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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메모

2009~2015년 릴리버 피로도, 위태로운 투수들

2015시즌 권혁은 지난 9년간 가장 잔혹하게 다뤄진 투수다. 한화의 성적이 뒷받침 됐다면 권혁의 혹사는 감동으로 포장됐을까?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4위까지 가을야구 진출팀은 대강 가닥이 잡혔지만, 5강 와일드 카드가 생긴 후 순위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그에 따라서 투수들에 대한 혹사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나 김성근 감독 부임 후 한화는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는다. 예전과 비교해 릴리버들의 기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빌 제임스가 소개한 Closer Fatigue를 계산해보았다. 모든 투수를 대상으로 하진 못했으나 평균 60이닝 이상 투수를 범위에 포함시켰다. 공식은

 

릴리버 피로도= (5일전 상대한 타자 수) + (4일전 상대한 타자 수)*2 + (3일전 상대한 타자 수)*3 + (2일전 상대한 타자 수)*4 + (1일전 상대한 타자 수)*5


위와 같고, 상대한 타자를 투수로 바꾸어 함께 구했다. 물론, 위와 같은 식이 미국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선수들의 실제 피로도를 측정하지 못한다는 이의 제기도 있다. 매우 온당한 지적이나 미국과 달리 국내는 불펜에 대한 인식이 크고, 선발보다 혹사 논란이 많이 불거진다. FIP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스탯과 거리가 멀더라도 이닝과 투구수 만으로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기에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지표가 아닐까 싶다.





그럼 피로도 수치가 얼마나 되어야 혹사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 사례를 돌이켜 보면 타석 수 기준 합계 1500 내외, 평균 25~30 이상의 포인트가 계산된 선수들은 거의 예외 없이 부상이 따라왔다. 투구 수로 따지면 합계 5500 이상, 90 이상이면 위험 수위다. 평균 피로도가 100 이상일 때는 정우람을 제외하고는 팔꿈치 수술 등 심각한 부상이 따라온 경우도 많다. 


2009년은 이러한 투수 혹사가 가장 극심한 예로 KIA와 SK의 선두 경쟁이 한창이었고, 김인식, 김재박 감독이 한화와 LG에서 마지막 임기를 채운 해다. 전병두는 이 시기 가장 가혹하게 다뤄졌던 스윙맨으로 구원 투수로만 등판했던 38경기에서 평균피로도는 무려 154.2로 계산된다. 그 외 하위권 팀에 있었으면서도 유일하게 3년 연속 평균 피로도 100을 넘긴 이보근의 등판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기용이라고 생각된다.



연도별로 보자면 2012년부터 불펜 투수들의 무리한 등판이 많이 줄어들었다. 2년간 평균 피로도가 90 이상인 선수가 박희수 한 명일 정도로 릴리버들의 관리가 비교적 잘 이뤄진 시기다. 류중일 감독 부임 후 선발 야구로 전환한 삼성의 독주와 2013년부터 홀수 구단 체제로 리그가 운영되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런데 2014년 1위 삼성과 2위 넥센이 반 경기 차밖에 나지 않았고, 4강 또한 혼전이 벌어지면서 흐름이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 계산한 투수 범위 : 릴리버로 50이닝 이상 또는 50회 이상 출장, 또는 10세이브 이상 투수


2014년 가장 눈에 띄는 팀은 넥센이다. 선발들의 부진으로 투수를 잘 못 키우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있기는 하지만, 실은 넥센은 조상우, 한현희 등 최근 투수 스카우트와 육성 모두 성공적이었다. 안타까움이 있다면 최고 재능인 선수가 모두 불펜에서 뛰고 있다는 것. 이는 팀의 투수층이 두텁지 못해서 시간을 들이는 선발보다 바로 활용하는 불펜이 성적을 내기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조상우는 시즌 중 부상으로 두 달가량 공백이 있었음에도 투구수 기준 5000 이상의 피로도가 누적됐고, 평균적으로는 가장 높았다. 한현희도 충분히 위험 수위라고 할 만하다.


투수층이 풍족한 삼성도 시즌 말미까지 넥센이 압박하자 차우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SK는 전유수와 진해수가 리그 탑 정상급 구원 투수와 거리가 있었음에도 정우람, 박희수의 부재에 대한 답을 마련하지 못해 악순환을 반복하고 말았다. 한화의 안영명과 최영환의 기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팀으로 봤을 때 혹사를 시키면서 성적을 내야 할 당위성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 계산한 투수 범위 : 릴리버로 50이닝 이상 또는 50회 이상 출장, 또는 10세이브 이상 투수


그래도 올해에 비하면 지난해 투수 기용은 여유롭게 느껴질 정도다. 김성근 감독은 한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여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환대를 받으며 지휘봉을 잡았다. 반면 팀의 전력은 2년 연속 득실점 마진이 -200을 크게 밑돌아 팬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성적을 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혹사다. FA로 영입된 마무리 권혁은 지난 7년간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피로도 10000점을 돌파하는 잔인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원체 내구성에 불안함을 보이던 권혁은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인 7월 6점대 ERA와 FIP를 기록하며 이상 징후를 나타냈고, 아직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기용을 두고 '고어 야구'라고 칭하는 등 비난하는 여론이 거센 게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박정진은 권혁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피로도 합계는 2010년 정우람을 능가하는 다른 의미로 역대급 시즌이다. 만 39세의 나이에 내년을 생각한다는 게 사치로울 수 있으나 성적을 위한 효과적인 기용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 따른다. 송창식 역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중이다.



한화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몰라도 다른 팀에도 위험 수위를 넘어간 듯한 기용이 쉽게 발견된다. NC 최금강은 예전 임태훈을 떠올릴 정도로 과부하가 걸리고 있고, 넥센 조상우는 2년 연속으로 팀의 핵심 불펜으로 부려지면서 내년, 내후년이 상당히 우려스럽다. 한국 야구의 미래를 보더라도 조상우에 대한 관리는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롯데는 홍성민과 이성민 젊은 영건들의 비중이 높고, 갈 길이 급한 삼성도 이전만큼 느긋한 운영은 되고 있지 못하다. 


혹사의 무풍지대라고 할 만한 팀은 KIA. 놀랍게도 삼성에서 혹사 이미지로 점철된 선동열 감독 시절부터 불펜 혹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믿음이 가는 투수가 적다는 의미일 수 있으나 다른 팀들의 사례를 보자면 꼭 그렇지도 않으니 현재 방향 설정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투수 혹사는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팀의 성적에 따라 그 반응이 천향지차로 달라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팬들이 용인하는 기준이 달라지곤 한다. 10구단 체제 후 첫 시즌 올해 릴리버 기용은 지난 3년간의 흐름으로 볼 때 매우 우려스럽다. 비록 현장의 긴밀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팬과 언론 매체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때다.