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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스리그& 유망주

2012년 상무·경찰청 합격자 명단, 2년 후 승자는?

흔히 신인왕 후보를 결정할 때면 미디어에서 '중고 신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중고 신인'이란 당해 년도 드래프트 신인이 아닌 일정 기간 2군에서 머물렀던 선수들을 지칭한다. 프로에 데뷔한 지 꽤 지난 20대 중반의 선수를 신인으로 불러야 하냐는 거부감이 이 단어를 만들어 낸 듯하다. 속내를 보자면 아마야구의 질적 하향이 '순수 신인'들의 활약 부족을 불러왔다는 문제 제기도 깔려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프로야구가 발전할수록 1군의 벽은 높아진다. 간혹 류현진 같은 특수 사례도 있으나, 이제는 옛날처럼 고교 선수가 등장하자마자 대활약하는 시대는 지났다. 메이저리그를 보면 아무리 뛰어난 대졸 신인도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루키리그부터 트리플A를 거쳐 빅리그 문턱에 도달한다. 이들을 따로 '중고 신인'으로 분류한다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무명에 가까웠던 양의지는 경찰청에서 2년을 보내며 올스타급 포수로 떠오를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이런 시대적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 리그를 선도한 팀들이 있다. 두산과 삼성은 뛰어난 유망주를 무조건 1군에 붙잡고 있기보다, 일찌감치 군대에 보내 팀 리빌딩을 순조롭게 진행했다. 삼성의 박석민과 최형우는 상무와 경찰청이 키운 대표적 선수로 꼽힌다. 두산의 양의지, 김강률, 손시헌 등도 병역의무를 수행하며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당시만 해도 2군은 패배자들의 무대라는 생각이 팽배했으나 최형우, 양의지 등의 성공은 2군 육성의 중요성을 현장에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두산 제대자 3인방 허경민, 최주환, 최재훈은 물론 삼성의 이지영, 넥센의 장효훈 등이 군대에서 닦은 기량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LG의 우규민도 경찰청 제대 후 커리어 하이에 가까운 성적을 냈다. 평균자책점으로 볼 때는 2006년이 더 좋아 보이나, FIP로 보면 올해가 가장 뛰어났다. 2013년에도 김현우, 백상원, 박동원, 박건우 등 걸출한 선수들이 제대해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는 한국야구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싹수가 보이는 어린 선수라면 되도록 상무와 경찰청에 보내려고 노력한다. 올해는 어떤 선수들이 상무와 경찰청에 입대해 기회를 받았을까? 유독 뛰어난 투수 자원이 많이 보인다.



 


한화의 양훈은 작년 장원준이나 이현승처럼 입대 시기가 너무 늦어진 축에 속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선수는 그보다 어린 영건이다. 삼성의 정인욱, 넥센의 김정훈, SK의 김태훈과 박종훈은 모두 뛰어난 구위를 갖춘 팀의 기대주들이다. 사실 정인욱은 올해 이미 1군에서 자리 잡아야 했을 선수지만, 예상치 못한 난조를 보였다. 상무에서는 에이스가 될 만한 위치로 2년간 적지 않은 이닝을 책임지며 기량을 쌓을 시간을 벌게 됐다.


SK의 김태훈, 박종훈 역시 2012년은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이었다. 두 선수는 모두 예전부터 선발 투수로 기대를 모았는데 상무 입대가 선수 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하다. SK는 부상으로 많은 시간을 재활로 보낸 1라운더 서진용까지 팀의 유망주 서열 상위의 투수들을 모두 상무로 보내면서 미래를 위탁했다. 


넥센의 김정훈과 삼성 임진우는 1군에서도 경쟁력 있는 구위를 갖춘 투수들로 선발 혹은 불펜에서 존재감을 과시할만한 투수들이다. 지금 코멘트 하지 않은 다른 선수들도 포지션 중복 우려가 덜한 투수 포지션의 특성상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미래는 열려 있다..




이번에는 야수 쪽을 살펴보자.



눈에 띄는 빅네임은 없지만, 2년 후를 기대할 만한 선수들이 눈에 띈다. LG의 서상우는 2012드래프트 전체 80번째로 지명됐음에도 프로에 와서 빅뱃 유망주로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프로 데뷔 후 곧바로 상무에 보낸 것은 구단 측에서도 특별히 기대하는 선수라고 말해주는 반증이다. 과연 2012년 성적이 우연일지 아닐지는 상무에서의 2년을 보면 알게 된다.


LG는 서상우 외에도 아마와 2군에서 꾸준함을 보였던 타자 김재율, 툴로 똘똘 뭉친 무한 잠재력의 윤정우, 파워에는 일각연이 있는 나성용까지 거침없이 입대시켰다. 아마도 SK와 함께 이번 상무•경찰청 합격자 명단 공시에 가장 만족할 팀이 아닌가 싶다. 


그 외 류지혁, 구자욱, 오준혁 같은 20세 이하의 고졸 선수들이 빠르게 입대를 결정했는데 구단과 선수가 모두 윈윈하는 최상의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만, 선배들에게 밀리면 출장 기회를 뺏기는 위험부담도 안고 있다. 


 




위는 상무의 야수 뎁스 차트를 주관적으로 정리한 그림이다. 정원 34명의 상무는 이번에 야수가 16명으로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덕분에 최연소 나이인 94년생 류지혁이 주전 유격수로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삼성의 구자욱도 운이 좋은 편이다. 1루와 지명 포지션에는 김강과 서상우가 플레잉 타임을 나누면 큰 무리가 없다.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는 포지션은 외야와 포수 자리다. 외야는 거의 전 선수가 중견수 수비가 가능할 정도로 준족이 많고 기량이 고르다. 포수 포지션은 이희근이 수비에서 가장 앞서있으나 SK의 대졸 김민식, LG의 고졸 유강남이 모두 타격 잠재력이 크다. 어떤 선수가 치고 나갈지 매우 흥미로운 사항이다.



 




경찰청은 점점 정원을 늘리더니 급기야 작년과 올해 총 45명을 뽑으면서 매머드급 선수 구성을 완료했다. 보다 많은 선수가 병역의 의무와 야구를 병행할 수 있기에 반가우면서도 과연 출장 안배를 어떻게 할지 걱정도 앞선다. 특히 포수 자리는 무려 5명의 선수가 있다. 이중 장성우는 두산 최재훈과 함께 퓨처스리그에서 워낙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라 출장 시간을 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4명의 선수는 백업이라도 출장해야 하는데 기회 측면에서 보자면 소속팀에 있는 게 더 나았을지 모른다.


가장 뜨거운 포지션은 3루인데 작년 퓨처스리그 홈런왕 김회성과 넥센의 차기 거포로 불리는 장영석, LG의 귀한 우타자 김재율이 모여있다. 모두 수비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 1루와 지명을 오가며 클린업 타순에 포진될 수 있다. 



퓨처스리그 최고의 라이벌 상무와 경찰청, 그들의 경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승률 높은 라이벌이라서 만이 아니다. 경기에 뛰는 선수 하나하나가 모두 각 팀의 미래들로 구성되어 있어서다. 과연 2년 후 어떤 선수들이 큰 성과를 낼까? 9구단 10구단에 선수를 뺏기기 싫어 입대시키는 게 아닌 장기적인 계획하에 미래를 대비한 구단이 웃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