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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스리그& 유망주

유망주는 기다림의 이름, 순수 신인은 없다

매년 드래프트에서 뽑은 1라운드 선수에 대한 기대치는 어떠한가? 최근에는 달라진 듯하지만, 여전히 당장 1군에서의 활약을 기대하는 이가 많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선수의 장래를 비관하거나 한국 야구 수준이 떨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과연 이런 평가는 정당한가? 


실제로 상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얼마나 뛰어난 활약을 했는지 기준을 정해 정리해 보았다. 1983년 드래프트부터 1차 지명 포함 전체 3라운드 선수 중 투수는 50이닝 이상, 야수는 200타석 이상 선수만을 집계했다. 1990~1991년 쌍방울 특별 지명이 있던 시기는 1차 지명과 특별지명, 2차 1R까지, 고졸 우선 지명이 있던 4년은 1차 지명과 고졸 선수, 2차 1R 선수까지 어떤 형식이든 전체 3라운드에 가까운 범위에서 추렸다. 선수 범위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시대의 흐름을 보기에는 참고가 되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1990년대에 상위 라운드에 지명받아 입단한 선수들이 첫 시즌 곧바로 1군에서 활약할 확률이 가장 높았다. 반면 1980년대 선수들이 생각보다 적은데 대상을 고교•대학 졸업 출신에만 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실업야구를 거쳐 프로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 조계현이나 정삼흠, 양상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빙그레 창단으로 NC처럼 1년을 2군에서 묵힌 이상군이나 전대영, 강정길도 위 명단에서는 제외했다. 또 송진우처럼 올림픽 출전을 위해 협회에서 프로 입단을 강제적으로 늦추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이제 의문은 보라색으로 표시한 2000년대 드래프트 된 신인들의 활약 저조에 초점이 맞춰진다. 세간의 우려처럼 2002년 월드컵의 영향으로 재능있는 유소년들이 축구로 몰려들어서일까? 그런 이유가 없지는 않겠지만 설득력이 빈약하다. 월드컵을 보고 그동안 야구를 했던 중고교생들이 갑자기 진로를 수정해 축구로 전향할 확률은 매우 낮다. 신인들의 활약은 2000년대를 시작으로 꾸준히 줄어들었고, 특히 야수는 2000년부터 상위라운드 신인의 첫해 성공을 보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10년 전이었다면 김응용 감독의 루키에 대한 편애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아마추어 선수들의 프로 진입 장벽이 높아진 현상은 1980년대처럼 야구계의 추세 변화 속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표에 늘어난 초록색 글씨에서 알 수 있듯 1996년 고졸 우선 지명 제도를 계기로 고졸 선수들의 프로직행이 크게 늘어났다. 1994년 신일고의 김재현처럼 드래프트와 무관하게 프로에 오는 선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학행을 선호했다. 1995년 드래프트를 돌아보자. 59명의 전체 지명자 중 고졸 선수는 이승엽 단 한 명이다. 


활성화된 대학 리그에서 4년간 다듬어진 선수들이라면 프로에서 성공확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두산의 김동주, LG의 이병규 같은 불세출의 천재라면 더욱 성공은 보장된다.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 재능있는 야구 유망주들은 대학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해외진출과 FA 등의 제도는 이런 흐름을 더욱 부추기면서 프로에 지명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가는 곳이 대학이라는 인식마저 생겨났다. 오는 자원이 적으니 대학 출신 선수들의 성공확률은 자연스레 낮아졌다. 고졸 우선지명 제도가 시행된 지 4년 후 위 표에서 대학 출신 선수들을 찾기 어려워진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위축된 대학리그에서 스타가 나오기 어렵다면 고졸 출신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고교 선수들이 곧바로 성공을 맛보기에는 만만치 않은 곳이다. 이는 프로야구 초창기에도 다르진 않다. 1986년 입단해 다음 해부터 활약한 장종훈이 연습생 신화라 불린 이유는 그만큼 고졸 출신 스타가 드물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현대의 프로야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요즈음 국내에 오는 용병들은 트리플A에서 실력이 검증된 선수들이다. 국내 프로야구가 그 부근의 리그라면 그런 활약을 바라는 게 요행 수다. MLB에서는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저스틴 업튼이나 브라이스 하퍼도 프로에서 출발은 싱글A 였다. 역대급 재능이라는 선수들답게 한두 시즌 후 빅리그에 진입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수의 고졸 신인은 추신수나 이학주처럼 루키리그나 숏시즌인 로우 A에서 시즌을 시작한다. 참고로 이학주는 4년의 시간을 거쳐 트리플A에 올라섰다. 


대학 출신은 이보다는 빠르게 싱글A나 더블A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안방마님 버스터 포지 조차 약 2년간은 하이A와 트리플A에서 경험을 쌓았다. 국내에 대입하면 고졸이나 대졸이나 2군에서 적응의 시간을 거친다는 뜻이다. 리그 수준 하향화로 인해 신인들의 활약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리그 수준이 올라가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고 해석하는 게 더욱 설득력 있다.



 

2009 드래프트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인 오지환은 ‘캐넌’ 김재현 이후 LG 프랜차이즈 최고의 파워히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출처 – LG 트윈스)


물론, 근래들어 투수진의 활약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야수 쪽에 좋은 선수들이 몰린 결과일 수 있다. 2009년 드래프트의 야수들은 골든 제네레이션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선수 자원을 자랑한다. 안치홍-김상수-오지환-허경민을 위시한 4대 유격수는 각각 프랜차이즈 올스타 라인업에 위치할 잠재력을 지녔다. 이들 외에 정수빈, 박건우, 배영섭, 정형식, 문선재, 정주현 장영석, 박동원 등 주전급 야수들이 2군에서 단련 후 팀 내 입지를 높였다. 투수 중에도 성영훈, 정인욱, 김태훈, 고원준, 진명호, 한희 등 차후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가 많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유망주의 현재의 모습만 보고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착오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TV 중계에서 유망주를 보는 시야는 작은 표본에서 나오는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1군에 동행하지 않는 하주석에게 실패를 논하는가? 미국에 있었더라면 루키리그나 싱글A에 있을 나이다. 임찬규나 유창식 역시 마찬가지. 90년대 최고의 선발 투수 정민태도 2년간은 거의 활약이 없었다. 고졸 선수라면 4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는 게 정석에 가깝다.


선수도 코치도 팬도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유망주에 대한 패러다임은 달라졌고, 퓨처스리그와 2, 3군 시스템이 당신의 팀을 바꿔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