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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정의윤-진해수 포함 3:3 트레이드, 미래보다 현재

지난 24일 SK와 LG가 3:3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전반기 KIA와 KT 다음으로 팀OPS가 낮았던 SK는 타격 보강을 원했고, LG 정의윤이 그 대상이 됐다. 양측이 카드를 맞추는 과정에서 숫자가 늘어났다고 하고, 최종 협상 결과는 아래와 같다.

SK IN - 정의윤 OF(29세), 신재웅 LHP(33세), 신동훈 RHP(21세)
LG IN - 임훈 OF(30세), 진해수 LHP(29세), 여건욱 RHP(28세)

양팀이 교환하는 선수의 포지션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선수들의 평균 나이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얼핏 보기에 왜 트레이드를 실행하는지 의아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딜의 목적은 분명히 드러난다. LG가 데려온 두 명의 투수는 올해 전력투구가 쉽지 않은 선수들이다. 진해수는 KIA에서 트레이드된 후 강력한 패스트볼-슬라이더 콤보로 한동안 좋은 활약을 하기도 했지만, 누적된 피로로 올해 평균 구속이 130km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여건욱 역시 지난겨울 팔꿈치 수술로 재활 중이로 정확한 복귀 일정을 계산하기 어렵다. 반면 신재웅은 올해 평균자책점이 상승하긴 했지만, 4년 연속 팀의 주축 불펜으로 활약 중이다.

넥센, 한화와 치열한 중위권 경쟁 중인 SK로서는 즉시 전력감 불펜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고효준이 부진한 상황에 신재웅이라면 SK 좌완에 충분히 힘이 되어줄 수 있다. 5위와 6게임 차로 벌어진 LG는 그 반대다. 내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유망주 신동훈과 신재웅보다는 한창나이의 진해수와 여건욱이 더 승리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승부를 보는 시기는 조금 차이가 나지만, SK와 마찬가지로 LG도 근시일 내 승리를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인 셈이다. 리빌딩이 어려운 환경에서 나온 한국형 데드라인 딜이라고 해도 좋다.


제2의 박병호? 흩어져야 산다


정의윤은 이재원과 함께 상대팀 좌투수를 폭격할 수 있다. 단, 문학 구장이 스테로이드 역할을 하리란 기대는 무리가 있다. (사진 출처 - SK 와이번스)


명확히 드러난 이해관계. 그럼에도 불구 트레이드를 접한 LG 팬들의 첫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4년 전의 기억 때문. 우타빅뱃으로 잠재력이 높다는 정의윤이 만약 박병호처럼 기량이 만개한다면 트레이드 상대 팀으로서는 마냥 기뻐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허나 지금에 와서 이러한 비교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22~25세 퓨처스리그 합산 기록
박병호 185경기 772타석 .341AVG .661SLG 49홈런 14도루 128삼진 107사사구
정의윤 218경기 853타석 .303AVG .487SLG 26홈런 10도루 76삼진 92사사구

동갑내기 두 선수는 20대 초중반 상무에서 2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퓨처스리그에서 적지 않은 표본이 쌓였다. 기록에서 나타나듯 타격 특히 장타력에서는 큰 차이가 드러난다. 1루 수비가 뛰어난 박병호가 평균 이하의 외야수인 정의윤보다 포지션 메리트가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하물며 4년 전과 지금 선수 가치는 천양지차. 전혀 다른 트레이드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다.

2013~2015 LG 지명-1루-코너 외야 주력 유망주
채은성 25세 117경기 397타수 .320AVG .402OBP .511SLG 16홈런 14도루 40삼진 56사사구
서상우 25세 235경기 694타수 .329AVG .399OBP .507SLG 21홈런 14도루 124삼진 91사사구
최승준 27세 217경기 738타수 .291AVG .398OBP .568SLG 50홈런 1도루 184삼진 137사사구
김재율 26세 183경기 384타수 .331AVG .447OBP .461SLG 8홈런 1도루 61삼진 85볼넷

타고투저를 고려해야 하지만 LG에는 비슷한 포지션에 정의윤 못지않은 미래 가치를 가진 유망주가 4명 이상 있다. 나성범의 형 나성용, 24살의 3루수 양석환도 유사한 경쟁 관계다. 넥센에서 이성열이 나간 후 고종욱이 기회를 받은 것처럼 정의윤 이적은 교통정리 차원에서 보자면 LG에는 호재가 될 수 있다. 같이 죽자며 유망주를 꽁꽁 묶어두기보다 내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게 먼저다.


탈잠실 효과는 투수에게도 적용된다



신재웅이 남은 시즌 LG에서의 활약을 이어가기만 해도 SK는 트레이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사진 출처 - LG 트윈스)


물론, 외국인 타자조차 부담스러운 벽이 되는 잠실을 떠나는 자체로 정의윤에 대한 기대치는 높다. 10개 구단 홈구장 중 가장 타자 친화적인 곳 중 하나인 문학으로 이동할 때 정의윤의 타격 스탯은 훨씬 그럴듯하게 상승할 확률이 높다.



임훈과 정의윤의 상황별 타격 기록을 보면 약 5푼 정도 홈과 원정에서 예상 가능한 차이가 벌려졌다. 표본이 크지 않아서 참고 이상이 될 수는 없지만, 원정에서 홈런 개수 차이만 보더라도 SK가 왜 정의윤을 원했는지 짐작이 간다. 퓨처스리그에서도 역시 정의윤이 임훈보다는 임팩트 있는 타자였다. 외야 전포지션에서 무난한 수비력으로 베테랑과 신예를 보좌할 임훈과 상반된 매력으로 좌타자 조동화, 박재상 등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할 정의윤의 교환은 꽤 균형이 맞는다. 참고로 정의윤은 5년간 좌투수 상대로 .299의 타율을 기록했다.

한편 투수 쪽 스플릿 기록을 보면 트레이드 대상이 된 투수들의 이미지가 조금 달라진다.

 



최고 140km 후반대 빠른 볼을 구사하는 준수한 불펜 투수. 그러나 원정에서 신재웅은 타자와 더 어려운 승부를 하며 2배 이상의 피홈런을 허용했다. FIP는 리그 평균보다 약 84%가량 높았다. 이는 진해수의 지난 4년간 기록보다 조금 낮은 수치다. 이름 감안해도 2015년 진해수보다 업그레이드된 투수일 수는 있지만, SK 필승조에 어울리는 활약은 아니었을 수 있다. 플라이볼이 많았던 신재웅에게는 다소 우려되는 점이고, SK 수비진의 도움이 필요하다.


명분 위한 유망주 스왑, 안목이 성패 결정



트레이드의 방향성을 고려한다면 여건욱이 이번 시즌 재활에 서두를 이유는 조금도 없다. (사진 출처 - SK 와이번스)


앞서 살펴본 선수들이 방향성에 맞는 움직임이었다면 여건욱과 신동훈의 교환은 다르다. 최근 팔꿈치 수술을 받은 신동훈은 올해 가을 야구에 도전하는데 보탬이 될 여지가 없다. 오히려 8~9월 복귀 시점을 조율할 여건욱이 조금이나마 확률이 생긴다. 신정락의 1년 선배인 여건욱은 고려대 재학 시절 적은 출장에도 탑클래스의 투수였고, 2011년부터 퓨처스리그에서도 5년 이상 선발과 불펜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고 140km 중후반의 빠른 볼에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의 보조 구질까지 구위도 상당하다. 불안한 내구성, 적지 않은 나이, 선발로의 커맨드 등 약점이 있으나 제법 1군에 어울리는 투수가 됐다.

그렇지만 SK는 카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대졸 군필 투수를 포기하는 대신 미래를 보는 유망주를 끌어안았다. 시의성은 떨어지지만, 근시안적 영입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완화 시켜줄 명분은 될 수 있다.

LG로서도 부담이 있다. 신동훈은 이번 트레이드에 포함된 선수 유일한 90년대 생으로 어린 나이에 걸맞게 장래성이 엿보인다. LG가 뽑은 고졸 투수 가운데 순조로운 발전 속도를 나타냈고, 입단 3년 차인 작년 퓨처스리그에서 릴리버로는 41.2이닝 3.89ERA 5.10FIP를 기록해 리그 평균보다 나은 피칭을 했다. 평균 140km 내외 최고 중반 이상의 빠른 볼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변화구 구사 능력도 양호한 편이다. LG가 훗날 트레이드의 부메랑을 걱정한다면 정의윤보다 더 신경 쓰이는 유망주가 아닐까?

이번 SK와 LG의 트레이드는 뒷맛이 아주 깔끔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인상이 있다. 트레이드에서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에 팀의 방향성이 살짝 흔들리지는 않았는지 의심이 된다. 그래도 LG는 포지션 정리를 하며 내년을 기약하고, SK는 한화와의 5위 경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트레이드를 했다고 평해본다. 얼마 남지 않은 데드라인 순위 경쟁을 하는 팀들이 비난은 피한다는 소극적인 태도보다 선수와 팀, 리그가 모두 행복한 상생의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