 3년 모두 피타고리안 승수보다 많은 승리를 챙기는 팀이었다. 이는 지키는 야구로 대표되는 삼성의 강한 불펜의 영향이지만, 선동열 감독 특유의 ‘쿨’한 스타일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일부의 팬들에게는 승패가 너무 일찍 드러나는 야구라며 재미없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승리를 중시하는 팬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선동열 감독과 극과 극인 성향으로는 김시진 감독을 꼽을 수 있다. 넥센은 대부분 기대승률보다 실제 승률이 낮은 팀이었다. 이러한 이유는 항상 약팀에 있다 보니 어떠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도전자의 자세로 경기에 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케이스 C : 이런 피타고리안 승률로 감독의 명암이 바뀐 예도 있다. 조범현 감독은 2009년 득실점보다 많은 승수를 쌓아 팀을 우승시켰으나 2010년 연패에 빠지며 결국 중도에 퇴진하고 말았다. 한대화 감독은 작년 멋진 대타 타이밍으로 명장면을 만들며 ‘야왕’이라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바티스타와 박정진 투톱은 경기를 확실히 매조 짓는 카드였다. 그런데 올해는… 한화의 불펜운용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베베 꼬였다. 작년과 비교해 0.83 승률의 차이는 감독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케이스 D : 새로 부임한 감독들의 승률이다. 류중일 감독은 올해 초반 어려운 경기를 했지만 워낙 팀이 탄탄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롯데는 올해 득실점과 비교해 매우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후반기에도 그럴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만, 신임 감독들인 만큼 아직 이 지표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케이스 E : 마지막으로 LG의 부임 감독들이다. 놀랍게도 대부분 기대승률보다 실제승률이 낮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 감독들이 하나같이 능력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년간 가을야구에 실패하면서 프런트는 물론 팬들도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 하물며 파리 목숨인 감독은 어떻겠는가? 냉정한 경기운용이 가능할 리가 없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기태 감독마저 주키치를 7일 동안 선발 2번, 불펜 한번 투입하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김기태 감독도 결국 나무보다 숲을 보진 못한 듯싶다.


그래도 희망을 보자면 매년 올라가고 있는 LG의 득실점 승률이다. 팀은 분명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DTD라는 유행어에 민감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기록에서 보다시피 LG는 내려가는 팀이 아니라 올라가고 있는 팀이다.




지금까지 각 팀의 희생번트, 고의사구, 피타고리안 승률을 살펴보았다. 이는 기록의 일부분일 뿐이며 감독의 진면목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퀵후크, 플래툰, 백업 기용 등 찾아봐야 할 사항이 많다. 중요한 것은 감독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지휘자가 주관을 갖고 팀을 이끌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시스템을 갖춰 감독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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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기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